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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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산 안창호의 교육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생애

Ⅱ. 교육사상

Ⅲ. 교육내용

Ⅳ. 교육방법

Ⅴ. 현 교육에 대한 시사점

Ⅵ. 평가

본문내용

도산은 동맹수련의 단체훈련에서 매몰되기 쉬웠던 “개인”의 문제를 대화 방법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틈만 나면 일대일로 대화하기를 즐겼으며 대화하는 가운데서 획일적인 교육내용을 개별적으로 적용하여 가르친 점은 청년들의 능력을 고려한 학습방법이며, 개인의 인격을 중시한 교육방법으로서 오늘날 중요시하는 능력별 개별 학습과 인성교육이 도산에 의해 이미 실시되었음을 그가 교육의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실천에 옮긴 교육의 선구자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④ 강연식 교육방법
도산은 사회 교육의 방법으로 수 많은 연설을 하였는데, 20세 전후의 평양 쾌재정에서의 연설을 비롯하여 대성학교 시절과 30대에 미국서 귀국 도중 일본 동경에서의 연설, 귀국 후 평양과 서울 등 국내외에서 한 수 많은 연설을 통하여 민족혼을 일깨웠다. 그는 선천적으로 웅변가의 자질을 타고났지만, 체험에서 우러나는 확고한 신념에 찬 호소였기에 청중을 감복시켰으며, 가식이 없는 진실한 그의 고백이였기에 민중들은 그의 사상에 깊이 젖어 들었고, 논리정연하여 국민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였다.
Ⅴ. 현 교육에 대한 시사점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운이 기울고 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일인지를 모르고 안절 부절하는 민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라 일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소.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장사하는 일로 나라 일을 하고 있고, 저 능라 도에서 김을 매는 사람은 호미를 가지고 나라 일을 하고, 솔밭에서 나무를 하는 사람은 낫을 가지고 나라 일을 하고 있는 셈이오."
도산이 젊은 시절 미국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의 번화가를 걷고 있을 때, 두 사람의 한국인이 서로 맞잡고 싸우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미국에 있는 중국인들에게 인삼을 파는 인삼 장수였었는데, 서로 맡은 구역을 침범했다고 시비가 벌어져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우리 교포의 생활은 나태하고 책임감이 없어 미국 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알고 난 후 도산은 공부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교포들에게 성실 근면하고 알뜰한 생활을 하도록 지도 계몽하는 일이라 여기고, 매일같이 교포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마당을 쓸고 유리창을 닦으며, 심지어 변소까지 깨끗이 청소해 주었다. 처음에는 모든 교포들이 도산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의 태도에 냉담했으나 곧 그의 정성을 알게 되었다. 또, 도산은 미국인 과수원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무자들에게 "미국인의 과수원에서 귤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됩니다."라고 가르쳤다. 한국인 노무자 한 사람이 성실하고 근면하여 농장 주인의 신용을 얻게 되면 미국인들은 한국인을 신용하여 성실한 국민으로 신임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교포들은 어디서나 쉽게 일 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모든 교포들이 부지런히 저축하여 재산을 모으면 그것이 곧 한국의 국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산의 가르침과 인격에 감화된 많은 교포들은 실제로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하여 재산을 모아, 많은 돈을 독립 운동 자금으로 회사하여 훗일 긴요하게 쓰이게 되었다.
도산의 행적에서 우리는 나라 사랑의 바른 길은 바로 자기 주변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착실하게 이루어 나가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Ⅵ. 평가
이 만국에 신뢰받는 민족이 되게 하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하고 도산은 기회있을 때마다 학도에게 타일렀다.
거짓이 없는 성실한 사람, 이것이 교육을 통하여 실현하려는 인간형이었고, 그의 민족성 개조의 목표이기도 하였다.
안창호는 민족수난기에 민족갱생을 꾀한 위대한 교육자였다. 따라서 오늘에 되살려야 할 교육자상으로 제1의 인물이다.
훌륭한 교육자상으로 내세울 만한 기준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다음 세 가지에 비추어 보아서도 안창호를 오늘에 되살려 본받아야 할 교육자상으로서 훌륭하다 하겠다.
첫째, 투철한 역사의식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그는 조국의 독립 기초가 다른 데 있지 않고 인격혁명인 자아혁신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따라서 '교육'에 힘써야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는 점에서 뛰어난 교육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끝끝내 이 길로 해서 민족독립이 가능하다고 보았거니와 이러한 확신은 지금에 있어서도 변함이 없는 진리라고 믿어진다.
둘째, 탁월한 인격과 품격을 지닌 자라는 점이다. 도산이 해온 행적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뛰어난 인격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진실한 인격을 무기로 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흔들어 놓았다. 남강 이승훈이 그와의 만남을 계기로 대실업가로부터 결연히 교육계에 투신케 한 것 역시 그이 남다른 품격이 그러한 대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이라고 하겠다.
셋째, 풍부한 교육학적 견식과 학문적 독창성을 소유한 점이다. 사실 그는 평화시일 것 같으면 아마 교육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재평가해 볼 때 역시 그는 위대한 교육자였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의 훈도를 받은 청년들은 도산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변함없이 스승의 유지를 잊지 않았다. 도산의 인격혁명교육 사상은 지금도 흥사단운동을 통하여 발전시키고 있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務實力行'의 가르침을 심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하고 애쓰던 목적이 조국을 위함에 있었고, 밥을 먹고 잠을 자도 조국을 위해 일함 힘을 위함이었다. 그가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서 비록 나는 독립을 못 보고 먼저 가지만 후손들은 그 날이 꼭 오고 말 것이니 "낙…심…마…오…"라는 깊은 뜻의 유언을 남기고 떠나니,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조국광복을 7년 앞둔 1938년 3월 10일이었다.
도산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민족주의 교육사상가이면서 영원한 한국의 교육자상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 역시 내가 교사가 된다면 도산의 독창적인 운영 방침과 지도 방법 아래 “실력을 길러라”라는 실천 중시했던 것처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사 이전에 한 사람으로써 정직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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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01.02
  • 저작시기2005.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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