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검투사 GLADI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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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의 검투사 GLADIATOR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경기

2.검투경기의 기원

3.검투사 학교와 스파르타쿠스

4.검투경기

5.원형경기장

본문내용

에 천막을 칠 때에는 무려 100명의 인력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님므경기장: 지중해 연안 전체를 통해 보존 상태가 가장 완벽한 원형경기장은 프랑스 님므에 있다. 콜로세움 보다 10년 늦은 90년 완공된 님므 원형경기장은 긴 쪽 너비 133m, ㅖ은 쪽 너비 101m다. 순수한 경기장의 타원 규모는 지름이 최고 68m 최저 38m다. 관중석은 돌계단으로 2층이다. 관중은 2만 4천명의 관중을 수용했다.
로마 말기에 가면서 원형경기장은 서서히 문여는 날보다 문닫는 날이 많아졌다. 기독교 시대가 온 것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동로마의 검투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워낙 인기있는 경기여서 자칫 민중들의 반발을 살까 두려워 서로마에는 중지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438년에 가서야 서로마 제국에서도 가까스로 검투경기를 중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일부는 살아있었고, 최후로 검투경기를 벌인 기록은 523년이다. 검투경기가 전면 중단된 중세 원형경기장은 훌륭한 석재 공급처로 둔갑했다. 중세 때 지은 숱한 교회와 건물은 석재를 구하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로마 건물을 뜯어서 짓는게 힘이 덜 들었다. 원형 경기장은 또, 주거용이나 전쟁시 요새로도 쓰임새가 컸다.
****:로마에선 검투경기외에 모의해전(模擬海戰)도 큰 인기였다. 바다를 통해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해전을 스포츠 경기로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전함을 이용했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검투경기가 없는 날에는 모의 해전을 했다는데, 콜로세움에서도 해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빙성이 떨어지는 예기로 간주하고 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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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5.09.29
  • 저작시기2005.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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