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르네상스와 자유로운 창작
2. 인간 중심의 음악
3. 던스터블과 부르고뉴 악파
4. 플랑드르 악파
5. 후기 르네상스의 음악
6. 르네상스 음악의 가는 길
7. 르네상스와 독일 음악의 발전
2. 인간 중심의 음악
3. 던스터블과 부르고뉴 악파
4. 플랑드르 악파
5. 후기 르네상스의 음악
6. 르네상스 음악의 가는 길
7. 르네상스와 독일 음악의 발전
본문내용
'신성 교향곡'은 교향악의 시조이기도 하며, 오라토리오나 칸타타의 모범이 되기도 한다. 그의 오르간 음악은 아직까지 연주되고 있다.
조반니 가브리엘리는 스승 빌라르트의 음악 정신을 가장 높은 데까지 끌어올린 사람이다. 호화 찬란하고 리듬과 빠르기가 다양한 그의 음악의 베네치아 악파의 대표로 여겨지고 있다.
7. 르네상스와 독일 음악의 발전
르네상스 음악에서 독일의 음악은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르네상스 음악이 꽃을 피우고 끝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곳이 바로 독일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독일 가곡을 찬란하게 꾸민 슈베르트야말로 르네상스 음악의 마지막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일찍부터 독창 가곡(리트)이 발달해 있었다. 민네쟁거와 마이스터징거의 음악은 다성 음악이기도 했지만, 독창으로 부를 수 있는 음악이었다. 15세기 독일에서는 글로가우 가곡집, 로하머 가곡집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몇 개의 가곡들을 한데 묶은 매우 재미있는 우스개 가곡집 쿼들리베트가 시민들에게 널리 불려지고 있었다. 독일의 가곡 작가로서 플랑드르 악파의 이자크를 들 수가 있는데, 그의 '인스부르크여, 안녕'은 5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널리 불려지는 가곡이다.
독일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종교 개혁이었다. 종교 개혁은 1517년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가 카톨릭 교회에서 반대해서 일으킨 새로운 종교 운동이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권력에 반대하고, 오직 성서와 신앙만이 구원의 힘이라는 루터의 주장은 카톨릭 교회로 보면 엄청난 혁명이었다. 종교 개혁으로 이룩된 신교(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중세 이후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 음악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 음악을 찾게 되었다. 신교 교회는 게르만 민족의 성격과 민속 음악, 가곡을 써서 찬송가를 만들었다. 이것을 코랄이라고 부른다. 날이 갈수록 신교가 넓게 퍼지자 카톨릭 교회는 위협을 느꼈다. 그들은 신교에 대항하기 위해 카톨릭 자체를 탈바꿈시켜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교회 음악을 바꾼 것이었다. 카톨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가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학교에서 새로운 성가를 부르게 했으며,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들을 보내 새로운 성가를 보급했다. 종교 개혁으로 새로운 찬송가가 만들어진 것은 루터자신이 음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음악에 대한 깊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고대 그리스 인들의 음악 정신을 지지하고 있었다. 루터는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20년 가까이 꾸준하게 "종교 가곡집"을 만들어 냈다. 그 가곡집에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도 있지만, 민속 음악에 종교적인 가사를 단 가곡 등도 들어 있다. 이 가곡집의 노래들은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는 가곡들이다. 루터 자신이 작곡한 합창곡도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곡이 '주는 나의 강한 성'이다. 찬송가에 대한 루터의 노력은 그 후 독일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흐를 비롯한 독일 음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초를 마련해 준 것이 루터의 합창곡(코랄)이었다.
조반니 가브리엘리는 스승 빌라르트의 음악 정신을 가장 높은 데까지 끌어올린 사람이다. 호화 찬란하고 리듬과 빠르기가 다양한 그의 음악의 베네치아 악파의 대표로 여겨지고 있다.
7. 르네상스와 독일 음악의 발전
르네상스 음악에서 독일의 음악은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르네상스 음악이 꽃을 피우고 끝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곳이 바로 독일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독일 가곡을 찬란하게 꾸민 슈베르트야말로 르네상스 음악의 마지막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일찍부터 독창 가곡(리트)이 발달해 있었다. 민네쟁거와 마이스터징거의 음악은 다성 음악이기도 했지만, 독창으로 부를 수 있는 음악이었다. 15세기 독일에서는 글로가우 가곡집, 로하머 가곡집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몇 개의 가곡들을 한데 묶은 매우 재미있는 우스개 가곡집 쿼들리베트가 시민들에게 널리 불려지고 있었다. 독일의 가곡 작가로서 플랑드르 악파의 이자크를 들 수가 있는데, 그의 '인스부르크여, 안녕'은 5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널리 불려지는 가곡이다.
독일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종교 개혁이었다. 종교 개혁은 1517년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가 카톨릭 교회에서 반대해서 일으킨 새로운 종교 운동이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권력에 반대하고, 오직 성서와 신앙만이 구원의 힘이라는 루터의 주장은 카톨릭 교회로 보면 엄청난 혁명이었다. 종교 개혁으로 이룩된 신교(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중세 이후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 음악을 버리고 새로운 교회 음악을 찾게 되었다. 신교 교회는 게르만 민족의 성격과 민속 음악, 가곡을 써서 찬송가를 만들었다. 이것을 코랄이라고 부른다. 날이 갈수록 신교가 넓게 퍼지자 카톨릭 교회는 위협을 느꼈다. 그들은 신교에 대항하기 위해 카톨릭 자체를 탈바꿈시켜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교회 음악을 바꾼 것이었다. 카톨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가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학교에서 새로운 성가를 부르게 했으며,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들을 보내 새로운 성가를 보급했다. 종교 개혁으로 새로운 찬송가가 만들어진 것은 루터자신이 음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음악에 대한 깊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고대 그리스 인들의 음악 정신을 지지하고 있었다. 루터는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20년 가까이 꾸준하게 "종교 가곡집"을 만들어 냈다. 그 가곡집에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도 있지만, 민속 음악에 종교적인 가사를 단 가곡 등도 들어 있다. 이 가곡집의 노래들은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는 가곡들이다. 루터 자신이 작곡한 합창곡도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곡이 '주는 나의 강한 성'이다. 찬송가에 대한 루터의 노력은 그 후 독일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흐를 비롯한 독일 음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초를 마련해 준 것이 루터의 합창곡(코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