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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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을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경복궁을 관람하기에 앞서..

2. 경복궁 관람기

3. 경복궁 관람을 하고나서..

본문내용

데 그림 한쪽에 경회루제도범제라는 글이 있는데 구조되어진 수치와 형상에 담긴 의미를 해설해놓았다. 우연히 그런 집이 되었다고 본다는 투의 설명이 있으마 이런 기획과 추진에 다라 빈틈없이 조영된 것이 경회루란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경회루 연지의 물은 못 바닥에서 나오는 지하수와 향원지에서 흘러드는 물이 합쳐진 것으로 일부 지표수는 용두를 설치하여 폭포로 떨어지게 하였다. 네모난 두개의 섬이 있고 동쪽 끝에는 다리를 두어 이를 통해 누각을 드나들 수 있게 되어있다. 누각의 서쪽으로는 연지에서 뱃놀이를 즐길 때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다. 경회루 연지 남쪽가에는 선왕들의 그림, 글씨 등을 보관하던 수정전이 있는데 세종 때에는 집현전으로 이용되어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학문연구를 했었다.
경회루 남쪽에 보루각, 서북측에 간의대, 서편에는 관상감, 북측에는 흠경각이 있었다. 천체의 흐름을 실펴 세월의 흐름을 관측해야 농사 짓는 데 지장이 없고 그로 인해 달력도 제정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흠경각은 세종 20년(1438)에 창건해 정안자정초가 고증하고 이천장영실이 감독하여 만든 천문기구를 설치한 전각으로 높이 7척의종이 산
속에 옥루기륜이란 큰 시계를 설치해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는 장치가 전각에 있었다. 보루각은 태조 7년(1398)에 종로 누각에 세워 백성에게 알렸고 세종이 제도를 정비하고 16년(1434)에 경복궁에 설치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창경궁에 중건하였다가 후에 경회궁으로 옮겼다. 간의대는 천문관측대로 세종 16년에 완성되고 명종 원년(1546)에 중수한다. 높이 41척, 길이 47척, 나비 32척의 돌 축대를 쌓고 난간을 두르고 간의를 비치하고 측정하였으며 서편에 동표를 세우고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였다.
3. 경복궁 관람을 하고나서..
앞에서도 말했지만 개인적으로 경복궁은 참 의미가 깊은 곳이다. 박물관에서 나오는 길은 참으로 유쾌하였다. 그것이 내가 꿈꿔왔던 대학생활이 주어졌기 때문일 것도 있다. 하지만 왠지 산책을 위해 갔던 경복궁을 학문탐구의 목적으로 방문하니 내가 대견하다고 할까. 아무튼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지금 경복궁은 많이 변하고 있다. 이런 경복궁의 모습을 항상 생각하며 나중에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서도 나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박영순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4. 경복궁 관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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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11.08
  • 저작시기2010.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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