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엄을 보일 수 없다며 왕은 화를 내었다. 조리는 왕에게 뉘우칠 뜻이 없음을 알고 여러 신하와 함께 폐위시킬 것을 모의했다. 왕은 사태를 모면할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45. 淵蓋蘇文
소문은 성품이 잔인하고 포악하여 아버지 동부대인 대대로의 뒤를 잇지 못하게 되었다. 소문은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여 그 직위를 이어 받기를 간청하였다. 여러 사람이 불쌍히 여겨 마침내 이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막상 직위를 계승하자 잔인하고 흉포한 행동을 하였다. 여러 대인이 왕과 은밀히 모의하여 그를 죽이려 함을 안 소문은 자기 부의 군사를 전부 모아 사열하는 것처럼 하고 손님들이 오자 그들을 모두 죽였다. 곧이어 궁중으로 달려가 왕을 죽이고 왕의 동생의 아들 장(臧)을 왕으로 세우고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 그가 온 나라를 마음대로 휘둘러 사람들이 매우 괴로워했다. 당 태종은 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대신들을 없앴으며, 백성을 못살게 하더니 이제 자신의 명령까지 어긴다하여 크게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였다.
46. 弓裔
궁예는 5월 5일에 태어났다. 일관(日官)은 궁예가 오午자가 거듭 들어 있는 날에 났고 나면서 이가 있으며 특이한 빛도 비추었으니 장차 나라에 이롭지 못하다 하자 왕은 그를 죽이도록 하였다. 종은 아이를 안고 도망하여 숨어서 그를 길렀다. 궁예는 열 살이 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스스로 선종(善宗)이라고 불렀다. 신라 말기 정치가 거칠어지고 백성이 흩어져 나라가 혼란해지자 선종은 이 틈을 타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하였다. 군대가 무척 강해여 적들이 선종에게 와서 항복하는 자가 많아지자 선종은 나라를 창건하고 임금임을 자청했다. 선종은 자기의 강한 기세를 믿고 흉포한 짓을 제멋대로 하니 신하들이 두려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하들은 은밀히 모의하여 태종에게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권하였다. 여러 장수가 태조를 호위하고 대문으로 나가면서 ‘왕공이 이미 정의의 깃발을 들었다’고 외치게 하였다. 이에 따르는 자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궁예는 이 말을 듣고 산의 숲으로 들어갔는데 얼마 안가서 부양 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47. 甄萱
견훤의 부모가 아기를 수풀 밑에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과연 자라면서 체격이 웅대해지고 기개가 호방하고 범상치 않았다.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면서 완산주에 이르자 고을 백성이 환영하자 기뻐하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신라 김유신이 개국 600년 만에 백제를 멸망시키니 도읍을 세워 묵은 울분을 씻겠다’하며 후백제의 왕임을 자청하였다. 동광3년(925) 견훤과 태조가 서로 겨루다 승부를 내지 못해 임시로 평화를 유지하는 술책으로 인질을 교환하였다. 4년 태조에게 인질로 간 진호가 죽자 견훤은 신라 왕도까지 들어가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왕을 죽였다. 견훤과 왕건의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견훤에겐 아들이 많았는데 그 중 넷째 금강을 이뻐해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그러자 그의 형 신검·양검·용검이 시기하였다. 이찬 능황은 신검을 꼬드겨 견훤을 금산사 불당에 가두고 금강을 죽였다. 석 달 동안 갇혀있다 도망가 태조를 찾아갔다. 그는 태조의 위엄에 기대어 반역한 자식을 죽이려고 태조에게 몸을 맡겼다. 태조는 먼저 태자 무와 장군 술희를 보내 보병과 기병 10만 명을 거느리고 천안부로 달려가게 하였다. 신검이 군사를 이끌고 막아섰으나 패였다. 태조는 능환을 문책하였다. 능환은 왕위를 빼앗은 것은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지 본심이 아니었으며, 목숨을 바쳐 사죄하여 그의 목숨을 살려줬다. 견훤은 울화가 나 등창이 생겨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태조는 군령이 엄정하고 공명해 군사들이 추호도 범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지방의 주와 현들이 안심하고 늙은이나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 <삼국사기>의 <열전>은 김유신부터 견훤까지 인물의 생애와 역사적인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그 이야기의 종류는 전장에서 숨진 충신, 왕을 죽인 반역자, 효녀·효자 등 다양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인물마다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대화를 길게 삽입해 내용을 이해하는데 좀더 수월하고 생동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친 충의열사들의 전투장면은 정확하면서도 실감나게 표현한 것 같다.
본격적인 역사서로서 사실상 처음이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기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하니 <열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바가 실로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 외에 미처 알지 못했던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지금의 나라가 있기 까지 수많은 인물이 노력한 사실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얻게 해준다. 충신은 왕을 깨우쳐 바른길로 가게 하고, 자식은 부모를 정성으로 섬기고, 배신한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며, 비록 계급이 높다 하여도 밑의 사람의 말을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등의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이기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형편없는 정치가 나, 늙고 병든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은혜를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많은 현대에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또 열전은 우리에게 우리의 역사가 깊고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며, 그 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먼저 살핀 물계자의 이야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절대 그 의지를 굽히지 않은 을지문덕의 이야기, 힘든 일은 힘을 합쳐 해체 나가는 공동체 정신을 보여준 귀산과 추항의 이야기, 착한 자에게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준 효녀 지은이 이야기 등을 통해서 우리 민족 고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열전>은 사실적이고 자세한 묘사로 읽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그 생생한 표현으로 인해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역사를 느끼게 한다. 또 한 인물의 생애를 통해 역사를 재조명 해봄으로써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가치관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45. 淵蓋蘇文
소문은 성품이 잔인하고 포악하여 아버지 동부대인 대대로의 뒤를 잇지 못하게 되었다. 소문은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여 그 직위를 이어 받기를 간청하였다. 여러 사람이 불쌍히 여겨 마침내 이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막상 직위를 계승하자 잔인하고 흉포한 행동을 하였다. 여러 대인이 왕과 은밀히 모의하여 그를 죽이려 함을 안 소문은 자기 부의 군사를 전부 모아 사열하는 것처럼 하고 손님들이 오자 그들을 모두 죽였다. 곧이어 궁중으로 달려가 왕을 죽이고 왕의 동생의 아들 장(臧)을 왕으로 세우고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 그가 온 나라를 마음대로 휘둘러 사람들이 매우 괴로워했다. 당 태종은 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대신들을 없앴으며, 백성을 못살게 하더니 이제 자신의 명령까지 어긴다하여 크게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였다.
46. 弓裔
궁예는 5월 5일에 태어났다. 일관(日官)은 궁예가 오午자가 거듭 들어 있는 날에 났고 나면서 이가 있으며 특이한 빛도 비추었으니 장차 나라에 이롭지 못하다 하자 왕은 그를 죽이도록 하였다. 종은 아이를 안고 도망하여 숨어서 그를 길렀다. 궁예는 열 살이 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스스로 선종(善宗)이라고 불렀다. 신라 말기 정치가 거칠어지고 백성이 흩어져 나라가 혼란해지자 선종은 이 틈을 타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하였다. 군대가 무척 강해여 적들이 선종에게 와서 항복하는 자가 많아지자 선종은 나라를 창건하고 임금임을 자청했다. 선종은 자기의 강한 기세를 믿고 흉포한 짓을 제멋대로 하니 신하들이 두려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하들은 은밀히 모의하여 태종에게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권하였다. 여러 장수가 태조를 호위하고 대문으로 나가면서 ‘왕공이 이미 정의의 깃발을 들었다’고 외치게 하였다. 이에 따르는 자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궁예는 이 말을 듣고 산의 숲으로 들어갔는데 얼마 안가서 부양 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47. 甄萱
견훤의 부모가 아기를 수풀 밑에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과연 자라면서 체격이 웅대해지고 기개가 호방하고 범상치 않았다.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면서 완산주에 이르자 고을 백성이 환영하자 기뻐하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신라 김유신이 개국 600년 만에 백제를 멸망시키니 도읍을 세워 묵은 울분을 씻겠다’하며 후백제의 왕임을 자청하였다. 동광3년(925) 견훤과 태조가 서로 겨루다 승부를 내지 못해 임시로 평화를 유지하는 술책으로 인질을 교환하였다. 4년 태조에게 인질로 간 진호가 죽자 견훤은 신라 왕도까지 들어가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왕을 죽였다. 견훤과 왕건의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견훤에겐 아들이 많았는데 그 중 넷째 금강을 이뻐해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그러자 그의 형 신검·양검·용검이 시기하였다. 이찬 능황은 신검을 꼬드겨 견훤을 금산사 불당에 가두고 금강을 죽였다. 석 달 동안 갇혀있다 도망가 태조를 찾아갔다. 그는 태조의 위엄에 기대어 반역한 자식을 죽이려고 태조에게 몸을 맡겼다. 태조는 먼저 태자 무와 장군 술희를 보내 보병과 기병 10만 명을 거느리고 천안부로 달려가게 하였다. 신검이 군사를 이끌고 막아섰으나 패였다. 태조는 능환을 문책하였다. 능환은 왕위를 빼앗은 것은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지 본심이 아니었으며, 목숨을 바쳐 사죄하여 그의 목숨을 살려줬다. 견훤은 울화가 나 등창이 생겨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태조는 군령이 엄정하고 공명해 군사들이 추호도 범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지방의 주와 현들이 안심하고 늙은이나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 <삼국사기>의 <열전>은 김유신부터 견훤까지 인물의 생애와 역사적인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그 이야기의 종류는 전장에서 숨진 충신, 왕을 죽인 반역자, 효녀·효자 등 다양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인물마다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대화를 길게 삽입해 내용을 이해하는데 좀더 수월하고 생동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친 충의열사들의 전투장면은 정확하면서도 실감나게 표현한 것 같다.
본격적인 역사서로서 사실상 처음이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기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하니 <열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바가 실로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 외에 미처 알지 못했던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지금의 나라가 있기 까지 수많은 인물이 노력한 사실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얻게 해준다. 충신은 왕을 깨우쳐 바른길로 가게 하고, 자식은 부모를 정성으로 섬기고, 배신한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며, 비록 계급이 높다 하여도 밑의 사람의 말을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등의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이기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형편없는 정치가 나, 늙고 병든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은혜를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많은 현대에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또 열전은 우리에게 우리의 역사가 깊고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며, 그 속에 담긴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먼저 살핀 물계자의 이야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절대 그 의지를 굽히지 않은 을지문덕의 이야기, 힘든 일은 힘을 합쳐 해체 나가는 공동체 정신을 보여준 귀산과 추항의 이야기, 착한 자에게 아름다운 결말을 맺어준 효녀 지은이 이야기 등을 통해서 우리 민족 고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열전>은 사실적이고 자세한 묘사로 읽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그 생생한 표현으로 인해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역사를 느끼게 한다. 또 한 인물의 생애를 통해 역사를 재조명 해봄으로써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가치관 등을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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