목차
I. 고은 소개
II. 초기 시에 나타난 죽음, 허무주의
폐결핵
비애의 일페이지
새봄의 항행
객혈
눈길
새벽 밀회
III. 중기 시와 후기 시
V. 마치며
II. 초기 시에 나타난 죽음, 허무주의
폐결핵
비애의 일페이지
새봄의 항행
객혈
눈길
새벽 밀회
III. 중기 시와 후기 시
V. 마치며
본문내용
짙게 드리운 비장한 분위기의 시다.
지면의 제약 상 더 다양한 시들을 살펴보지 못하여 다소 비약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앞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고은의 초기 시들은 대부분 죽음과 허무, 방랑의 이미지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나타나는 누이의 이미지와 죽음을 통한 소멸에의 갈망, 생의 의미에 중점을 둔 죽음으로의 역설적 갈망 등이 주로 사용되는 시적 장치들이다.
III. 중기 시와 후기 시
이 글은 고은의 초기 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 졌다. 그러나 어찌 시인의 한 조각만으로 그 시인을 평하겠는가. 특히 고은과 같은 왕성한 활동을 한 문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고은 시인의 중기, 후기 시풍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아 초기 시풍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그 특징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중기로 오면서 고은에게 죽음은 삶의 일방적인 종착점이 아니라, 죽음이 삶을 이끄는 만큼 삶도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상생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이 모든 것의 종착점은 아니며, 삶이 죽음을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변화한 이유로는 전태일의 분신사건이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결코 삶과 단절된 막다른 골목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부터 죽음에 대한 자세가 변하기 시작한 고은 시인은, 『문의마을에 가서』로 시작된 시풍의 변화가 가속되어 죽음에 대한 자세의 변화 뿐 아니라 민중적인 성향까지 띄게 된다. 그의 후기 작품이 시작되는 때라 평가되는 19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그는 점차 민중적인 성향을 키워가며 재야투사로 거론될 만큼 실천적인 지식인이 되었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운동에 앞장서면서 모진 고초도 많이 겪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동안 그에게 민족문학의 거봉이라는 칭호가 하나 더 늘어났다. 1980년 또다시 투옥된 이후 한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출소한 고은은, 다시금 무력감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게 되나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 시상을 가다듬었다. 이 시기 전원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작품 활동이 뜸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다시금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층 정제된 민족문학을 선보이면서 더불어 불교의 선(禪)개념을 포함한 시들을 쓰기 시작했다. 허무주의의 괴수로 불리며 극단적으로 죽음의 이미지에 매료되었던 그 시인 고은과 동일인이 지은 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시풍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고은은 짧게나마 불가에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시는 원래 선(禪)의 개념이 포함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풍의 변화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것은 역동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삶의 에너지를 표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고은 시인은 이제 내일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노래 중에 불만을 토로한다. 불만이라는 음성적인 단어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러나 오히려 불만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그 역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불만은 힘찬 것이며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불만이 있는 불만보다 많아야 한다는 주장은, 불만이 단순히 불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불만을 통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아직 다 하지 못한, 게으르고 나태한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그것들이 자신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반성적인 회의로 정반합의 원리에 의거 변증법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창밖으로까지 고개를 돌려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한다. 이것은 앞서 말 한대로 결코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불만이 있고 불만이 있기 때문에 발전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시인이 말미에 외친 대로, 이 얼마나 힘차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물씬 풍기는 시인가! 이제 고은은 허무주의의 괴수에서 민족문학의 거봉으로, 그리고 또다시 민중들에게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역동적인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거듭난 것이다.
V. 마치며
이상으로 간략하나마 고은의 시세계에 대한 대략적인 관찰을 마쳐볼까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이 글은 고은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이미 허무주의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고은의 초기 시들을 소개하고 살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으며, 그에 대한 비교 대상을 부각시킴으로써 좀 더 그의 초기 시들이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약간의 예시를 더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시간과 분량의 제약이 좀 덜하였더라면 좀 더 많은 시들을 함께 나눠보고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인 시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각각 취향이 다르다. 어떤 이는 고은의 초기에 독보적이었던 허무주의의 공허한 울림에 의해 삶을 고찰해보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민족문학에 공헌했던, 그러면서 민중에 삶에 관심을 가져주었던 중기의 시를 좋아한다. 또 등단 반세기가 되도록 식지 않는 그의 창작열정과 시 안에서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후기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고은 시인의 창작세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어느 고은을 좋아하든 고은을 좋아하는 이는 모두 고은의 팬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고은과 같은 위대한 시옹(詩翁)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에 새삼 감격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소년과 같은 에너지로 (비록 그의 소년기가 그렇지는 아니하였으나) 우리 곁에서 좋은 시들을 읊조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문헌
송기한 , 『민족문학에의 길 - 고은』, 건국대학교 출판부 , 2003.
신경림백낙청 , 『고은 문학의 세계』, 창작과비평사 , 1993.
황지우 , 『고은을 찾아서』, 버팀목 , 1995.
상허학회 , 『새로 쓰는 한국시인론』, 백년글사랑 , 2003.
전북일보 ,『20C 전북50인』
김승희 , 「파란과 신명의 축제」,『고은 문학앨범』, 웅진출판주식회사, 1993.
고은 , 『내일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 1992.
지면의 제약 상 더 다양한 시들을 살펴보지 못하여 다소 비약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앞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고은의 초기 시들은 대부분 죽음과 허무, 방랑의 이미지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나타나는 누이의 이미지와 죽음을 통한 소멸에의 갈망, 생의 의미에 중점을 둔 죽음으로의 역설적 갈망 등이 주로 사용되는 시적 장치들이다.
III. 중기 시와 후기 시
이 글은 고은의 초기 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 졌다. 그러나 어찌 시인의 한 조각만으로 그 시인을 평하겠는가. 특히 고은과 같은 왕성한 활동을 한 문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고은 시인의 중기, 후기 시풍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아 초기 시풍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그 특징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중기로 오면서 고은에게 죽음은 삶의 일방적인 종착점이 아니라, 죽음이 삶을 이끄는 만큼 삶도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상생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이 모든 것의 종착점은 아니며, 삶이 죽음을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변화한 이유로는 전태일의 분신사건이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결코 삶과 단절된 막다른 골목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부터 죽음에 대한 자세가 변하기 시작한 고은 시인은, 『문의마을에 가서』로 시작된 시풍의 변화가 가속되어 죽음에 대한 자세의 변화 뿐 아니라 민중적인 성향까지 띄게 된다. 그의 후기 작품이 시작되는 때라 평가되는 19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그는 점차 민중적인 성향을 키워가며 재야투사로 거론될 만큼 실천적인 지식인이 되었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한 운동에 앞장서면서 모진 고초도 많이 겪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동안 그에게 민족문학의 거봉이라는 칭호가 하나 더 늘어났다. 1980년 또다시 투옥된 이후 한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출소한 고은은, 다시금 무력감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게 되나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 시상을 가다듬었다. 이 시기 전원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작품 활동이 뜸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다시금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층 정제된 민족문학을 선보이면서 더불어 불교의 선(禪)개념을 포함한 시들을 쓰기 시작했다. 허무주의의 괴수로 불리며 극단적으로 죽음의 이미지에 매료되었던 그 시인 고은과 동일인이 지은 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시풍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고은은 짧게나마 불가에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시는 원래 선(禪)의 개념이 포함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풍의 변화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것은 역동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삶의 에너지를 표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고은 시인은 이제 내일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노래 중에 불만을 토로한다. 불만이라는 음성적인 단어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러나 오히려 불만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그 역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불만은 힘찬 것이며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불만이 있는 불만보다 많아야 한다는 주장은, 불만이 단순히 불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불만을 통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아직 다 하지 못한, 게으르고 나태한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그것들이 자신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반성적인 회의로 정반합의 원리에 의거 변증법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창밖으로까지 고개를 돌려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한다. 이것은 앞서 말 한대로 결코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불만이 있고 불만이 있기 때문에 발전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시인이 말미에 외친 대로, 이 얼마나 힘차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물씬 풍기는 시인가! 이제 고은은 허무주의의 괴수에서 민족문학의 거봉으로, 그리고 또다시 민중들에게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역동적인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거듭난 것이다.
V. 마치며
이상으로 간략하나마 고은의 시세계에 대한 대략적인 관찰을 마쳐볼까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이 글은 고은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이미 허무주의의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고은의 초기 시들을 소개하고 살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으며, 그에 대한 비교 대상을 부각시킴으로써 좀 더 그의 초기 시들이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약간의 예시를 더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시간과 분량의 제약이 좀 덜하였더라면 좀 더 많은 시들을 함께 나눠보고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인 시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각각 취향이 다르다. 어떤 이는 고은의 초기에 독보적이었던 허무주의의 공허한 울림에 의해 삶을 고찰해보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민족문학에 공헌했던, 그러면서 민중에 삶에 관심을 가져주었던 중기의 시를 좋아한다. 또 등단 반세기가 되도록 식지 않는 그의 창작열정과 시 안에서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후기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고은 시인의 창작세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어느 고은을 좋아하든 고은을 좋아하는 이는 모두 고은의 팬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고은과 같은 위대한 시옹(詩翁)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에 새삼 감격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소년과 같은 에너지로 (비록 그의 소년기가 그렇지는 아니하였으나) 우리 곁에서 좋은 시들을 읊조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문헌
송기한 , 『민족문학에의 길 - 고은』, 건국대학교 출판부 , 2003.
신경림백낙청 , 『고은 문학의 세계』, 창작과비평사 , 1993.
황지우 , 『고은을 찾아서』, 버팀목 , 1995.
상허학회 , 『새로 쓰는 한국시인론』, 백년글사랑 , 2003.
전북일보 ,『20C 전북50인』
김승희 , 「파란과 신명의 축제」,『고은 문학앨범』, 웅진출판주식회사, 1993.
고은 , 『내일의 노래』, 창작과비평사 ,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