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대원군 정권의 수립과 등장 배경
1) 대원군에 대한 전반적 평가
2) 흥선대원군의 가계(家系)와 수립과정
3) 대원군이 등장한 시기의 대내외적 배경
2.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쇄국정책
1) 대내정책
2) 대외정책
3. 대원군 정책에 대한 평가
1) 대원군에 대한 전반적 평가
2) 흥선대원군의 가계(家系)와 수립과정
3) 대원군이 등장한 시기의 대내외적 배경
2.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쇄국정책
1) 대내정책
2) 대외정책
3. 대원군 정책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왔다. 대원군 당시엔 개국정책을 밀고 나갈 사상적 분위기와 여건이 되지 않았고, 대원군은 이런 사상적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원군이 표방한 능력본위 인사정책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당색이나 신분출신을 초월해 그가 등용한 인물은 극히 제한이 되있었다. 대원군 집권기에는 정치적으로 노론이 관직을 거의 독점하고 있던 세도정권기와는 달리 종실 내지는 노론 이외의 당색에 속한 인물을 주요 관직에 배치함으로써 노론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런데 대원군 당시의 관직에 노론의 참여도가 높은 것은 대원군의 기존의 세도집단인 노론을 철저히 배격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일정한 연대 아래 자신의 정권을 유지해 가고 있었음을 뜻한다. 대원군은 세도벌열들을 가능한 배제하고 있었지만 노론세력을 비롯한 기득권층 모두를 배격한건 아니다.
대원군은 사회적으로 집권 양반세력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봉건적 신분제도를 혁파를 시도하지 못했고, 기존 연구에서 평민층의 등용을 높게 평가하던 부분도 사실 대원군의 사조직을 강화해 특정부류의 평민들을 편입한 것이지, 그들이 국가의 공적 행정기구에서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본위로 발탁되 양반계층과 대등하게 관직에 취임한 것은 아니다. 대원군이 출신지역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했다는 부분도 예외적인 일이었다. 대원군시대에 경제적으로 반상에 관계없이 세금을 거둔 점이나 중간관리의 농간을 배제한 수세, 무명 잡세의 철폐등은 당시 안동 김씨 세도정권의 부패나 그의 하야뒤에 등장한 민씨 일파의 부정을 고려할 때 획기적인 조치였고, 대원군의 인기를 상승시키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추진한 제반 경제정책은 전통적인 농본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북학파가 주장한 상, 공, 광업 진흥/ 해외통상 따위를 도외시한 문제가 있다.
대원군의 내정개혁은 전 근대적 질서를 유지/ 강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전개되어 갔는데, 조선의 보수 집권세력의 반발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전통속의 혁신'이라는 성격의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개혁의 주체 내지 권력기반이 전통적인 세력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원군의 개혁으로 왕조의 권위가 일신되고 여러 가지 폐정이 상당히 개선되어 민생안정을 도모할수 있었다. 대원군은 업적지향형 정치가였다. 그러므로 대원군의 개혁은 제국주의세력이 등장하는 시대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한 개혁이 되지도 못하였고, 근대사회를 지향한 개혁도 아니라고 볼수있다.
대원군은 사회적으로 집권 양반세력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봉건적 신분제도를 혁파를 시도하지 못했고, 기존 연구에서 평민층의 등용을 높게 평가하던 부분도 사실 대원군의 사조직을 강화해 특정부류의 평민들을 편입한 것이지, 그들이 국가의 공적 행정기구에서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본위로 발탁되 양반계층과 대등하게 관직에 취임한 것은 아니다. 대원군이 출신지역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했다는 부분도 예외적인 일이었다. 대원군시대에 경제적으로 반상에 관계없이 세금을 거둔 점이나 중간관리의 농간을 배제한 수세, 무명 잡세의 철폐등은 당시 안동 김씨 세도정권의 부패나 그의 하야뒤에 등장한 민씨 일파의 부정을 고려할 때 획기적인 조치였고, 대원군의 인기를 상승시키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추진한 제반 경제정책은 전통적인 농본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북학파가 주장한 상, 공, 광업 진흥/ 해외통상 따위를 도외시한 문제가 있다.
대원군의 내정개혁은 전 근대적 질서를 유지/ 강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전개되어 갔는데, 조선의 보수 집권세력의 반발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전통속의 혁신'이라는 성격의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개혁의 주체 내지 권력기반이 전통적인 세력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원군의 개혁으로 왕조의 권위가 일신되고 여러 가지 폐정이 상당히 개선되어 민생안정을 도모할수 있었다. 대원군은 업적지향형 정치가였다. 그러므로 대원군의 개혁은 제국주의세력이 등장하는 시대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한 개혁이 되지도 못하였고, 근대사회를 지향한 개혁도 아니라고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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