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1.1 티코의 삶과 시대 상황
1.2 티코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문제제기
2. 본론
2.1. 정밀한 육안관측 - 관측 천문학의 효시
2.2.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에 대한 비판
2.3. 독자적인 우주구조의 정립
3. 결론
3.1. 당대의 반응
3.2. 티코 천문학의 한계와 의의
3.2.1. 티코 천문학의 한계
3.2.2. 티코 체계가 과학혁명에 주는 의의
1.1 티코의 삶과 시대 상황
1.2 티코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문제제기
2. 본론
2.1. 정밀한 육안관측 - 관측 천문학의 효시
2.2.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에 대한 비판
2.3. 독자적인 우주구조의 정립
3. 결론
3.1. 당대의 반응
3.2. 티코 천문학의 한계와 의의
3.2.1. 티코 천문학의 한계
3.2.2. 티코 체계가 과학혁명에 주는 의의
본문내용
면과 물리적인 취약성으로 인해 비판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티코는 그의 우주구조를 통해 지구가 중심에 있고 태양이 돈다는 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는 단순히 천동설과 지동설을 조화시킨 것이 아니라 기존의 프톨레마이오스 이론의 한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중세의 천동설에 마침표를 찍는다. 티코 브라헤의 이러한 주장이 단순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비판하는데서 더 나아가 사실상 지동설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루어 내게 되었다는 점에서 티코 브라헤는 근대로 가는 과도기적 인물이 아니라 중세를 마감하는 혁명적인 인물로서 평가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티코브라헤의 정밀한 연구 자료는 케플러에게 양도되어 케플러의 천체운동 법칙을 만드는 기반이 됨으로써, 그 실제적 유용가치도 빛을 발하게 된다. 케플러가 수천 년간 등속원운동을 해왔던 행성들을 버리고 부등속 타원운동을 하는 행성들을 창조해 낸 근저에는 티코브라헤의 정확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가 있었다. 등속원운동을 전제로 아무리 다양한 수학적 가정들을 도입해 보아도 티코브라헤의 관측자료 들과 8각분 이상의 오차가 났다. 티코브라헤 이전이라면 이 정도의 오차는 용인 가능한 것이었지만, 티코브라헤의 조수로서 정밀함의 중요성이 체화되었던 케플러로서는 그러한 오차는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당시의 수학과 물리학으로 설명하기조차 힘들었던 타원이라는, 어쩌면 엉뚱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발상을 하면서 티코의 관측자료 들과 일치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물론 케플러는 이를 통해 티코가 아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완성하게 되지만, 사실 그러한 업적은 또한 티코가 행했던 일련의 천문연구의 승리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과학사를 통틀어 볼 때 티코 브라헤는 천문학자는 단지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패러다임이 자리바꿈을 하는 시기에 두 이론의 절충안을 내 놓은 과도기적 인물로 폄하되어 평가되는 경우가 많고 또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전의 사변적, 논리적 천문학 전통을 관측 천문학의 방법으로 바꾸어 놓은 사실과 이전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완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는 사실은 과도기적이라는 단어하나로 축약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다. 단순히 지구가 고정되어있고 나머지 행성들은 태양을 주위로 돈다는 그의 구조를 보고 당시의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이전의 두 이론을 절충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티코의 이론은 그의 정확한 관찰에 의해 능동적으로 수립된 것이라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티코브라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는 당연한 귀결로써 티코브라헤에 대한 평가를 내려 보려 한다. 과학사의 관점에서 티코브라헤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면 역사적 원근법의 관점을 적용해야만 한다. 역사적 원근법이란 시대의 관점에서 평가를 내리는 것을 일컫는다. 티코브라헤는 분명 현재적 입장에서 볼 때, 틀린 이론의 주창자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과학사적 입장에서 티코브라헤의 입지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핀 'Kepler: Rudolphine Table에서 당대 사람들의 티코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으며, 앞의 분석처럼 과학혁명에 대한 티코의 기여도는 과학사라는 거시적 입장에서도 티코의 긍정적인 영향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증거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철저한 관측 그리고 새로운 우주관의 제시는 분명 하나의 패러다임이었으며, 그 패러다임은 억지가 아닌 시대정신에 부흥한 결과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티코브라헤를 결과적으로 단순히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부흥했고, 또한 더 나은 발전 가능성을 열어둔 중세의 막내로서 그를 판단할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티코브라헤의 정밀한 연구 자료는 케플러에게 양도되어 케플러의 천체운동 법칙을 만드는 기반이 됨으로써, 그 실제적 유용가치도 빛을 발하게 된다. 케플러가 수천 년간 등속원운동을 해왔던 행성들을 버리고 부등속 타원운동을 하는 행성들을 창조해 낸 근저에는 티코브라헤의 정확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가 있었다. 등속원운동을 전제로 아무리 다양한 수학적 가정들을 도입해 보아도 티코브라헤의 관측자료 들과 8각분 이상의 오차가 났다. 티코브라헤 이전이라면 이 정도의 오차는 용인 가능한 것이었지만, 티코브라헤의 조수로서 정밀함의 중요성이 체화되었던 케플러로서는 그러한 오차는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당시의 수학과 물리학으로 설명하기조차 힘들었던 타원이라는, 어쩌면 엉뚱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발상을 하면서 티코의 관측자료 들과 일치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물론 케플러는 이를 통해 티코가 아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완성하게 되지만, 사실 그러한 업적은 또한 티코가 행했던 일련의 천문연구의 승리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과학사를 통틀어 볼 때 티코 브라헤는 천문학자는 단지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패러다임이 자리바꿈을 하는 시기에 두 이론의 절충안을 내 놓은 과도기적 인물로 폄하되어 평가되는 경우가 많고 또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전의 사변적, 논리적 천문학 전통을 관측 천문학의 방법으로 바꾸어 놓은 사실과 이전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완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는 사실은 과도기적이라는 단어하나로 축약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다. 단순히 지구가 고정되어있고 나머지 행성들은 태양을 주위로 돈다는 그의 구조를 보고 당시의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이전의 두 이론을 절충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티코의 이론은 그의 정확한 관찰에 의해 능동적으로 수립된 것이라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티코브라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는 당연한 귀결로써 티코브라헤에 대한 평가를 내려 보려 한다. 과학사의 관점에서 티코브라헤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면 역사적 원근법의 관점을 적용해야만 한다. 역사적 원근법이란 시대의 관점에서 평가를 내리는 것을 일컫는다. 티코브라헤는 분명 현재적 입장에서 볼 때, 틀린 이론의 주창자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과학사적 입장에서 티코브라헤의 입지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살핀 'Kepler: Rudolphine Table에서 당대 사람들의 티코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으며, 앞의 분석처럼 과학혁명에 대한 티코의 기여도는 과학사라는 거시적 입장에서도 티코의 긍정적인 영향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증거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철저한 관측 그리고 새로운 우주관의 제시는 분명 하나의 패러다임이었으며, 그 패러다임은 억지가 아닌 시대정신에 부흥한 결과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티코브라헤를 결과적으로 단순히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부흥했고, 또한 더 나은 발전 가능성을 열어둔 중세의 막내로서 그를 판단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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