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풍속화란?
신윤복의 그림
신윤복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가?
신윤복과 그가 남긴 그림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풍속화란?
신윤복의 그림
신윤복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가?
신윤복과 그가 남긴 그림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본문내용
보인다. 여항이란 무엇인가? 여항은 중인들이 사는 좁은 거리라는 뜻으로 가난한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지금의 인왕산은 여항문학의 산지였다. 이인문과 김홍도 등의 화원들의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그들 가난한 여항문인들은 신분제의 벽과 서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토해냈다. 중촌의 부유한 중인들은 풍악을 울리지만, 그들의 고달픈 생활은 평민과 친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점점 확산되어 근대 시민사회의 싹으로 자라났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각계각층의 조선인들을 차별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낸 신윤복의 그림 또한 자신의 삶에 기반 한 것이었다. 당시 18세기에서 19세기로 거기서 20세기로 바뀌는 과정에 조선적인 문화에서 근대적인 문화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사회상과 인간의 심리상태를 정밀하게 사실적으로 나타낸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도시의 유흥문화는 점점 퇴폐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중국으로부터 남녀 간의 성행위를 그린 춘화가 수입돼 기방을 통해 확산됐다. 중국풍의 춘화가 조선인의 취향에 맞게 그려지기 시작했고 비속화된 저질의 그림들도 나타났다. 결국 찰나적으로 감각적으로 흐르는 퇴폐문화를 막기 위한 문화개혁운동이 일어난다. 이처럼 신윤복은 19세기 한양,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서 자유분방한 화가의 감수성으로 여항문인의 날카로운 눈으로 그림을 그려낸다. 퇴폐와 문화부흥이라는 양면의 모습을 지녔던 당시 사회상을 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가 최초의 예술적인 에로티스트 화가라 불리는 진정한 이유 또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신윤복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그 상징적인 사건은 문인화풍인 추사 김정희가 등장하게 된다. 19세기 퇴폐향락의 풍토 속에서 풍속을 어지럽히는 저속한 춘화와 수준 낮은 민화들을 퇴치해 전통을 세워 일신하겠다는 일종의 문화개혁운동이자,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기도 했다. 이로써 신윤복과 그로 상징되는 사실주적인 풍속화의 맥 또한 끊겨버리고 만다.
신윤복과 그가 남긴 그림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신윤복이 활동했던 19세기 초 조선은 기존의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과 억눌렸던 개인의 다양한 이해와 욕구가 분출되던 세기말의 시대였다. 그는 양반가의 서얼, 중인계급이라는 신분적인 한계 속에서도 자신이 살았던 혼란스러운 시대에 두발을 붙이고 당시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얼마 전 개봉한 ‘스캔들' 이라는 제목의 아주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애정, 즉 로맨스를 다룬 내용인데 , 아주 흥미 있게 보았다. 거기에 춘화를 그리는 한량이 나오는데, 색과 풍류를 좋아하는 그가 밤에 몰래 여자를 불러 유희를 즐기는 내용을 그림으로 옮기는 장면이 있어 아주 흥미롭게 보았는데, 자료를 수집하던 중 그 영화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혜원 신윤복 그림의 유명한 장면들에서 추측하여 재구성한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 무척 놀라웠다. 그 영화를 보고나니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영화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상과 추론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묘하게 풍속화첩 속의 내용들이 사실감 있게 느껴지고, 잠시나마 그 시대를 여행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신윤복의 그림은 영화의 소재가 되어 그림의 장면 장면을 재현할 만큼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감정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그의 철학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이 바로 2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되살아난 신윤복의 생명력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조선시대의 솔직한 화가 신윤복 그의 에로티시즘은 시대를 앞선 근대적 작가정신의 씨앗이었다.
신윤복과 그가 남긴 그림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신윤복이 활동했던 19세기 초 조선은 기존의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과 억눌렸던 개인의 다양한 이해와 욕구가 분출되던 세기말의 시대였다. 그는 양반가의 서얼, 중인계급이라는 신분적인 한계 속에서도 자신이 살았던 혼란스러운 시대에 두발을 붙이고 당시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얼마 전 개봉한 ‘스캔들' 이라는 제목의 아주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애정, 즉 로맨스를 다룬 내용인데 , 아주 흥미 있게 보았다. 거기에 춘화를 그리는 한량이 나오는데, 색과 풍류를 좋아하는 그가 밤에 몰래 여자를 불러 유희를 즐기는 내용을 그림으로 옮기는 장면이 있어 아주 흥미롭게 보았는데, 자료를 수집하던 중 그 영화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혜원 신윤복 그림의 유명한 장면들에서 추측하여 재구성한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 무척 놀라웠다. 그 영화를 보고나니 실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영화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상과 추론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묘하게 풍속화첩 속의 내용들이 사실감 있게 느껴지고, 잠시나마 그 시대를 여행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신윤복의 그림은 영화의 소재가 되어 그림의 장면 장면을 재현할 만큼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육체와 인간의 감정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그의 철학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이 바로 2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되살아난 신윤복의 생명력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조선시대의 솔직한 화가 신윤복 그의 에로티시즘은 시대를 앞선 근대적 작가정신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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