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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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임나일본부의 개관 .............................2

2.임나의 기록............................................3

3.임나를 주장하는 자료..........................3

4.임나일본부 논문.....................................5

5.결론............................................................6

본문내용

수하였던 데 대한 반대급부이며, 왜계통의 인명은 일찍이 일본열도에서 백제에 이주하여 백제왕의 신하 노릇을 하고 있었던 왜계통의 백제인이라고 규정지었다. 김현구, 「4세기 가야와 백제야마토왜의 관계」,『한국고대사 논총』6, 1994
5)외교사절설
‘부(府)’라고 하는 표기는 【일본서기】역사관의 산물로서 그 원형이 ‘미코토모치’임을 확인하고 ‘미코토모치’의 실체가 기관이나 관청이 아닌 사신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임나일본부’를 임나에 파견되어진 왜의 사신들로 이해하였다.
5.결론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라는 『일본서기』, ‘광개토대왕비문’, 칠지도, 송서, 가야지역에서 확인한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들 어디에서도 임나일본부의 확실한 증거는 없다. 결국 고대 일본이 4세기부터 6세기까지 200년간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정확히 입증된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은 사실을 왜곡해 임나일본부라는 허구의 역사상을 만들어 조선 침략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필요한 자원을 한반도에서 조달하려는 의도가 결국 임나일본부라는 허구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임나일본부는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 다른 논지를 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역사는 분명히 당시의 사실을 정확히 고찰해 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역사는 분명히 당시의 사실을 정확히 고찰해 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임나일본부는 한일 양국의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학문적이성적 차원에서 그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수반될 때 안개에 쌓여있는 그 시대의 역사가 그 실체를 드러내고 올바르게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
이홍직, 『국사대사전』, 민중서관 1997
이기백 외, 「임나일본부연구의 문제점」,『한국사 시민강좌』11, 일조각 1992
윤석효, 「가야의 왜지진출과 세력확장」,『신편가야사』, 혜안, 1997
부산경남역사연구소 엮음, 「임나일본부란 무엇인가」,『시민을 위한 가야사』, 1996
김정배, 「임나일본부의 허구성」,『한국고대사와 고고학』, 신서원, 2000
김기흥, 「광개토대왕비문」,『새롭게 쓴 고대사』, 역사비평사, 1993
김태식, 「임나일본부문제의 연구사 검토」,『가야연맹사』, 대정문화사, 1998
김정배, 「삼한한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들에 대하여」,『북한의 우리고대사인식』Ⅱ, 대륙연구소, 1991
김태식, 「고대 한일관계 연구사-임나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합동토론회 논문
  • 가격1,3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02.03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5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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