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청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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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천 청제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머리말 -
1. 영천청제비 비명검토에 앞서
1) 청제란?
2) 금석문이란?
3) 영천청제비란?

2. 영천청제비 검토
1) 청제비 비명검토
➀ 병진명 - 병진년에 청못을 축조하다
② 정원명 - 정원년에 청못을 수리하다.
③ 청제 중립비 - 청제비가 두 동강이 났었다 ?
2) 청제비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
➀ 비명 내용에 대한 해석
➁ 비명 글자체에 대한 해석

3. 영천청제비를 통해 본 신라의 농업

- 맺음말 -

본문내용

는 수리시설과 벼농사의 확충으로 인하여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이를 토대로 통일의 밑거름을 다졌다.
- 맺음말 -
얼마전에 계명대학교에서 박물관을 빌려줘서 주식회사 솔대와 조선일보 주관으로 전시한 대영박물관 대구전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유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는 투어가이드로 3달을 넘게 일했었는데 거기서 느낀 점을 한가지만 일단 이야기 해보면 대영박물관은 유물이 보관된 것이 700만점이 넘는다. 그러나 그 700만점중에 실제 영국유물은 단 5%로 될까말까 한 정도이며 나머지는 전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온 것들이다. 물론 우리나라 유물도 상당수 포함이 되었다. 동전유물까지 합해서 5천점이 넘었으니까. 사람들에게 유물을 설명할때마다 각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해간 영국에 대해서 엄청난 분노를 느꼈지만 또 다르게 느낀 것은 이 약탈자들은 문화재 관리가 엄청나게 철저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물을 전시하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으면 ‘데미지 포인트’라는 것을 매겨서 주관회사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대영박물관 내에서도 유물보존관리를 수시적으로 해준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영국은 대영박물관 내의 유물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에 보존하고 있는 유물은 그 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유물을 훔쳐간 영국에 대해서 분노하기 전에 일단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문화재들을 보면서 과연 제대로 보존보관하고 있는지 반성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영천청제비에 대한 2004년도 11월 25일의 신문기사를 발췌한 것이다.
『영천 청제비, 무관심 한숨 [매일신문 2004-11-25 14:21]
주요 문화재로 손색이 없는 영천시 도남동 영천청제비가 관리당국과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방치되고 있다. 청제비는 신라 법흥왕 23년(536년)에 인근 청못의 축조시기와 축조사실을 기념하는 내용이 기록됐고, 뒷면에는 원성왕 14년(798년)때 일부 무너진 둑을 다시 고친 사실이 적혀 있는 등 수리시설의 내용을 기록한 비문으로서는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다. 화강암 자연판석으로 된 비문은 행간이나 윤곽선은 없는 양면비이며, 인명과 관직 등이 이두문으로 기록돼 있어 학계에서는 신라시대 사회사와 언어연구의 좋은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청제비는 지금 못 한쪽에 방치돼 잡초가 무성하고 길목 역시 웅덩이가 깊이 패어 접근조차 쉽지 않은 등 세인들로부터 잊혀가고 있다. 특히 청못은 경부고속도로 영천~대창 구간이 통과하고 있고, 최근에는 경부고속도로의 확장공사로 거의 절반 가량이 잠식된 상태여서 문화재의 가치가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또한 청못의 경우 도 문화재지정 신청됐지만 고속도로 통과 등으로 못의 원형이 심하게 훼손돼 지정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김성구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청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저수지 가운데 가장 오랜 것 중 하나이며, 못의 축조유래를 비로 새긴 것은 청지가 유일해 국보로 지정돼도 손색이 없다"면서 "당국의 관심이 아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문화재들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방치해놓으면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 조상들의 얼과 문화가 살아있는 중요한 문화재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준다면 지금처럼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일은 조금이라도 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제비. 그 금석문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리시설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으며 얼마나 오랜 시간을 정성을 모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 그에 얽힌 몰랐던 이야기들도 알게 되었고 청제비를 통해 신라의 수리시설을 엿보고 그 당시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와 같이 문화재 하나로 이전시대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문화재 하나하나에 국보나 보물이라는 명칭을 붙여 가치를 따지기 전에 조금의 관심을 더 가져주고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게 국가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현대 생활에 있어서 전자제품을
아끼고 더 새로운 것을 발명 하려고 노력하듯이 한 개인의 정체성과 국가의 역사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재 관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참고문헌
『답사여행의 길잡이8- 팔공산 자락 』
『영천청제비를 통해 본 청제의 축조와 수치 이우태 <사학논총>』
『삼국및 통일신 세제의 연구 - 역사비평사』
『천년의 왕국 신라 - 창작과 비평사』
『영천 청제비 병진명의 축조연대 경주대 김창호교수님 논문』
『21세기 웅진학습백과사전, 윤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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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4.25
  • 저작시기2006.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6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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