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적인 선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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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 적인 선포인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문제 제기
제 1장. 인간의 말과 하나님
별도연구1. 언어 속에서의 계시의 사유
별도연구2. 하나님에게 말함(기도)에 대한 한 측면

제 2장.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
별도연구3. 역사적 예수의 문제

제 3장. 영적 존재로의 인간과 하나님 말씀

본문내용

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주관’이 되심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증거이고,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말을 거는 주관’이 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즉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으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처럼 말하는 주관이 되는 행위이고,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에게 말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자신이 되는 행위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계시의 중요한 틀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함에 있어서는 ‘말씀하시는 주관’이시고 듣는 자의 믿음에 관하여는 ‘들으시는 주관’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에 관하여는 전적으로 “듣는 주관”이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하여는 ‘말하는 주관’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계시와 신앙의 관계가 분명하다. ‘말하시면서 듣는’ 하나님과 ‘들으면서 말하는’인간과의 영적인 관계이다. 계시와 신앙은 어느 한편을 강조하거나 어느 한 편을 간과할 수 없다. 이 둘은 같은 차원의 구별된 면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계시이고 인간 편에서는 신앙이다. 따라서 계시를 논하려면 신앙을 함께 생각해야 하고 신앙을 논하려면 계시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의 실재성은 계시와 신앙의 사이에서 논해져야 한다. 만약 실재성이 어느 한 편에서만 논해진다면 오류를 가지게 된다. 만약 계시만 강조되고 신앙이 등한시 된다면 ‘인간을 말하는 하나님’은 강조되지만 ‘인간을 듣는 하나님’은 간과된다. 이것은 신중심적 사유의 관점이 된다. 반면 만약 신앙이 강조되고 계시가 등한시되면 ‘하나님을 말하는 인간’은 강조되지만 ‘인간을 말하는 하나님’은 도외시된다. 이 관점은 인간중심적 사유의 관점이 된다. 전자의 사유는 철학에서는 헤겔의 대표자가 되고 신학에서는 바르트가 되겠다. 후자의 사유에서의 철학의 경우는 포이엘바흐가 되겠고 신학의 경우 불트만을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실재성이 강조되면서 인간의 실재성은 함몰되는 오류를 가진다. 후자의 경우는 인간의 실재성은 강조되는 대신 하나님의 실재성이 인간에 의해 처분되는 오류를 가진다.
그러나 계시와 신앙은 한 차원의 서로 다른 면들이기 때문에 구분할 수 있지만 나누거나 어느 한 편을 강조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인간 없는 하나님을 말하거나 반대로 하나님 없는 인간을 말하는 인상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실재성은 ‘자신을 말하면서 인간을 들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들으면서 자신을 말하는 인간’사이에서 밝혀진다. 참된 설교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간의 말로 설교하는 것이라면, 계시 혹은 신앙(하나님 혹은 인간 중에) 가운데 어느 한편에 서서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이에 서서 말해야 한다.
설교자가 하나님 편에 서서 설교하면 그 설교는 대단히 경건하고 은혜로운 설교이고 성경적이고 말씀 중심적인 설교로 간주되지만, 인간 중심적으로 설교하면 세상적이고 은혜롭지 못하고 성경과 거리가 무관하고 자유주의적인 설교로 간주되고 있다. “하나님”울 많이 말하면 경건하고 영적이며, “인간”을 많이 말하면 세상적이라고 생각는 선입관이 현실적인 문제로 보인다. 이런 맹점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해야 하는 사유는 신중심적이든 인간중심적이든 어느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사유이다. 그러기에 설교란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말하는 셈이다. 설교자가 하나님을 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과제를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여는 말씀이지 자신을 바라는 말씀이 아니다. 실재성을 여는 말씀이지 실재성을 바라는 말씀이 아니다. 즉 하나님은 말이고 곧 실재성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은 실재성을 상실한 인간 자아가 잃은 실재성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가지는 세상에 대한 생각, 즉 세계관을 하나님에게 부가 또는 부여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실재성이 아니라 실재성에 관한 이데아이다. 설교가 하나님이 자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인 인간이 그리는 하나님을 세계적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이데아이다. 설교는 설교자의 자신이 특정 세계관을 통해 투영된 말로서, 이것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이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과 설교자 자신 그리고 듣는 자 자신의 삼중의 관계에서 역사로 일어난다. 이 삼중의 관계는 수직적으로는, ‘말하면서 듣는 자’와 ‘들으면서 말하는 자’의 관계이다. 이 삼중의 관계는 신앙에 의해서만 감지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이 전제되지 않으면 설교는 전적으로 순수한 인간의 말이다. 신앙이 아니라면 계시를 감지할 수 없다. 하나님은 ‘말하시는 분’이 되시고 설교자는 ‘응답하는 자’가 된다. 설교자는 ‘하나님 자신’을 들으면서 ‘듣는 자’에게 ‘자신’을 말하게 된다. 설교자의 말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나오시자만 동시에 ‘듣는 자’의 신앙은 ‘하나님 자신’이 그에게로 들어가시는 길이 된다. 설교자의 ‘말들’을 ‘듣는 자’의 신앙은 ‘바로 그 말씀’으로 듣게 한다. 이렇게 보면 설교자의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만드는 힘은 ‘하나님 자신(계시)’과 ‘듣는 자’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는 인간의 말이 가지는 부정적인 면 때문에 항상 자기 반성의 사명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설교할 때, ‘내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는 사실에 역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말씀을 가리고 있다’에 자기 반성의 포커스를 두어야 한다. 반면 듣는 자들은, 설교자의 말을 들으면서 ‘인간이 말한다’는 사실에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의 말이 가지는 두 면, 즉 한편으로는 인간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로고스가 나오시는 길이 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순수한 하나님의 로고스를 세상적으로 왜곡시키는 장본인이 되는 사실 때문에, 결국 설교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우리에게는, ‘필요하지만 하나의 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키워드

기독교,   선포,   말씀,   하나님,   사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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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29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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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0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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