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편찬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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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1) 7대실록·고려실록
(1)7대 실록
(2) 고려실록

2) <<三國史記>>
(1) 三國史記의 편찬
(2)<<三國史記>>의 내용
(3)<<三國史記>>의 성격

3)<<편년통록>>과 기타 사서의 편찬
(1)고려 전기 사서의 성격
(2) <<편년통록>>
(3) 기타 사서의 편찬

본문내용

일부이긴 하지만 고려 왕실 선대 기록의 유일한 사료하는 점에 그 의의와 가치가 있다.
(3) 기타 사서의 편찬
가. <<舊三國史>>
<<舊三國史>>는 고려 초 또는 11세기 이전에 편찬된 삼국시대에 관한 관찬사서이나 현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 이름조차 견해가 다양하다. 즉 11세기 초에 저술도니 <<大覺國師文集>>에는 “海東三國史”라 하였고, 12세기 말 李奎報의 <<東國李相國集>>에는 “舊三國史”로, 14세기 一然의 <<三國遺事>>에는 “前三國史” 등으로 인용되어 있다. 그러나 다 異稱일 뿐이며 원래의 서명은 <<三國史>>로 보인다.
편찬시기 역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1세기 이전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당, 송제를 모방하여 사관제를 설치한 10세기 말 광종 때에 수사관들에 의해 편찬된 관찬사서였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舊三國史>>는 현존하지 않지만 그 일문인 동명왕 본기의 기록이 명종 23년 이규보가 지은 <동명왕편>에 분주로 남아있어 그 체제와 성격을 알 수 있다. 즉, <<舊三國史>>는 신이사관에 기초한 기전체 사서로 특히 고려 초에 사관제가 설치된 후 고구려 계승의식 내지는 자주의식이 팽배되었던 광종 때에 사관들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현존하는 유일한 관찬사서인 삼국사기가 그 서명과 체제에서 알 수 있듯이 舊三國史의 토대 위에서 중국 측의 기록을 보충하여 유교적 합리사관에 의하여 중찬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사학사적 영향이 주목된다.
나. <<고금록>>
<<고금록>>은 11세기 말 숙종 원년(1099) 7월 이전, 참지정사 박인량이 지은 총 10권으로 된 사서로서 편찬 직후 秘府에 보관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사서 역시 현전하지 않아 그 내용과 체제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고금록>> 10권은 고려와 송요 간의 외교문제를 의식하여 송요고려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했을 것 같다. 또한 고금록은 나말 최치원이 중국과 신라의 역사를 연대별로 대비하여 서술한 <<帝王年代曆>>과 마찬가지로 고려와 거란의 역대 왕들에 대한 사적을 기록한 사서라 추정된다.
즉 박인량의 고금록 10권은 숙종 원년 7월 이전에 완성된 사서로 박인량이 한림학사로서 외교문서를 전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태조 이래 역대 실록을 참고하여 고려와 요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로 보인다. 그 체제는 연대기적 서술을 취했을 것이며 고려 후기 충렬왕대 허공들의 사관들이 편찬한 고금록 등의 체제와 서술에 영향을 주었다.
다. <<편년통재>>
<<編年通載>>는 고려시대 간행된 편년체 역사서이나 현재 전하지 않으며, 저자와 편찬년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시대 편년체 역사책 가운데 최초의 것으로 홍관의 <<編年通載續編>>이 편찬된 예종 11년(1116)이전에 편찬되어 있었으며, 11세기 중엽에 편찬된 송의 편년통재를 모방하여 편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라. <<편년통재속편>>
<<編年通載續編>>은 예종 11년 11월 당시 보문각 학사인 홍관이 송나라 역사책인 <<편년통재>>를 읽고 감동받은 예종의 명을 받아,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래의 事蹟을 <<편년통재>>의 체재에 의거하여 정리한 역사책이나, 현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의 편찬에 영향을 준 송의 <<편년통재>>는 모두 10편으로 송나라 神宗 초 進士 章衡이 당시의 학자들이 고금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며 역대 황제의 계통을 정리한 사서이다. 따라서 편년통재속편 역시 송의 편년통재 수입에 영향을 받아 곧바로 편찬한 점에서 중화의 문물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고려 중기의 문풍을 진작시키려 했던 예종 조 정치성격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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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8페이지
  • 등록일2006.02.06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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