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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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행주산성을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행주산성을 다녀와서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성(城)
1) 인류 역사 안의 성
2) 한국의 성
2. 행주산성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
1) 행주산성의 모습
2) 행주대첩과 권율장군
3. 행주산성을 택한 이유와 의의

Ⅲ. 결론

본문내용

의 역할을 분명하게 해낸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행주산성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성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낸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행주산성을 택한 이유이자 행주산성의 의의이다. 또다른 의미를 살펴보면 혹자들은 보통 역사를 강자만을 위한 기록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왕조가 변하면 그 전 왕조에 대한 서술을 비판에서 비난의 어조로 한다거나 그 전 왕조의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역사가 서술된다는 식이다. 행주산성은 이처럼 우리들이라는 강자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인해 강자라는 인식을 하게 했고 병자호란 시 남한산성에서의 치욕을 잊으려는 것과는 다르게 행주산성에 권율장군을 위한 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강자다라는 인식을 퍼트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임진왜란 바로 직후를 떠나서 임진왜란으로부터 대략 300년이 흐른 후 헌종때 세워진 기공사나 중건비에서 또한 현대의 한국의 1970년대의 충장사, 영상교육원 등에서 나타난다. 시간이 흘러도
이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행주산성이 지니는 의의이고 행주산성을 답사하고 얻은 생각이다.
Ⅲ. 결론
‘행주산성에는 행주치마가 없다’ 송원재 『교육비평 6권』「행주산성에는 행주치마가 없다」
는 말이 있다. 행주치마라는 어원을 우리는 보통 행주대첩시에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전쟁에 힘을 보탰다라는 것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 어원은 행주대첩이 아니다. 행주치마는 1527년 최세진의 훈몽자회라는 책에서 이미 '행자초마'라고 기록되어있다. 행주치마라는 용어가 행주산성에서 온 것이라 여기는 것은 행주와 행자의 소리의 유사성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연결시키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행주산성을 돌아보며 산성의 모습보다는 행주대첩을 비롯한 권율장군의 모습들만이 존재한다고 느낀 것은 강자로서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여주려 했고 가르치자 했던 사람들로 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행주산성은 이처럼 1590년대에도 지금 현재에도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반도국가로써 침략만을 당한 아픈 기억이 아니고 큰 승리를 거둔 강자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행주산성을 답사하는 길은 아름답기만 했다. 산성이 두르고 있는 덕양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과 서울을 흐르는 한강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 경치만이 아닌 우리 역사안의 이면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이 행주산성의 답사의 의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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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06.23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6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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