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1. 십자군의 소집
1) 투르크족의 정복과 클레르몽 공의회
2) 십자군 원정과 순례
2. 제1차 십자군과 예루살렘 왕국의 건설
1) 민중 십자군과 제1차 십자군
2) 예루살렘 왕궁의 건설
3. 제2차, 3차 십자군
1) 제2차 십자군
2) 제3차 십자군
4. 제4차 십자군과 콘스탄티노플라틴제국
5. 제5차, 6차 십자군
1) 제5차 십자군
2) 제6차 십자군과 프리드리히 황제의 파문
6. 성왕 루이의 십자군
7. 십자군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
나오며
# 참고문헌
1. 십자군의 소집
1) 투르크족의 정복과 클레르몽 공의회
2) 십자군 원정과 순례
2. 제1차 십자군과 예루살렘 왕국의 건설
1) 민중 십자군과 제1차 십자군
2) 예루살렘 왕궁의 건설
3. 제2차, 3차 십자군
1) 제2차 십자군
2) 제3차 십자군
4. 제4차 십자군과 콘스탄티노플라틴제국
5. 제5차, 6차 십자군
1) 제5차 십자군
2) 제6차 십자군과 프리드리히 황제의 파문
6. 성왕 루이의 십자군
7. 십자군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
나오며
#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오늘날의 인식
세속 권력의 성장 및 교회 제도의 쇠퇴, 그리고 수백년간 계속된 종교 전쟁의 폐해로 인해, 유럽인들은 점차 내세가 아니라 현세를 중시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종교는 이제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통 요소가 아니라 개인의 기호 문제가 되었으며, 계몽주의자들은 십자군을 권력에 미친 성직자들 때문에 벌어진 불관용의 전쟁이라고 비웃었다. 종교재판과 더불어 십자군은 이들이 말하는 ‘암흑시대’의 히스테리와 미신, 무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반면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고딕 건축의 미와 중세 기사도의 미덕 그리고 중세 시대의 신앙이 갖던 경건함을 칭송함으로써 중세 시대를 부분적으로나 회복시켰다. 19세기 중반에 이르자 십자군은 민족주의의 구호뿐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십자군은 더 이상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유럽의 모든 식민 열강들이 유명한 십자군 전사들을 뽐냈다. 독일에서는 붉은 수염왕 프리드리히가, 잉글랜드에서는 사자심왕 리처드가 있었으며, 심지어 작은 나라 벨기에조차도 부용의 고드프루아가 있었다. 모든 나라들이 이들 영웅들을 현대 제국주의의 선구자로 삼아 이용했다. 외국의 적과 싸우기 위해 진격하는 십자군 기사의 낭만적 이야기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전쟁, 즉 제1차 세계대전의 선전에서도 크게 부각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유례없는 참혹한 살육 사태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은 여전히 그것을 고귀한 십자군 전쟁으로, 전사들은 순교자로 묘사했다. 이러한 전쟁에서 십자군의 이미지가 사용되면서 ‘십자군’이라는 말은 점점 도덕적으로 정당한 목표를 위해 싸우는 위대하고 명예로운 그러나 종교적인 의미는 없는 세속적인 전쟁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군에 대한 서양의 태도는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가 세계에 등장하면서 극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십자군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수용하고, 그것에 이상주의가 작용했다는 생각을 부인했다. 대신 그들은 중세 유럽에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원이 부족하게 되어 십자군은 해외에서 새로운 영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마르크스주의를 따르지 않는 역사학자들조차도 십자군이 탐욕의 결과였다는 전제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십자군은 종교적 동기를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십자군에 관한 이런 의견은 스티븐 런시먼의 3부작『십자군의 역사History of the Crusades』(1951~1954년)의 간행으로 확고하게 굳어졌다. 런시먼이 그리는 십자군은 구원을 얻겠다고 동방의 세련된 문명을 파괴한 얼간이 혹은 야만인이다. 십자군에 관한 그의 유명한 ‘요약’에는 그는 “성전 자체는 신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불관용의 행위에 불과하며, 이는 성령에 대한 죄”라고 결론을 내렸다. 2001년 9월 11일의 테러공격을 계기로 서구인들은 십자군에 대해 새로이 관심을 가졌으나 역사적 이해와 대중적 인식은 아직도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나오며
2001년 9월 11일 이래로 “십자군이 어떻게 현재의 갈등을 야기했는가?”하는 물음이 자주 제기되었다. 그러나 답은 십자군과 현재의 갈등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십자군은 중세의 현상이고, 우리의 세계와는 매우 다른 중세 세계의 일부였다. 기독교도들에게 십자군의 동방 원정은 기독교도들과 그들의 땅을 이슬람의 정복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행한 사랑과 자애의 행위였다. 한편 중세의 이슬람교도들은 십자군을 이해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그러므로 911 공격을 야기한 것은 십자군이 아니라, 현대의 식민세력이 만들어내고 아랍의 민족주의자들 및 이슬람주의자들이 전수한 왜곡된 기억이다. 그들은 십자군에서 중세라는 시대적 요소를 전부 벗겨내고 대신 19세기 제국주의의 넝마를 입혔다. 그렇게 해서 십자군은 중세의 사람들이 용납은 커녕 이해도 하지 못했을 현재의 의제를 위한 아이콘이 되어버린 것이다.
◆ 참고문헌 ◆
- 박은봉,『세계사 100장면』, 실천문학사, 1997
- 조르주 타트 지음, 안정미 옮김,『십자군 전쟁』, 시공사, 1998
- 김희보,『(그림으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 가람기획, 2000
- 최덕성,『종교개혁전야-십자군전쟁에서 르네상스까지』, 본문과현장사이, 2003
- W.B.바틀릿 지음, 서미석 옮김,『십자군 전쟁-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한길사, 2004
- 토머스 F. 매든 지음, 권영주 옮김,『십자군-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맨스』, 루비박스, 2005
세속 권력의 성장 및 교회 제도의 쇠퇴, 그리고 수백년간 계속된 종교 전쟁의 폐해로 인해, 유럽인들은 점차 내세가 아니라 현세를 중시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종교는 이제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통 요소가 아니라 개인의 기호 문제가 되었으며, 계몽주의자들은 십자군을 권력에 미친 성직자들 때문에 벌어진 불관용의 전쟁이라고 비웃었다. 종교재판과 더불어 십자군은 이들이 말하는 ‘암흑시대’의 히스테리와 미신, 무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반면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고딕 건축의 미와 중세 기사도의 미덕 그리고 중세 시대의 신앙이 갖던 경건함을 칭송함으로써 중세 시대를 부분적으로나 회복시켰다. 19세기 중반에 이르자 십자군은 민족주의의 구호뿐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십자군은 더 이상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유럽의 모든 식민 열강들이 유명한 십자군 전사들을 뽐냈다. 독일에서는 붉은 수염왕 프리드리히가, 잉글랜드에서는 사자심왕 리처드가 있었으며, 심지어 작은 나라 벨기에조차도 부용의 고드프루아가 있었다. 모든 나라들이 이들 영웅들을 현대 제국주의의 선구자로 삼아 이용했다. 외국의 적과 싸우기 위해 진격하는 십자군 기사의 낭만적 이야기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전쟁, 즉 제1차 세계대전의 선전에서도 크게 부각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유례없는 참혹한 살육 사태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은 여전히 그것을 고귀한 십자군 전쟁으로, 전사들은 순교자로 묘사했다. 이러한 전쟁에서 십자군의 이미지가 사용되면서 ‘십자군’이라는 말은 점점 도덕적으로 정당한 목표를 위해 싸우는 위대하고 명예로운 그러나 종교적인 의미는 없는 세속적인 전쟁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군에 대한 서양의 태도는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가 세계에 등장하면서 극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십자군이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생각을 수용하고, 그것에 이상주의가 작용했다는 생각을 부인했다. 대신 그들은 중세 유럽에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자원이 부족하게 되어 십자군은 해외에서 새로운 영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마르크스주의를 따르지 않는 역사학자들조차도 십자군이 탐욕의 결과였다는 전제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십자군은 종교적 동기를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십자군에 관한 이런 의견은 스티븐 런시먼의 3부작『십자군의 역사History of the Crusades』(1951~1954년)의 간행으로 확고하게 굳어졌다. 런시먼이 그리는 십자군은 구원을 얻겠다고 동방의 세련된 문명을 파괴한 얼간이 혹은 야만인이다. 십자군에 관한 그의 유명한 ‘요약’에는 그는 “성전 자체는 신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불관용의 행위에 불과하며, 이는 성령에 대한 죄”라고 결론을 내렸다. 2001년 9월 11일의 테러공격을 계기로 서구인들은 십자군에 대해 새로이 관심을 가졌으나 역사적 이해와 대중적 인식은 아직도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나오며
2001년 9월 11일 이래로 “십자군이 어떻게 현재의 갈등을 야기했는가?”하는 물음이 자주 제기되었다. 그러나 답은 십자군과 현재의 갈등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십자군은 중세의 현상이고, 우리의 세계와는 매우 다른 중세 세계의 일부였다. 기독교도들에게 십자군의 동방 원정은 기독교도들과 그들의 땅을 이슬람의 정복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행한 사랑과 자애의 행위였다. 한편 중세의 이슬람교도들은 십자군을 이해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그러므로 911 공격을 야기한 것은 십자군이 아니라, 현대의 식민세력이 만들어내고 아랍의 민족주의자들 및 이슬람주의자들이 전수한 왜곡된 기억이다. 그들은 십자군에서 중세라는 시대적 요소를 전부 벗겨내고 대신 19세기 제국주의의 넝마를 입혔다. 그렇게 해서 십자군은 중세의 사람들이 용납은 커녕 이해도 하지 못했을 현재의 의제를 위한 아이콘이 되어버린 것이다.
◆ 참고문헌 ◆
- 박은봉,『세계사 100장면』, 실천문학사, 1997
- 조르주 타트 지음, 안정미 옮김,『십자군 전쟁』, 시공사, 1998
- 김희보,『(그림으로 읽는) 세계사 이야기』, 가람기획, 2000
- 최덕성,『종교개혁전야-십자군전쟁에서 르네상스까지』, 본문과현장사이, 2003
- W.B.바틀릿 지음, 서미석 옮김,『십자군 전쟁-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한길사, 2004
- 토머스 F. 매든 지음, 권영주 옮김,『십자군-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맨스』, 루비박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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