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Ⅰ 시작하면서
Ⅱ 인신공양
Ⅲ 유대교
Ⅳ 기독교
Ⅴ 유대교와 기독교의 비교
Ⅵ 이슬람교
Ⅶ 유대-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비교
Ⅷ 불교
Ⅰ 시작하면서
Ⅱ 인신공양
Ⅲ 유대교
Ⅳ 기독교
Ⅴ 유대교와 기독교의 비교
Ⅵ 이슬람교
Ⅶ 유대-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비교
Ⅷ 불교
본문내용
전통적인 관습들-가령 전통적인 샤리아(이슬람법)의 적용, 여성의 복종, 종교 지도자들의 완벽한 교육 통제 등등-을 복권시키는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드’는 새로운 위세를 얻었고, 전 세계 무슬림들 간의 새로운 형제애에 관한 사고방식도 퍼져나가고 있다.
Ⅷ 불교
인도 최초의 제국은 B.C. 325년에 수립되었다. 창시자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인 마우리아 왕조가 이후 수백 년 동안 인도아대륙을 통치했다. 아소카가 통치하던 그 최전성기(그의 치세는 B.C. 265~B.C. 235년이었다.)에 이 최초의 체계화된 인도국가는 대략 100만 제곱마일에 달하는 영토와 5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니게 되었다.
새로운 군주라면 으레 그렇듯, 왕위에 오른 직후에 아소카는 전쟁을 벌였다.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승리자와 패배자 모두에게 생겨난 고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을 당시에 그는 아마도 30세 정도였을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붓다(‘깨달은 자’라는 뜻)는 B.C. 563년경에 인도 북부의 어느 왕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결혼도 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29세가 되었을 때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인간의 운명을 자각한다. 슬픔에 압도된 그는 삶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어떤 수단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고타마는 아내와 갓난아기인 아들을 두고 남쪽으로 향해 마가다왕국으로 들어갔으니, 고통의 의미에 관한 의문에 답해줄 수 있는 스승들을 찾으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스승들로부터 신비적 명상의 상태에 들어가는 법을 배웠는데, 이는 그 당시 인도 종교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존재를 성찰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다른 스승들은 그가 만약 극도의 고행을 실천한다면 더 깊은 이해를 얻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수개월 동안이나 고타마는 먹고 마시기를 거의 끊다시피 하며 비바람에 몸을 혹사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고통이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지만, 그런 고통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실패한 상태였다. 그는 고행을 포기하고 음식을 먹어 건강을 회복했지만 탐색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B.C. 528년 5월의 어느 날 아침, 그는 부다가야라는 곳에 위치한 어느 보리수(반얀 나무)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자신이 찾는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악마인 마라가 나타나 그에게 탐구를 포기하도록 유혹했다. “뮌가 가치 있는 일을 하시오.” 마라가 말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노력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고타마는 악마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어떠한 유혹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마라는 패배하여 떠나갔다. 고타마는 그날 밤의 나머지 시간을 명상하며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5월 25일 아침에 그는 35세가 되었으며, ‘정각’을 얻었고, 지고한 존재인 붓다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정확히 무엇을 배운 것일까? ‘나는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깊고, 알기 힘들며, 이해하기 어렵다. (……) 욕망에 굴복하고 큰 어둠 속에 휩싸인 사람들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이 진리는 시류에 거스르는 것이며, 또한 지고하고 깊고 미묘하며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몇 마디 문장만으로는 붓다가 발견한 진리를 제대로 서술할 수 없다. 어쩌면 그걸 이해하는 데에도 평생이 걸릴지 모른다. 붓다는 그것을 우화의 형태로 서술했다. 사람은 방종과 고행 사이의 중도를 추구해야 한다. 이 중도, 이른바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은 올바른 견해, 올바른 생각,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삶의 방식, 올바른 노력, 올바른 주의, 그리고 올바른 집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붓다의 위대한 진리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그가 구도 행각을 떠나기도 전에 깨달은 것으로, 인간의 존재는 충돌과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올바른 진리는 이 모든 어려움과 고통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올바른 진리는 인간이 해방과 자유-즉 니르바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의 올바른 진리는 앞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바로 이러한 해방으로 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불교는 (일반적 의미의) 종교라고 일컬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신을 숭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는 윤리적이었던 이 교리는 이후 멀리, 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어디에서나 관심을 일으킨 깊은 사유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 혁명적인 암시 때문이었다. 깊은 이해심과 연민과 공감의 소유자였던 붓다는 모든 인간이 그 공통의 운명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카스트의 관념에 반대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아시아 남부에 사회적 평등의 원칙을 전파했고, 이는 결국 여러 고대국가들에서 정치적 문제와 아울러 계몽적 정치적 발전을 가져왔다.
붓다가 사망한지 300년 뒤에 이런 깨달음을 얻은 아소카 황제는 전쟁과 폭력을 포기하고 백성들이며 이웃들과의 평화를 추구했고, 훗날 황금기로 여겨지는 인도의 한 시대를 개막했다. 붓다가 사망한 지 300년 뒤에 이런 깨달음을 얻은 아소카 황제는 전쟁과 폭력을 포기하고 백성들이며 이웃들과의 평화를 추구했고, 훗날 황금기로 여겨지는 인도의 한 시대를 개막했다. 불교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회적 평등에 대한 강조, 그리고 인간의 갖가지 해악은 가난에서 비롯된다는 그 교리는 여러 지역에서 자유로운 개혁운동에 영감을 제공했다. 또한 불교도는 대개 식민 정권에 반대하거나, 또는 비우호적이고 적대적인 인종 집단의 지배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강력한 윤리 사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비록 불교도는 (미얀마를 제외하면) 어떤 나라에서도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그 위력에는 변함이 없다. 붓다의 생각이 지닌 신비한 위력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Ⅷ 불교
인도 최초의 제국은 B.C. 325년에 수립되었다. 창시자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이름에서 비롯된 명칭인 마우리아 왕조가 이후 수백 년 동안 인도아대륙을 통치했다. 아소카가 통치하던 그 최전성기(그의 치세는 B.C. 265~B.C. 235년이었다.)에 이 최초의 체계화된 인도국가는 대략 100만 제곱마일에 달하는 영토와 5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니게 되었다.
새로운 군주라면 으레 그렇듯, 왕위에 오른 직후에 아소카는 전쟁을 벌였다.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하지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승리자와 패배자 모두에게 생겨난 고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을 당시에 그는 아마도 30세 정도였을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붓다(‘깨달은 자’라는 뜻)는 B.C. 563년경에 인도 북부의 어느 왕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결혼도 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29세가 되었을 때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인간의 운명을 자각한다. 슬픔에 압도된 그는 삶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어떤 수단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고타마는 아내와 갓난아기인 아들을 두고 남쪽으로 향해 마가다왕국으로 들어갔으니, 고통의 의미에 관한 의문에 답해줄 수 있는 스승들을 찾으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스승들로부터 신비적 명상의 상태에 들어가는 법을 배웠는데, 이는 그 당시 인도 종교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존재를 성찰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다른 스승들은 그가 만약 극도의 고행을 실천한다면 더 깊은 이해를 얻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수개월 동안이나 고타마는 먹고 마시기를 거의 끊다시피 하며 비바람에 몸을 혹사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고통이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지만, 그런 고통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실패한 상태였다. 그는 고행을 포기하고 음식을 먹어 건강을 회복했지만 탐색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B.C. 528년 5월의 어느 날 아침, 그는 부다가야라는 곳에 위치한 어느 보리수(반얀 나무)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자신이 찾는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악마인 마라가 나타나 그에게 탐구를 포기하도록 유혹했다. “뮌가 가치 있는 일을 하시오.” 마라가 말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노력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고타마는 악마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어떠한 유혹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마라는 패배하여 떠나갔다. 고타마는 그날 밤의 나머지 시간을 명상하며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5월 25일 아침에 그는 35세가 되었으며, ‘정각’을 얻었고, 지고한 존재인 붓다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정확히 무엇을 배운 것일까? ‘나는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깊고, 알기 힘들며, 이해하기 어렵다. (……) 욕망에 굴복하고 큰 어둠 속에 휩싸인 사람들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이 진리는 시류에 거스르는 것이며, 또한 지고하고 깊고 미묘하며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몇 마디 문장만으로는 붓다가 발견한 진리를 제대로 서술할 수 없다. 어쩌면 그걸 이해하는 데에도 평생이 걸릴지 모른다. 붓다는 그것을 우화의 형태로 서술했다. 사람은 방종과 고행 사이의 중도를 추구해야 한다. 이 중도, 이른바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은 올바른 견해, 올바른 생각,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삶의 방식, 올바른 노력, 올바른 주의, 그리고 올바른 집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붓다의 위대한 진리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그가 구도 행각을 떠나기도 전에 깨달은 것으로, 인간의 존재는 충돌과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올바른 진리는 이 모든 어려움과 고통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올바른 진리는 인간이 해방과 자유-즉 니르바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의 올바른 진리는 앞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바로 이러한 해방으로 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불교는 (일반적 의미의) 종교라고 일컬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신을 숭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는 윤리적이었던 이 교리는 이후 멀리, 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어디에서나 관심을 일으킨 깊은 사유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 혁명적인 암시 때문이었다. 깊은 이해심과 연민과 공감의 소유자였던 붓다는 모든 인간이 그 공통의 운명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카스트의 관념에 반대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아시아 남부에 사회적 평등의 원칙을 전파했고, 이는 결국 여러 고대국가들에서 정치적 문제와 아울러 계몽적 정치적 발전을 가져왔다.
붓다가 사망한지 300년 뒤에 이런 깨달음을 얻은 아소카 황제는 전쟁과 폭력을 포기하고 백성들이며 이웃들과의 평화를 추구했고, 훗날 황금기로 여겨지는 인도의 한 시대를 개막했다. 붓다가 사망한 지 300년 뒤에 이런 깨달음을 얻은 아소카 황제는 전쟁과 폭력을 포기하고 백성들이며 이웃들과의 평화를 추구했고, 훗날 황금기로 여겨지는 인도의 한 시대를 개막했다. 불교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회적 평등에 대한 강조, 그리고 인간의 갖가지 해악은 가난에서 비롯된다는 그 교리는 여러 지역에서 자유로운 개혁운동에 영감을 제공했다. 또한 불교도는 대개 식민 정권에 반대하거나, 또는 비우호적이고 적대적인 인종 집단의 지배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강력한 윤리 사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비록 불교도는 (미얀마를 제외하면) 어떤 나라에서도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그 위력에는 변함이 없다. 붓다의 생각이 지닌 신비한 위력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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