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기쁨조”의 실체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북한의 기쁨조
1. 기쁨조란?
2. 김정일 '비밀파티' , 김일성 '요정정치가 원조
3. 기쁨조의 선발과정과 관리
4. 기쁨조의 교육훈련 방법
5. 기쁨조의 선발과정후 차출의 시련
6. 기쁨조의 호화생활
7. 기쁨조의 비밀파티 및 그밖의 활동
8. 기쁨조의 활동 그 이후
9. 기쁨조 출신
10. 만수대 예술단과 금성학원

본문내용

료사진
오씨는 왕재산경음악단에는 목란조 외에 백일홍조와 진달래조라는 두 개의 무용조가 더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목란조는 키가 160㎝, 백일홍조 163㎝, 진달래조는 165~170㎝로 각각 12명씩으로 구성돼 있다. 목란조는 디스코ㆍ탱고ㆍ왈츠 등 현대무용을, 백일홍조와 진달래조는 조선무용 등 고전무용을 담당하며, 주로 김정일의 주말 파티 등에 출연해 춤을 춘다.
파티 출연 여부는 참석자의 면면과 분위기에 따라 결정되는데 평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불려 나간다고 한다. 특히 현대무용을 하는 목란조는 노출이 심한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김정일이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크고 작은 비밀 파티에 주로 출연한다.
김정일이 주요 인물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 때는 그의 부인인 고영희가 직접 나와 출연할 무용수들을 고르고 주의사항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 당중앙위 비서인 김용순ㆍ김기남,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염기순 등이 파티의 단골손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김정일이 공연을 보고 기분이 좋으면 무용수들에게 수시로 수백달러의 지폐와 푸짐한 선물을 안기곤 했죠.” 기쁨조에 들어가면 일체 외부와의 접근이 차단된다. 대신 일상생활은 일반주민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호사스럽다. “아침은 프랑스 요리, 점심은 사시미 등 일식, 저녁은 한식과 서양 음식이 주요 메뉴였어요. 신발은 대부분 이탈리아산 고급 수제화이며, 의상은 주로 일본 옷을 입었고요. 피부를 맑고 깨끗하게 가꾸기 위해 매일 요구르트를 먹었습니다.” 장신구도 초호화판이어서 김정일의 이름이 새겨진 오메가 금시계에다 각종 값비싼 귀금속으로 치장했다고 한다. “93년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과 함께 몰래 함북 칠보산으로 사냥놀이 갔던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군요. 사냥을 마치고 동해안 쪽 해칠보에서 뱃놀이를 즐기기도 했는데, 경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죠.” 한동안 아련한 추억에 잠겼던 오씨는 당시 김정남이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오씨는 11살 때부터 리듬체조 선수에 뽑혀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92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어느 날 이찬선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직접 체육단에 찾아와 그를 무용조로 선발했다. 그러나 무용수 생활은 1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늘 일정한 체중과 몸매를 유지해야 하는데 늘기만 하는 체중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목란조 생활에 관한 일체의 비밀 엄수를 맹세하고 거기서 나와 집단체조창작단 리듬체조 안무가로 새 삶을 시작했다. 지난해 탈북하기 직전까지 그는 안무가로 활동했다. 지난 8월 대구유니버시아대회에 리듬체조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했던 조순덕(심판) 김은주(지도원) 박광복(지도원)도 그와 어릴 때부터 함께 훈련했던 동료들이다. 오씨는 경기가 벌어졌던 경주까지 찾아온 그를 발견하고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해 하던 옛 동료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10. 만수대 예술단과 금성학원
- 만수대 예술단
1946년 창립된 평양가무단을 모체로 1969년 설립되었다. 공훈남성중창조 ·여성중창조 ·공훈여성기악중주조 ·무용조 ·관현악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혁명적 사상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로 혁명가극과 음악무용서사시 등을 공연하고, 소속 단원수는 300명 정도이다. 북한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인들로 구성되었다. 전용으로 사용하는 만수대예술극장은 평양에 있으며, 총 건축면적 6만m2 규모로 내부에는 2200 m2의 회전무대와 4000명을 수용하는 관람석을 갖추고 있다. 남한의 대표적인 공연장으로 세종문화회관이 있다면, 북한에는 만수대 예술극장이 있다. 북한의 공연장은 대부분 시설 규모가 크다.
- 금성학원
北 문화예술 최고명문 '금성학원'
▲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금성학원 학생들
제 16회 아시아 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미녀 응원단’이 또 한번 화제다.
북측은 응원단이 아니라 ‘청년학생협력단’이라고 불려 줄 것을 요청하면서 ‘미녀’라는 표현에도 정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응원단의 미녀들은 금새 남한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어 인터넷 팬카페도 속속 생겨나는 중이다. 이들은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예능 분야에서도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로, 모두 ‘금성학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로 알려지고 있다.
금성학원은 1989년 5월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이 설립됨에 따라 이듬해 9월 문화예술 전문인 양성을 취지로 한 ‘금성 제1고등중학교’로 출범하였다. 북한에서 금성(金星)은 김일성을 이르는 말로, 최고의 기관에 붙이는 명칭이다. 2002년 북한의 고등중학교가 모두 중학교로 바뀌면서 ‘금성 제1중학교’가 되었다가 2003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됐다.
수준급 외모, 탁월한 기량으로 명성
예능분야에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6~20세의 학생들을 선발하며, 외모는 ‘수준급’을 요구한다. 일반 인민들은 어려운 살림에 자녀들에게 예체능 교육을 시킬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금성학원 학생 대부분은 간부의 자녀들이라고 한다. 평양음대 출신 탈북자 유지성씨는 “자식을 잘 교육시키고자 하는 욕구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다”면서 “예능분야 최고 명문인 금성학원에 입학시키려고 간부들끼리도 뇌물을 쓰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금성학원은 ‘특정분야에서 완벽하게 키운다’는 목표로 일대일 교습을 강도 높게 실시한다. 의무교육 과정인 4년제 인민반 및 6년제 중등반과 함께 4년제 전문부를 별도로 두고 있다. 학생들은 오전 수업이 끝나면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과학기술, 스포츠, 기악, 미술, 성악, 문학, 무용 등 각종 예체능 소조에서 기량을 익히고 있다.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인기를 끌었던 응원단은 금성학원의 ‘취주악단’(브라스밴드)소속이었다. 여성취주악 양성반이 금성학원에 개설되어 있다. 이들은 졸업 후 인민보안성, 철도성 등의 취주악단에 배치된다.
고된 훈련을 받고 졸업하면 기량이 뛰어난 학생은 만수대예술단, 평양교예단, 예술선전대, 피바다가극단 등 각종 예술단체로 가게 된다. 기량이 특출한 뿐더러 외모까지 뛰어나면 기쁨조로 선발되어 가기도 한다.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5.12.12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624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