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나서)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나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두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아내와 고모를 위한 장례식 추도연설도 정치적 선전을 위해 활용했다. 그의 전쟁기는 교묘하게 고안되어 있어서, 순진한 독자라면 카이사르가 원하는 관점에서 카이사르의 행위를 보게 된다. 이 전쟁기는 꾸밈없고 간결하며 사실에 입각한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비개인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록된 사실은 모두 주의 깊게 선택 제시되고 있다. 카이사르의 정적인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가 죽었을 때 키케로는 카토를 찬양하는 추도문을 썼다. 지금은 사라진 카이사르의 〈안티카토 Anticato〉는 이 추도문에 대한 대답인데, 그가 군사 행정 입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이 글을 쓸 시간을 냈다는 것은 카이사르의 정치적 통찰력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는 카토가 명분을 위해 목숨을 내던짐으로써(BC 46)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에 훨씬 더 정치적으로 강력해졌음을 깨달았다. 카이사르가 카토의 뒷덜미를 잡으려고 애쓴 것은 그의 관점에서 보면 옳은 일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후 150년 동안 순교자 카토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였고, 때로는 위협이 되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글에 나타나 있는 천재성의 증거는, 그 글이 비록 선전을 위해 쓰였지만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글의 평범한 목적을 간파한 독자라 하더라도 그 글을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카이사르의 정치적 업적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 영향은 구대륙의 서쪽 끝에 국한되었고, 중국이나 고대 이집트의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단기간에 끝났다. BC 3세기에 진(秦)의 시황제가 세운 중국의 통일국가가 아직까지 건재하다면 그 미래는 과거보다 훨씬 더 위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시황제보다 위대하지 못했음을 증명할 수 있을지라도 보통 사람과 비교해보면 그는 여전히 거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 관점에서 카이사르는 그야말로 대단한 인물이다. 남들처럼 일찍 두각을 나타낸것도 아니었는데 나타나자마자 세계가 카이사르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만 봐도 엄청나지 않은가. 정치적 소신에선 두말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민중파에 속해 원로원파가 득세를 할 때에도 하고 싶은 말은 다했으면 권력에 아부하기는커녕 소신껏 행동하다 망명까지 해야 했던 모습에선 진정한 정치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장군으로서는 또 어떤가? 카이사르가 전장에 있는 모습만 봐도 로마군인들은 승리를 자신 했다고 할 정도니 과연 전쟁을 아는 자가 틀림없다. 갈리아인들의 끝임없는 배신에도 나중에 항복하면 멸하지 않고 받아주는 포용력... 나같았으면 배신감에 모조리 멸해 버렸을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이렇게 하면 너무 좋은 점들만 드러낸 것 같다. 물론 독재자의 모습, 방탕한 성생활, 엄청난 빚을 오히려 역이용한 점등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다. 아무튼 카이사르 같은 인물이 우리나라에 등장해 이 어려운 시기에 한국을 건져내 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며 리포트를 마치겠다.

키워드

  • 가격2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5.12.01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389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