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엇갈린 시선
2. 사라지는 것들
3. L의 사진 이야기
4.다른 곳을 보기로 했어
5.친구가 되기
6. R의 사진과 그녀들의 사랑
7.식은 커피 맛은 잔인하다.
2. 사라지는 것들
3. L의 사진 이야기
4.다른 곳을 보기로 했어
5.친구가 되기
6. R의 사진과 그녀들의 사랑
7.식은 커피 맛은 잔인하다.
본문내용
었는데, 그 사람도 좋아하지?"
"우리 헤어졌어."
기나긴 밤의 까만색처럼 L과 R의 얼굴은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다. R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뾰족한 모서리 같은 목소리로 L에게 묻는다. 근데 너는 왜 그러고 있느냐고. 헤어진 사람의 아이를 키우겠다니.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사랑 하는 사람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다는 데 그게 잘못된 건 가?"
R은 L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도 너를 사랑하니? 하긴 처음 한 순간은 사랑했을지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아니, 내 뱃속에 사랑이 있어. 그 사람의 또 다른 심장이 뛰고 있다고. 단지 그 사람이겐 시간이 필요할 거야. 너무 갑자기 이런 상황에 적응이 안됐을 뿐이야."
R은 L이 한 사랑에 집착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제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을 바라보는 L이 왠지 가엾다.
"잘 들어, 사랑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게 뭐 그리 중요해? 왜 스스로를 힘들게."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가 뱃속에서 숨쉬고 잇다는 걸 넌 몰라. 그 기분, 느낌 넌 평생 모를 거야."
R은 생각이 났다. L의 말에 지난 3년간 여러 번 아이를 가졌던 자신을 기억해 냈다.
"사실 나도 여러 번 아이를 가진 적이 있어. 물론 그 때마다 나도 그 사람들을 사랑했어. 하지만 그 뿐이야. 오늘은 사랑하지만 내일은 아니게 되는 거. 흐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사랑도 흘러가. 이제 너의 사랑과 그 사람의 사랑은 마주 볼 수 없어."
L은 목이 마른 듯 탁자 위에 있는 물을 컵에 따라 마신다. 막혀 있던 게 조금 내려갔는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 쉰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 된 것 같아 R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내일이라도 당장 나랑 같이 병원 가자. 내가 잘 아는 병원이 있으니까 겁먹지 말고."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난 네가 아니야. 쉽게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아."
L은 R에게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온몸이 '죽음'이라는 단어에 반응하고 어깨는 몹시 떨린다. 아니 사라짐이 맞을 것이다. L은 사라짐이 두렵다. 그가 K에게서 이젠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현실이 되어버리는 그 말속에서 L에 대한 K의 마음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만 갈게.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
R에게서 등을 돌리던 L는 자신도 모르게 배를 감싸고 있다. R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녀에게 충고한다. 마음이 바뀌면 전화해. 신기루 같은 사랑은 오래 기억해서는 안돼. 너도 이제 다른 곳을 좀 바라봐.
"아마 너에게 전화하는 일은 없을 거야."
하고는 L은 R의 작업실에서 탈출하듯 급하게 달려 나온다.
식은 커피 맛은 잔인하다.
어두컴컴하다. 잘 보고 싶은데, 아주 자세히 보고 싶은데 잘 보이지 않는다. L은 사진 한 장을 몇 시간 째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문득 R의 집에 있던 노을 사진이 떠오른다. 핏빛의 노을로 안개들이 물들던 그 사진.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 K의 손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져 주던 그 때를. 그의 품에서 눈을 떴던 며 번의 아침을.
짜릿한 신호를 보내는 뱃속의 그것을 L은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어둠 속이라 보이지도 않는 초음파 사진을 몇 시간이고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림자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너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찍혀진 R의 사진처럼. 너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L은 두렵다. 자신의 살과 피로 이뤄진 그 것이 K가 자신이 아닌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R의 의미 없는 사진들처럼 자신을 배신할까봐 두렵다.
가장 실물과 똑같고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도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L은 사진을 보며 웃을 수 없다. 즐거운 사진 속에 숨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음모를 그녀는 느껴야만 했다. 그 때 왜 L은 사진을 찍자고 했을까. 이제 L은 사진 속 한강을 바라보며 거짓된 K만을 기억할 것이다.
L의 눈앞에서 L의 손길을 기다리는 전화기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한 연기가 피어나는 커피가 있다. 이 들은 그녀를 응시한다. 그녀도 그 시선을 알고 있는 듯 다른 곳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옮긴다. 따가운 시선에 못 이겨 떨리는 손으로 L이 수화기를 든다. 하지만 정작 다이얼에 있어야 할 검지는 허공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탁자에 있던 커피는 식고 잔인한 진실이 혀에 닿는다.
"우리 헤어졌어."
기나긴 밤의 까만색처럼 L과 R의 얼굴은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다. R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뾰족한 모서리 같은 목소리로 L에게 묻는다. 근데 너는 왜 그러고 있느냐고. 헤어진 사람의 아이를 키우겠다니.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사랑 하는 사람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다는 데 그게 잘못된 건 가?"
R은 L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도 너를 사랑하니? 하긴 처음 한 순간은 사랑했을지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아니, 내 뱃속에 사랑이 있어. 그 사람의 또 다른 심장이 뛰고 있다고. 단지 그 사람이겐 시간이 필요할 거야. 너무 갑자기 이런 상황에 적응이 안됐을 뿐이야."
R은 L이 한 사랑에 집착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제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을 바라보는 L이 왠지 가엾다.
"잘 들어, 사랑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게 뭐 그리 중요해? 왜 스스로를 힘들게."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가 뱃속에서 숨쉬고 잇다는 걸 넌 몰라. 그 기분, 느낌 넌 평생 모를 거야."
R은 생각이 났다. L의 말에 지난 3년간 여러 번 아이를 가졌던 자신을 기억해 냈다.
"사실 나도 여러 번 아이를 가진 적이 있어. 물론 그 때마다 나도 그 사람들을 사랑했어. 하지만 그 뿐이야. 오늘은 사랑하지만 내일은 아니게 되는 거. 흐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사랑도 흘러가. 이제 너의 사랑과 그 사람의 사랑은 마주 볼 수 없어."
L은 목이 마른 듯 탁자 위에 있는 물을 컵에 따라 마신다. 막혀 있던 게 조금 내려갔는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 쉰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 된 것 같아 R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내일이라도 당장 나랑 같이 병원 가자. 내가 잘 아는 병원이 있으니까 겁먹지 말고."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난 네가 아니야. 쉽게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아."
L은 R에게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온몸이 '죽음'이라는 단어에 반응하고 어깨는 몹시 떨린다. 아니 사라짐이 맞을 것이다. L은 사라짐이 두렵다. 그가 K에게서 이젠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현실이 되어버리는 그 말속에서 L에 대한 K의 마음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만 갈게.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
R에게서 등을 돌리던 L는 자신도 모르게 배를 감싸고 있다. R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녀에게 충고한다. 마음이 바뀌면 전화해. 신기루 같은 사랑은 오래 기억해서는 안돼. 너도 이제 다른 곳을 좀 바라봐.
"아마 너에게 전화하는 일은 없을 거야."
하고는 L은 R의 작업실에서 탈출하듯 급하게 달려 나온다.
식은 커피 맛은 잔인하다.
어두컴컴하다. 잘 보고 싶은데, 아주 자세히 보고 싶은데 잘 보이지 않는다. L은 사진 한 장을 몇 시간 째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문득 R의 집에 있던 노을 사진이 떠오른다. 핏빛의 노을로 안개들이 물들던 그 사진.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 K의 손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져 주던 그 때를. 그의 품에서 눈을 떴던 며 번의 아침을.
짜릿한 신호를 보내는 뱃속의 그것을 L은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어둠 속이라 보이지도 않는 초음파 사진을 몇 시간이고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림자처럼 보이는 사진을 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너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찍혀진 R의 사진처럼. 너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L은 두렵다. 자신의 살과 피로 이뤄진 그 것이 K가 자신이 아닌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R의 의미 없는 사진들처럼 자신을 배신할까봐 두렵다.
가장 실물과 똑같고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도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L은 사진을 보며 웃을 수 없다. 즐거운 사진 속에 숨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음모를 그녀는 느껴야만 했다. 그 때 왜 L은 사진을 찍자고 했을까. 이제 L은 사진 속 한강을 바라보며 거짓된 K만을 기억할 것이다.
L의 눈앞에서 L의 손길을 기다리는 전화기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한 연기가 피어나는 커피가 있다. 이 들은 그녀를 응시한다. 그녀도 그 시선을 알고 있는 듯 다른 곳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옮긴다. 따가운 시선에 못 이겨 떨리는 손으로 L이 수화기를 든다. 하지만 정작 다이얼에 있어야 할 검지는 허공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탁자에 있던 커피는 식고 잔인한 진실이 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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