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임신중절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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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공임신중절에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들어가며

Ⅱ. 본론
­ 인공 임신 중절의 실태 ­ 인공 임신 중절의 보건학적 측면
­ 인공 임신 중절의 필요성 ­ 인공 임신 중절의 심리학적 측면
­ 인공 임신 중절의 종교적인 측면

Ⅲ. 나오며

§ 참고문헌

본문내용

라도 그 자궁의 절제가 허용된다. 이 때의 행위는 절제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의 결과를 갖고 있으며 오직 좋은 결과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그 임부가 출산을 하고 나서 살아 남기에는 너무나 쇠약해 있다 하더라도 낙태와 쇠약증과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때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한 조치는 태아를 죽이는 일일 것이며 따라서 이 태아의 죽음은 다른 목적을 위해 취한 별도 조치의 비고의적 결과가 아닐 것이다.
건강 쇠약의 경우 그 임부는 영혼이 부여된 태아에 우선하는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 임부와 태아는 동등하다. 그들은 생명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임부는 자신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태아의 생명을 죽일 권리가 없다.
카톨릭 입장은 현실과 비타협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도 현실과의 타협점이 두 개 정도 있다.
첫째, 여성에게 생명이 위태로워도 낙태를 금지하는 규칙은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 경우 낙태의 개인적 혜택은 전적으로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둘째, 현실은 비카톨릭교도와 더불어 카톨릭교도들은 오늘날 성인의 생명은 태아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다고 믿는데 있다. 이것은 태아는 어린이와 구별될 수 없다는 임신중절 반대 운동의 기본 전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에 특희 의미 심장하다. ( 이 운동에서 강간의 경우 낙태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간의 산물이라 하여 임부에게 자신의 아이를 죽일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이의 생명이 어른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어른들이 또한 태아의 생명을 어른의 생명만큼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태아의 생명은 어린이의 생명보다 덜 소중하고 따라서 태아는 어린이와 동등한 존중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정통파 내의 임신 중절 반대 주류파들은 임부의 생명이 위험하다면, 간접적 낙태와 함께 직접적 낙태도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무언 중에 태아의 생명보다 성인의 생명에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임부가 낙태를 하지 않는 한 사망할 가능성이 10퍼센트라고 가정해 보자. 임신 중절 반대 운동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이 같은 시점에서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임부 한 명은 태아 열 명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어린이 한 사람도 또한 태아 열 명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리하여 임신 중절 반대론자들이 그들의 신념이 시종일관하기를 원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입장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포스너 ' 성과 이성(SEX AND REASON)' [동아 출판사], 327pp.
Ⅲ. 나오며..
낙태에 대한 법적, 보건학적, 종교적, 심리적 측면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물론 이 레포트를 쓰면서도 중립적인 입장이 아닌 한 측면에서 글을 쓰고, 그와 관련된 문헌을 조사했다.
우리 집에는 딸이 넷이다. 내가 막내이다. 부모님이 자식 욕심이 많으셔서 딸이 많은 건 아니다. 우리 가정도 남아선호사상..이 정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가정이다. 결론은 아들을 낳기 위해 지금의 나까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내가 아들인줄 알았기 때문에 낳았다는 말씀도 전해 들었다.
결국 내가 딸이었다는 사실이 명백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무나 식물들이 새싹일 때는 보잘것없고 발에 짓 밟혀도 용인되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크면 우리에겐 이로운 작물이나 재목이 된다.
하물며 인간의 작품인 태아는 이로운 작물이 아닌 평생의 동반자인 가족이 된다.
현재 작고 말을 할 수 없다고 그 가치를 묵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10개월 후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의 종교적 입장에서 카톨릭의 경우처럼 강간에 의한 임신도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낙태 전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는 둘 사이에서 쾌락과 사랑이 있다.
하지만 그 쾌락으로 인한 임신은 준비되지 않은 서로에게 고통을 안겨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피임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성을 음지로만 몰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성교육이 피임에 대한 이해 부족을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낙태라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는 올바른 성교육으로 피임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낙태는 생명체를 죽이는 살인 행위이다. 물론 낙태의 부분적인 합법화로 여성의 독립권을 보장해 주었다고 하지만 그로인한 부작용은 너무나 크다. 또한 인권도 무너지고 있다.
태아는 백화점의 상품처럼 남아가 아니기 때문에 버리거나 남아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물건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한 생명을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다. 최근에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로 사회윤리 문제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비록 죽을 만한 죄를 지었지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를 그것도 형체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한 아이를 수술기구로 마구 쑤셔댄다는 것은 인간의 잔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낙태수술을 행하는 의사들의 태도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무 죄책감없이 낙태시술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직업정신에 위배된다고 본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직업정신도 잃어버리고 양심도 버린다면 의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낙태 = 살인행위'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낙태란 행위 앞에서 과연 내가 한 생명을 죽일 만한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
. 참고문헌
1. 윤근섭, 문윤걸, 국선희 《 여성과 현대사회 》,문음사, 147p
2.
http://sangsaeng.org
/
3.
www.daum.net
, 백과사전
4. 리처드 포스너, 《성과 이성(SEX AND REASON)》, 동아 출판사, 3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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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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