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트랜스젠더
(1) 트랜스젠더의 정의
(2) 트랜스젠더의 발생빈도
(3) 이성복장의 욕구
(4) 성정체성의 혼란 : 보이지 않는 장애
(5) 원인에 대한 논란
(6) 역사적 관점에서의 트랜스젠더의 인식
■2. 사회적 문제와 해결방안
(1) 청소년의 성정체성 고민
(2) 성전환자는 강간의 객체가 될 수 있는가
■3. 트랜스젠더 하리수
(1) 하리수 프로필
(2) 하리수의 영향 :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변화
■4. 드라마 '떨리는 가슴'
(1) 떨리는 가슴
(2) 내용 분석
(3) 드라마의 기능
■5. 결론
(1) 트랜스젠더의 정의
(2) 트랜스젠더의 발생빈도
(3) 이성복장의 욕구
(4) 성정체성의 혼란 : 보이지 않는 장애
(5) 원인에 대한 논란
(6) 역사적 관점에서의 트랜스젠더의 인식
■2. 사회적 문제와 해결방안
(1) 청소년의 성정체성 고민
(2) 성전환자는 강간의 객체가 될 수 있는가
■3. 트랜스젠더 하리수
(1) 하리수 프로필
(2) 하리수의 영향 :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변화
■4. 드라마 '떨리는 가슴'
(1) 떨리는 가슴
(2) 내용 분석
(3) 드라마의 기능
■5. 결론
본문내용
수 있었다는 것이 고 PD의 생각이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소수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소수자, 혹은 타인에게 말 걸기’를 시도했으면 하는 것이 고 PD가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2) 내용 분석
① 가족과의 갈등
동생의 전화를 2년 만에 받은 창완은 만나기로 한 카페로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그런데 카페 안을 둘러보아도 동생 창호를 찾을 수가 없다. 그때 멋진 스타일의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자기가 창호라고 한다. 창호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이름도 혜정으로 바꿨다고 털어놓자, 창완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다. 한술 더 떠 혜정이 호적의 성별 고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자, 창완은 자신은 김창호의 형일 뿐 김혜정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소리 지르며 나가버린다.
창완은 동생에 대한 걱정 때문에 회사 일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혜정이 집 앞에 나타나자, 창완은 누가 볼까 두려워 혜정을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 이제 가족이 아니니까 찾아오지도 말라고 한다. 때마침 시장에서 돌아오다 이 광경을 본 종옥은 남편 창완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오해한다. 배신감을 느낀 종옥은 창완의 휴대폰에서 여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두나와 함께 혜정을 불러냈으나, 시동생이 나오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안심한다.
혜정이 얹혀살고 있는 여관방을 안쓰럽게 둘러본 종옥은 자신이 어떻게든 창완을 설득할 테니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혜정은 미안함에 마지못해 종옥을 따라오고, 보미는 혜정을 보고 삼촌과 고모의 호칭 사이에서 헷갈려한다. 퇴근해 집에 온 창완은 혜정을 보고 동생 창호가 아니라며 당장 내보내라고 종옥에게 화를 낸다.
② 트랜스젠더의 사랑
한편 혜정을 보고 첫눈에 반한 남수는 창완에게 동생을 소개시켜 달라고 조른다. 그 말에 어의가 없는 창완은 혜정이 트랜스젠더라고 차마 남수에게 밝히지 못하고 무조건 안된다고만 한다. 그러자 남수는 직접 작업(?)을 개시하기로 한다.
창완은 혜정이 그렇게 된 게 자신의 탓으로 여겨져 괴롭다. 때려서라도 동생을 다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후회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 자신의 속도 모르고 회사로 찾아와 혜정 얘기를 꺼내는 남수를 보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혜정은 당분간 두나의 오피스텔에 머물기로 한다. 두나가 사귀었던 사람이 없었냐고 묻자, 혜정은 수술 전 자신을 여자로 봐주었던 사람이 있었지만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힘들었던 그 때, 용기를 내 수술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두나가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다정하게 말하지만 혜정은 나중에 그러겠다며 지금은 소파에서 자겠다고 한다.
한편 남수는 혜정을 보기 위해 아들 선우를 데리고 창완의 집을 찾아간다. 남수가 두나 때문에 찾아온 것으로 알고 있는 종옥은 남수를 살갑게 대한다. 그런데 남수가 두나가 아닌 혜정을 보러 왔다고 하자 종옥은 경악하고 창완은 남수를 쫓아낸다. 창완 부부의 도움을 받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남수는 아들 선우를 이용해 혜정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③ 사회와의 갈등
혜정은 일하던 헬스클럽에 갔는데 주민등록등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된 상사로 인하여 일자리를 쫓겨나게 된다. 자신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계속 말하지만 헬스클럽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안타깝게 멀리서 보고있던 창완과 남수는 쓰러진 어머니가 깨어나 혜정을 찾는다면서 지쳐 쓰러진 혜정을 데리고 오면서 왜 자신의 동생을 이렇게 하냐며 헬스클럽에 화를 내게 된다.
④ 갈등 완화
충격을 받을 시어머니를 걱정한 종옥은 두나와 함께 혜정이 제사에 참석하는 것을 만류한더. 그러나 혜정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 꼭 가겠다고 한다. 마침내 혜정이 제사에 나타나자 어머니는 혜정을 끌어안고 살아왔으니 됐다며 울음을 터뜨리다, 결국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간다.
다른 헬스클럽에 취직을 하게 된 혜정은 자신을 트렌스젠더라고 처음부터 밝히면서 떳떳하게 말하며 일을 시작하게 된다.
(3) 드라마의 기능
방송가에서는 연이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 캐릭터의 드라마 등장에 대해 그만큼 우리사회가 다양성을 소화할 수 있는 성숙도를 갖춰나가고 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트랜스젠더, 동성연애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등 다양한 사회소외계층이 드라마에 등장해 자연스럽게 편견과 오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순기능을 기대하고 있다.
5. 결론
(1) 개별적 인간성향의 이해와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존중
동성애가 과연 자연스러운가를 질문에 대해 철학자 루소(Rousseau)가 이미 아주 적절한 대답을 했다.
"자연계에서 자연스러운가 부자연스러운가의 논박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자연계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자연스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트랜스젠더를 대할 때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 전체의 삶에 위배되는 범죄적인 삶이 아닌 다음에야 개인의 삶은 존중되어야 한다
(2) 성적소수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 개선
(3) 성적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제도 개선
성전환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긍정론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제10조)이다.
John Stuart Mill은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최고의 지배자이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성전환자에게 다수자에 의해서 형성된 사회제도와 법규범에 그들의 신체와 정신을 일치시킬 것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 사회에 대하여 해악을 가하는 존재가 아닌 한, 우리는 소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주장을 경청할 의무가 있다. 다수자의 가치관에 의해 그리고 다수자에게 적합하게 형성된 사회구조와 법체제로 인해 고통받는 소수자가 존재한다면, 다수자는 사회구조와 법체제를 재점검하고 소수자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는다면 다수의 지배가 허용되고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옳을 가능성이 가장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에게 가장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 내용 분석
① 가족과의 갈등
동생의 전화를 2년 만에 받은 창완은 만나기로 한 카페로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그런데 카페 안을 둘러보아도 동생 창호를 찾을 수가 없다. 그때 멋진 스타일의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자기가 창호라고 한다. 창호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이름도 혜정으로 바꿨다고 털어놓자, 창완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다. 한술 더 떠 혜정이 호적의 성별 고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자, 창완은 자신은 김창호의 형일 뿐 김혜정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소리 지르며 나가버린다.
창완은 동생에 대한 걱정 때문에 회사 일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혜정이 집 앞에 나타나자, 창완은 누가 볼까 두려워 혜정을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 이제 가족이 아니니까 찾아오지도 말라고 한다. 때마침 시장에서 돌아오다 이 광경을 본 종옥은 남편 창완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오해한다. 배신감을 느낀 종옥은 창완의 휴대폰에서 여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두나와 함께 혜정을 불러냈으나, 시동생이 나오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안심한다.
혜정이 얹혀살고 있는 여관방을 안쓰럽게 둘러본 종옥은 자신이 어떻게든 창완을 설득할 테니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혜정은 미안함에 마지못해 종옥을 따라오고, 보미는 혜정을 보고 삼촌과 고모의 호칭 사이에서 헷갈려한다. 퇴근해 집에 온 창완은 혜정을 보고 동생 창호가 아니라며 당장 내보내라고 종옥에게 화를 낸다.
② 트랜스젠더의 사랑
한편 혜정을 보고 첫눈에 반한 남수는 창완에게 동생을 소개시켜 달라고 조른다. 그 말에 어의가 없는 창완은 혜정이 트랜스젠더라고 차마 남수에게 밝히지 못하고 무조건 안된다고만 한다. 그러자 남수는 직접 작업(?)을 개시하기로 한다.
창완은 혜정이 그렇게 된 게 자신의 탓으로 여겨져 괴롭다. 때려서라도 동생을 다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후회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 자신의 속도 모르고 회사로 찾아와 혜정 얘기를 꺼내는 남수를 보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혜정은 당분간 두나의 오피스텔에 머물기로 한다. 두나가 사귀었던 사람이 없었냐고 묻자, 혜정은 수술 전 자신을 여자로 봐주었던 사람이 있었지만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힘들었던 그 때, 용기를 내 수술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두나가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다정하게 말하지만 혜정은 나중에 그러겠다며 지금은 소파에서 자겠다고 한다.
한편 남수는 혜정을 보기 위해 아들 선우를 데리고 창완의 집을 찾아간다. 남수가 두나 때문에 찾아온 것으로 알고 있는 종옥은 남수를 살갑게 대한다. 그런데 남수가 두나가 아닌 혜정을 보러 왔다고 하자 종옥은 경악하고 창완은 남수를 쫓아낸다. 창완 부부의 도움을 받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남수는 아들 선우를 이용해 혜정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③ 사회와의 갈등
혜정은 일하던 헬스클럽에 갔는데 주민등록등본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된 상사로 인하여 일자리를 쫓겨나게 된다. 자신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계속 말하지만 헬스클럽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안타깝게 멀리서 보고있던 창완과 남수는 쓰러진 어머니가 깨어나 혜정을 찾는다면서 지쳐 쓰러진 혜정을 데리고 오면서 왜 자신의 동생을 이렇게 하냐며 헬스클럽에 화를 내게 된다.
④ 갈등 완화
충격을 받을 시어머니를 걱정한 종옥은 두나와 함께 혜정이 제사에 참석하는 것을 만류한더. 그러나 혜정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 꼭 가겠다고 한다. 마침내 혜정이 제사에 나타나자 어머니는 혜정을 끌어안고 살아왔으니 됐다며 울음을 터뜨리다, 결국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간다.
다른 헬스클럽에 취직을 하게 된 혜정은 자신을 트렌스젠더라고 처음부터 밝히면서 떳떳하게 말하며 일을 시작하게 된다.
(3) 드라마의 기능
방송가에서는 연이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 캐릭터의 드라마 등장에 대해 그만큼 우리사회가 다양성을 소화할 수 있는 성숙도를 갖춰나가고 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트랜스젠더, 동성연애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등 다양한 사회소외계층이 드라마에 등장해 자연스럽게 편견과 오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순기능을 기대하고 있다.
5. 결론
(1) 개별적 인간성향의 이해와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존중
동성애가 과연 자연스러운가를 질문에 대해 철학자 루소(Rousseau)가 이미 아주 적절한 대답을 했다.
"자연계에서 자연스러운가 부자연스러운가의 논박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자연계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자연스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트랜스젠더를 대할 때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 전체의 삶에 위배되는 범죄적인 삶이 아닌 다음에야 개인의 삶은 존중되어야 한다
(2) 성적소수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 개선
(3) 성적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제도 개선
성전환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긍정론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제10조)이다.
John Stuart Mill은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최고의 지배자이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성전환자에게 다수자에 의해서 형성된 사회제도와 법규범에 그들의 신체와 정신을 일치시킬 것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 사회에 대하여 해악을 가하는 존재가 아닌 한, 우리는 소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주장을 경청할 의무가 있다. 다수자의 가치관에 의해 그리고 다수자에게 적합하게 형성된 사회구조와 법체제로 인해 고통받는 소수자가 존재한다면, 다수자는 사회구조와 법체제를 재점검하고 소수자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는다면 다수의 지배가 허용되고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옳을 가능성이 가장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에게 가장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