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전쟁 배경,사회주의 혁명,한국과 미국의 개입, 여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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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베트남 전쟁-전쟁 배경,사회주의 혁명,한국과 미국의 개입, 여성문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베트남 전쟁의 배경
1. 18세기 이전 베트남 역사 개괄
2. 프랑스의 식민통치
3. 베트남 반식민주의 운동의 시작

Ⅱ. 베트남의 사회주의 혁명
1. 베트남의 역사적 특징
2. 호치민의 등장
3. 베트남 사회주의의 성격과 특징

Ⅲ. 베트남 전쟁
1. 전쟁의 의미
2. 전쟁이 베트남에 끼친 영향
3. 전쟁의 성격
4. 전쟁의 규모
5. 전쟁의 경과
6. 결론

Ⅳ. 베트남 전쟁과 미국
1. 미국의 개입 배경 -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2. 개입 방법
3. 결과에 따른 파급효과 -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영향

Ⅴ. 베트남 전쟁과 한국
1. 서론
2. 베트남 파병의 요인
3. 베트남 파병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

Ⅵ. 베트남 전쟁에서의 여성, 민간인 학살 고찰
1. 베트남 전쟁 속의 여성
2. 민간인 학살

Ⅶ. 결어

본문내용

중에는 현재 베트남을 움직이는 여성들도 많다. 이는 베트남 전쟁 속에서 많은 여성들 또한 조국해방투쟁의 한가운데서 목숨 바쳐 싸웠고, 또 그것이 기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전사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 여전사들은 잊혀졌으며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베트남 사회는 여성들의 희생을 인정하였고, 그들의 희생 아래 전후 평등한 법률을 만들 수 있었다.
3) 전후의 모습
하지만, 베트남이라고해서 다르진 않았다. 베트남 여성들 또한 전쟁 이후에는 사회에서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강요받았고, 이런 흐름은 베트남 전쟁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했던 베트남 여성들의 삶을 주변화하였다. 전후 영웅으로 기억되는 자들 사이에 여성은 없다. 즉, 권력의 핵심엔 남성들뿐이고, 여자들은 권력에서 비켜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고난과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한 베트남 여성들은 자본과 신자유주의 물결에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역사에 의한 기억의 조작과도 맞물려있다.
그래도 베트남에서는 여성과 관련한 유산과 유물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 살아있다. 베트남의 여성박물관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몇 장의 신문기사와 사진 등 하찮은 것들이지만 이것들을 이용하여 베트남 여성들이 겪었던 전쟁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현재와의 소통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2. 민간인 학살
특히 한국군에 의한 경우를 중심으로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보면, 한국인에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는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다가, 한겨레21에 의해 처음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특집 기사에 의하면, 남한 군인들이 린선사 스님들을 향해 총기를 휘둘렀으며, 한국군 맹호부대 3개 소대를 포함한 군인들에 의해 1200명의 주민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 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주민의 학살 사례는 더 많이 밝혀지게 되었으며, 베트남 문화통신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자수는 약 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지역에 따라 주민들이 주장하는 희생자수는 그 수의 두 배가 넘는다는 주장이 있는 등 실제 피해자수는 그를 훨씬 웃돌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하여 반박하는 주장 또한 있다. 이는 특히 베트남 참전병사들을 중심으로 하며, 이들은 베트남전쟁이 게릴라전이었고, 게릴라전에서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운만큼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오인하여 사살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한국 정부는 아직 베트남전 당신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으나, 대통령의 우회적 사과나 피해지역에 대한 지원을 통하여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추정되는”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서 <한겨레 21>에서 소개되었던, 베트남전 참전 중대장 김기태씨의 인터뷰를 살펴보겠다.
“<파월한국군전사>나 <해병전투사 월남편>에는 7중대가 이날 공격목표13과 14를 공격하고 5중대의 공격을 돕는 차단작전을 한 다음, 오후에 빈록(2)(Vinh Loc2) 마을쪽으로 옮겨가 치열한 야간전투를 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김씨는 차단작전을 하기 전에 서쪽에 있는 마을 하나를 더 공격했을 거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마을 바로 앞에 한곳으로 모여 있는 주민들, 그리고 그 옆에 우거진 사탕수수밭. 이전 마을에서 “그만 좀 죽이라”고 고함친 탓에 앞서가던 2소대와 3소대원들이 이번에는 주민들을 모아 앉혀놓은 것이다. 40∼50명쯤 됐을까. 그 주위를 부하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이름을 물으며 아이들한테 사탕을 주거나 담배를 건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아이들과 여자들, 노인들이었다.
“야, 그냥 보내!” 김기태 중대장은 중대본부를 뒤따라오던 화기소대에 주민들을 살려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소대들을 지휘하며 전진했다.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탕!탕!탕! 드르르륵! 드르르륵! 뒤에서 총성이 요란했다. “야, 새끼들아 뭐야!” 고개를 돌리며 고함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수류탄 굉음. 쾅! 쾅! 쾅! “자식들아, 뭐야?” 대답은 같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섞여나왔다. 이미 엎어진 물. “야, 새끼들, 확실히 해!” 그가 소리쳤다. 사탕수수밭으로 달아나는 사람들도 얼핏 보였다. 중대원들은 “라 라이!”(이리와!) 하면서 달아나는 이들을 쫓아가 총을 쏘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냥 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 살아 남아서 증언하게 되면 골치아픕니다. 중대장으로서는 전쟁터에서 양민학살을 하는 것이 되니까, ‘확실히 하라’고 하지요. 확인사살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후에 그 일에 대한 증언이나 보고가 없어 모두 죽은 걸로 압니다.”
이 증언은 김기태씨가 모아놓은 마을 주민들을 집단 사살한 사실을 시인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민간인 학살. 이미 역사 속에 지나간 일이기에 묻혀두기에는 그 일이 참으로 엄청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 속에서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Ⅶ. 결어
남베트남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하고 이웃나라인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공산화됨으로써 새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중요한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전쟁 승리의 결과 그들은 세계최강의 미군을 물리치고 통일국가를 수립했다는 자부심을 갖게되었다. 하지만, 베트남 또한 국제화와 자본주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는 베트남의 개방을 앞당겼다. 요즈음 호찌민 시 번화가에서 미국인들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으며, 가게들은 모두 그들을 붙잡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베트남, 그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에 승리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유인선, 이산출판사
-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부썬투이, 대원사
- <베트남의 역사>, 송정남, 부산대학교 출판부
- <전쟁과 여성>, 김현아, 여름언덕
- I Love Viet 홈페이지 - 베트남 역사 (laj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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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13
  • 저작시기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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