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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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레오 까락스

♣뤽 베송Luc BESSON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1932~1984)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1930~ )

♣키에슬롭스키

♣베르트랑 블리에 

♣베르트랑 타베르니에Bertrand Tavernier

♣르네 클레망(Rene Clament)

♣루이 말Louis Malle

♣자크 두아이용 Jacques Doillon

본문내용

과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안녀 아이들>과 같은 다소 예외적인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에로틱 시네마에 어느 정도 일가견을 가진 감독이다. 1959년 <연인들>이 개봉되었을 때의 반향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였다.
10대 창녀를 소재로 다룬 브룩 쉴즈의 <프리티 베이비> 역시 그의 대표적인 화제작. 섹스는 그의 중요한 테마지만, 격조를 잃지 않고 묘사에 탐닉하지 않는 지적인 면이 있다. 그는 " 이 영화가 충격적이라면 그것은 위선적인 전통과 도덕성을 거부하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1950년대 중반부터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었던 누벨 바그 운동, 루이 말은 그 출발과 함께 언제나 논란의 재미를 던져주는 극영화와 기록 영화들을 넘나들었다. 프랑스 감독이었지만 오히려 미국적인 요소들이 가득했던 그는 죽기 전까지도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해왔다. 하지만 사실적인 심리 묘사와 짜임새 있는 드라마 구조를 구사하는 작품 경향 때문에 그는 헐리우드에 더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루이 말은 아카데미 같은 학교에서 영화를 배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현장에서 직접 영화를 배웠다. 처음에는 프랑스 영화 아카데미에 등록했으나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 스무 살의 나이에 자크 쿠스토 선장과 함께 해양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쿠스토 선장의 해양 다큐멘터리는 우리나라에세도 텔레비전으로 여러 번 방송되었을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으로, 그의 초기 작품 대부분은 감독 뿐 아니라 촬영, 편집까지 루이 말이 도맡아왔다. 루이 말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극영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 만든 장편 다큐멘터리 <침묵의 세계>(1955)는 자크 쿠스토와 루이 말의 공동 감독으로 그 해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 종려상을 받았다. 루이 말의 당시 나이는 스물 세 살이었다. 1957년, 25세에 스릴러물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연인들>이 그 뒤를 이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부유층 유부녀가 한 청년과 사랑에 빠져 자신의 집에서 정사까지 벌이고 결국 남편과 아이 대신 청년을 택해 떠난다는 내용의 <연인들>은 50년대 당시의 상황에선 파격적이었다. 1977년 도미와 함께 그는 다시 극영화로 돌아왔다. <프리티 베이비>가 그의 미국 생활의 시작을 알려준다. 1987년 말은 베니스와 세자르를 석권하면서 다시 한번 그의 명성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굿바이 칠드런>. "이 영화는 내가 1944년 11살에서 12살에 걸쳐 실제로 체험했던 것을 근거로 하여 만든 영화이며 소년 쥘리앵은 바로 나다."라고 말 감독은 말했다.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가톨릭 기숙사에서 사는 쥘리엥과 장 보네, 두 소년의 만남과 이별까지를 전쟁이라는 상황을 통해 가혹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생활을 어린 시절의 쓰라린 추억 혹은 유대인 학살에 관련된 프랑스인의 한 명이라는 죄책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몇 편의 그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던 <데미지>가 귀국 첫 작품이다. 이후 그는 <보헤미안의 생애>와 <42번가의 바냐>를 유작으로 남겼다.
♣자크 두아이용 Jacques Doillon
1944년 파리 태생으로, 수줍고 은밀하고 엄격한 연출로 유명하다. 또한 그만의 배우를 다루는 탁월한 능력은 거의 신비한 비밀처럼 알려져 있다. 거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는 자크 두아이용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프랑수아 트뤼포의 '발견' 때문이었다. 그는 두아이용의 <머릿속의 손가락>을 보고 감동받은 나머지 <구슬 주머니>의 제작을 지원하였다. 그 후 드와이용은 모리스 피알라와 함께 은둔 속에서 마치 장 르누아르와 같은 스타일의 자연주의풍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었다. 70년대에는 '소녀' 연작을 발표하였으며, 80년대에는 '가족' 연작으로 에릭 로메르로부터 '우리 시대의 로셀리니'라는 찬사를 받았다.
거의 한 편씩 소문없이 영화를 만드는 자크 두아이용은 90년 <꼬마 범죄자>를 내놓으면서 같은 해 비탈리 카네브스키의 <멈춰, 죽지만 살아날 거야>와 함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위험에 도전하지 않는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니야." 자크 두아이용이 밝히는 영화 작업의 좌우명이다. 모든 예술가는 혼자이겠지만 두아이용 감독 역시 고독한 편이다. 그는 지금까지 약 20편 가량의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그의 나이에는 좀 많이 만든 셈이지만 배급이 잘 되진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세계를 갖고 있다고 인정을 받는다.
젊은 시절엔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다고 한다.잘 놀기도 하고 미래에 관한 무한한 의문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관심있게 본 영화를 만든 감독들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칼 드레이어, 미조 구찌 겐지, 오즈야스지로, 존 카사베츠 등이다. 그러나 특별한 스승은 없고 영화를 많이 보는 편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지금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에서 살고 있는데, 가끔 파리에 가면 요즘 영화가 아니라 작가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을 찾아 옛날 영화를 보는 편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그는 현실적이지 못한 까닭인지 상업성과 흥행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멀리 떨어져 사는 그의 삶은 고독 그 자체이고, 그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그의 영화에만 관심이 있다. 그의 영화 가운데 스스로 만족도가 높은 작품은 <괴짜 소녀Le Drolesse>와 <꼬마 범죄자Le petit criminel>와 <뽀네뜨>이다. 그의 영화에 대한 비평은 언제나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어 아주 좋든지 아주 나쁘다. 베니스 영화제 때 이탈리아 비평가들은 그의 영화를 평하여 "프랑스는 악의 문제에 고통받는다", "자크 두아이용의 영화는 카망베르 치즈와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아이용 감독은 카망베르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비난인지 칭찬인지 혼동되는 이런 비평도 있었다. "프랑스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과 자크 두아이용만 빼면 완벽할 것이다." 사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은 세계 최고의 감독이 아닌가? 두아이용 감독은 로베르 브레송과 자신을 같은 위치에서 평가해준 그 비평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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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6.01.10
  • 저작시기2006.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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