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독립문과 독립공원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독립공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
(참고문헌)
(독립공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
(참고문헌)
본문내용
분이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우리는 그곳이 역사적으로 독립 의사들을 고문했던 형무소로써 그리고 해방 후 군사독재 정부와 맞썼던 투쟁 시민들을 가둔 구치소로써의 기능을 했었던 곳으로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현재 형무소 역사관으로만 정형화 시켜놓고 구치소로써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은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 속에 구치소로써의 과거 부끄러운 모습을 우리 스스로 감추려 했던 처사가 아닐까?
역사관이나 다른 곳들 어디를 둘러 봐도 해방기 이전의 일제 치하의 사실과 일본인들의 행위와 잔악성만을 강조하고 해방 이후 군사독재정치시대에 여기서 옥고를 치룬 여러 민족 투사들에 대한 내용은 일체 언급이 없었다.
이 장소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물론 우리 열사들이 갇혀서 갖은 옥고를 당한 곳이기도 하지만 가까운 과거,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운 분들이 갇혀서 온갖 고문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주위 환경과의 부조화
형무소 주위를 보면은 추념탑 쪽으로는 탑보다도 더 높은 아파트들이 우뚝 서있고, 앞쪽으로는 기타 여러 건물들이 많이 들어 서 있다. 국가에서 사적이라 지정한 지역의 주변이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에는 부적절 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은 과연 무엇을 얼마나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독립공원 주위에 활짝 핀 사쿠라
독립공원은 우리 나라 독립운동의 성지요 독립 투사들의 얼이 담겨 있는 곳이다. 독립공원은 서울시에서도 말했듯이 "서대문독립공원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비롯하여 사적 제32호 독립문과 사적 제33호 영은문주초,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등이 있는 우리민족의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애시당초 민족의 성지라는 이런 곳에, 일본의 잔악성으로 우리 조상들이 피흘린 이곳에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만개함은 어쩐 일인지?? 더더욱 벚꽃이 없어야 하는 곳이 아닐까? 공원 뒤쪽으로 가면 벚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도로변 쪽에서 보면 몇 십년 묶은 아름드리 벚꽃들이 활짝 피어 우리의 부족한 역사 의식을 비웃기나 한 마냥 만발하고 있는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결론
우리는 독립공원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부족한 항일의식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과거 일제 침략기 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항상 일본에게 주도면밀하게 이용당해 왔다. 우리 나라 독도를 일본은 다께시마라고 부르며 자기네 영토인양 우기고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 왔나?..... 불 위에 올려놓은 양은냄비처럼 반일 감정에 파르르 끊어 오르다가도 일본에서 "일·한 관계를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운운하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잠잠해 지는 대한민국... 그사이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만들기 위해 온갖 로비를 벌이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 문제, 일본 수상의 신사참배 등등 우리에게 민감한 사항이 일본 대륙(?)에서 터져 나오면 우리는 항상 냉철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만을 앞세운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일본에 대해 맞설 수 있으려면 우선은 일재 잔재를 청산하고 대일 의식을 확고히 다져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재 잔재 청산은 둘째 치고, 과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올바른 항일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독립운동의 성지로, 역사교육관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아래 만들어진 독립공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형식적인 전시물에, 대부분의 옥사는 폐쇄되었고, 주위에는 사쿠라가 만개하였으며 공원 뜰 곳곳에는 일본식 정원과 흡사한 조경이 가꾸어져 있고,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곳이 주위엔 온통 상업적 간판이 판을 치고 돌아가신 이의 넋을 기리는 추모탑주위에는 추모탑보다 아파트 건물이 더 두드러져 보이니 오호통재라~ 이런 곳에서 우리를 위해 한 목숨 버리신 애국열사의 추모의 정이 일어 나겠는가?
3.1운동 기념탑에 하늘로 떠받쳐 올린 횃불 옆에는 24시간 사우나 간판이 격을 같이 하고 있으니 독립운동의 순수한 정신이 오히려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나라이고 약삭빠른 민족이다 그들은 항상 새빨간 거짓말만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고 우리 스스로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런 거짓말을 하고 어떤 민족적 습성이 있고 우리 나라와 어떤 점에서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고 과거에 어떠한 만행을 우리에게 저질렀으며 해방이후 재대로 된 일재 잔재 청산이 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일본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을 갖아야겠다'는 교육보다는 단순히 반일 감정만 키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살수록, 새로운 것을 알기에도 바쁜 시간에 왜 굳이 역사를 알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떠나 애국심을 구하는 것은 눈을 감고 앞을 보려는 것이며 다리를 자르고 달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국민의 애국심을 환기하려거든 완전한 역사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본인 자신이 지금의 모습을 하기 이전엔 분명 아기의 모습이라는 자신의 과거가 있었듯이, 과거는 현재를 만드는 초석이고 과거에 비추어 좀 더 나은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역사를 알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밑바탕이 되는 과거의 모습을 잘 갖추어야 할 텐데,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공들인 과거의 모습을 얼마나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올바른 항일 가치관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일재 잔재를 확실히 청산해야 하고 올바른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일본이 과거의 적이 아닌 어깨를 함께 하고 나아가는 동반자적 관계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일 두 나라가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두 나라 사이에 진보된 관계를 구축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OB pia 신재홍 근현대사강좌 한국현대사연구회 1993
한국학술정보 김은남 성역인가 공원인가 한국논단(창간) 1994
우리는 그곳이 역사적으로 독립 의사들을 고문했던 형무소로써 그리고 해방 후 군사독재 정부와 맞썼던 투쟁 시민들을 가둔 구치소로써의 기능을 했었던 곳으로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현재 형무소 역사관으로만 정형화 시켜놓고 구치소로써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은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 속에 구치소로써의 과거 부끄러운 모습을 우리 스스로 감추려 했던 처사가 아닐까?
역사관이나 다른 곳들 어디를 둘러 봐도 해방기 이전의 일제 치하의 사실과 일본인들의 행위와 잔악성만을 강조하고 해방 이후 군사독재정치시대에 여기서 옥고를 치룬 여러 민족 투사들에 대한 내용은 일체 언급이 없었다.
이 장소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물론 우리 열사들이 갇혀서 갖은 옥고를 당한 곳이기도 하지만 가까운 과거,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운 분들이 갇혀서 온갖 고문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주위 환경과의 부조화
형무소 주위를 보면은 추념탑 쪽으로는 탑보다도 더 높은 아파트들이 우뚝 서있고, 앞쪽으로는 기타 여러 건물들이 많이 들어 서 있다. 국가에서 사적이라 지정한 지역의 주변이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에는 부적절 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수선한 곳에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은 과연 무엇을 얼마나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
-독립공원 주위에 활짝 핀 사쿠라
독립공원은 우리 나라 독립운동의 성지요 독립 투사들의 얼이 담겨 있는 곳이다. 독립공원은 서울시에서도 말했듯이 "서대문독립공원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비롯하여 사적 제32호 독립문과 사적 제33호 영은문주초,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등이 있는 우리민족의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애시당초 민족의 성지라는 이런 곳에, 일본의 잔악성으로 우리 조상들이 피흘린 이곳에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만개함은 어쩐 일인지?? 더더욱 벚꽃이 없어야 하는 곳이 아닐까? 공원 뒤쪽으로 가면 벚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도로변 쪽에서 보면 몇 십년 묶은 아름드리 벚꽃들이 활짝 피어 우리의 부족한 역사 의식을 비웃기나 한 마냥 만발하고 있는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결론
우리는 독립공원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부족한 항일의식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과거 일제 침략기 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항상 일본에게 주도면밀하게 이용당해 왔다. 우리 나라 독도를 일본은 다께시마라고 부르며 자기네 영토인양 우기고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 왔나?..... 불 위에 올려놓은 양은냄비처럼 반일 감정에 파르르 끊어 오르다가도 일본에서 "일·한 관계를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운운하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잠잠해 지는 대한민국... 그사이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만들기 위해 온갖 로비를 벌이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 문제, 일본 수상의 신사참배 등등 우리에게 민감한 사항이 일본 대륙(?)에서 터져 나오면 우리는 항상 냉철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만을 앞세운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일본에 대해 맞설 수 있으려면 우선은 일재 잔재를 청산하고 대일 의식을 확고히 다져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재 잔재 청산은 둘째 치고, 과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올바른 항일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일까? 독립운동의 성지로, 역사교육관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아래 만들어진 독립공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형식적인 전시물에, 대부분의 옥사는 폐쇄되었고, 주위에는 사쿠라가 만개하였으며 공원 뜰 곳곳에는 일본식 정원과 흡사한 조경이 가꾸어져 있고,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곳이 주위엔 온통 상업적 간판이 판을 치고 돌아가신 이의 넋을 기리는 추모탑주위에는 추모탑보다 아파트 건물이 더 두드러져 보이니 오호통재라~ 이런 곳에서 우리를 위해 한 목숨 버리신 애국열사의 추모의 정이 일어 나겠는가?
3.1운동 기념탑에 하늘로 떠받쳐 올린 횃불 옆에는 24시간 사우나 간판이 격을 같이 하고 있으니 독립운동의 순수한 정신이 오히려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나라이고 약삭빠른 민족이다 그들은 항상 새빨간 거짓말만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고 우리 스스로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런 거짓말을 하고 어떤 민족적 습성이 있고 우리 나라와 어떤 점에서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고 과거에 어떠한 만행을 우리에게 저질렀으며 해방이후 재대로 된 일재 잔재 청산이 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일본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을 갖아야겠다'는 교육보다는 단순히 반일 감정만 키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살수록, 새로운 것을 알기에도 바쁜 시간에 왜 굳이 역사를 알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떠나 애국심을 구하는 것은 눈을 감고 앞을 보려는 것이며 다리를 자르고 달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국민의 애국심을 환기하려거든 완전한 역사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본인 자신이 지금의 모습을 하기 이전엔 분명 아기의 모습이라는 자신의 과거가 있었듯이, 과거는 현재를 만드는 초석이고 과거에 비추어 좀 더 나은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역사를 알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밑바탕이 되는 과거의 모습을 잘 갖추어야 할 텐데,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공들인 과거의 모습을 얼마나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올바른 항일 가치관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일재 잔재를 확실히 청산해야 하고 올바른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일본이 과거의 적이 아닌 어깨를 함께 하고 나아가는 동반자적 관계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일 두 나라가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두 나라 사이에 진보된 관계를 구축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OB pia 신재홍 근현대사강좌 한국현대사연구회 1993
한국학술정보 김은남 성역인가 공원인가 한국논단(창간) 1994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