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가와 도학가의 시세계 비교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사장가와 도학가의 시세계 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사장가의 시세계
(2) 도학가의 시세계

Ⅲ 결론

본문내용

일에 걸쳐 비가 내렸던 것이다. 작년 지독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었고 금년 풍년이 든다하여도 굶주림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을 선비로서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시에 나타내고 있다.
밝은 해는 아침마다 떠오르고
구름 끼나 비는 오지 않는다.
여름 지나면 무슨 소용 있을까
야인의 심사 참으로 우습구나.
위 시는 모재 김안국의 시이다. 씨조차 파종할 수 없을 정도로 대지는 말라비틀어지고 식물이 생존할 수 없는 한재가 계속되고 있다. 비록 농사일에 참여하지 않지만 농촌에 묻혀 사는 처지로서 농민의 애환이 바로 자신의 문제처럼 인식하고 있다.
모재의 경세재민을 내용으로 한 시 한수를 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물이끼로 종이를 만듦은 내가 처음이라
아마 민생이룡 생활에 유익함은 크리라
유불 길은 다르지만 민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같은 것
그대 힘입어 우리나라에 두루 전파되기를.
위 시에서 모재의 과학적인 생활 태도와 민생의 일용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모습을 알 수 있다. 모재는 관인 생활뿐만 아니라 삶의 총체적인 정신이 군민을 위한 헌신적 삶을 산 인물이다. 모재 뿐 아니라 그의 형 사제 김정국도 동일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재는 기묘사화로 인해 고양군에 은거하면서 직접 밭농사 일을 하기도 하였다.
짚신 잠방이 옷에 새벽이슬 적시고
마른 지팡이 세워놓고 손수 호미질 하네.
여기저기 김매는 일로 일과를 삼으니
한가히 지내려다 도리어 한가롭지 않구나.
사제의 <수서>라는 시이다. 이 시에서 보듯 사제가 한가롭게 지내려고 한 것이 도리어 한가롭게 지낼 수 없다는 자조적인 술회에서 그의 농민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사제는 또 <민농>이란 시에서 "타오르는 태양 정오에 이르니, 땀이 흘러 장이 되고, 벼 포기 하나하나 호미질하기 손발이 바쁘구나. 땀 흘려 지은 농사 부세잡역에 다 바치니 이제 열 집이 살던 마을 절반이 떠나 버렸네."라고 몸소 접한 농민의 애처로운 실상을 읊고 있다. 그의 강렬한 애민의식을 담고 있는 시를 하나 더 살펴보자
해마다 몇 만석을 배로 실어 날라
듣자하니 썩은 쌀 창고 넘친다지
근래 흉년들어 괴로움 계속되고
금년 가뭄은 더욱 마음 아프구나
봄부터 여름 되도록 비 한 방울 없어
보리는 타 버리고 벼도 끝내 말라버려
논에는 왕왕 푸른 싹이 있지만
온 밭두둑엔 떼 지어 해충이 생긴다
어린것 늙은이 서로 붙잡고 이끌며
굶어 죽은 송장 많이도 쓰러져 있네
내 집 서쪽으로 몇 리 안되는 곳에
황조라 부르는 물가 마을이 있어
사는 백석 경작한 땅 모두 개펄이라
한번 가뭄 닥치면 먼저 재앙 당하네
이제 보니 열집 중에 아홉 집은 떠돌이 되어
날마다 들풀 캐어 주린 창자 채우고
파리하게 누워 똥을 누니 온통 풀이라
동네 개도 먹지 않고 다맛 서로 소리 치네
이웃이 다 빈집이라 누가 뼈를 묻으리
방아 찧지 않음이 오래되어 겨도 없고
머리 들고 먹을 것 찾으나 어찌할 수 없어
얼마 후 사람 개 나란히 머리하고 죽었다네
이 지경 민생을 어찌 차마 말할까
누가 달리 듣고 그 말 모으며
누가 이 한 마을 실정을 알리오
가까운 곳 들춰보면 먼 곳 역시 머물 수 있으리
어떻게 하면 회령의 정감문 얻어서
이 일 그림 그려 임금에게 알릴까
어떻게 하면 하내 급암대부 얻어서
조운 곡식 제대로 나눠주어 백성을 살릴까
내 이제 구제할 힘없음이 한스러워
날로 빈 마을 바라보며 두 눈에 눈물뿐이라네
이 시는 1531년 당시 연이은 가뭄으로 황폐한 농촌의 실상을 그대로 그린 것이다. 그는 기축경실(1529~1530)년이 계속해서 가물었고 그 이듬해 신묘(1531) 정초부터 6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모든 곡식이 불꽃 속에서 타는 것 같다. 백성들은 들풀을 캐서 허기를 채우고 서로 바라보며 엎어져 죽어 갔다. 내 살던 서쪽 황조라는 물가 마을 사람들은 더욱 심한 기근이 들어 오로지 수초로 배를 채웠다. 피곤해 누어 똥을 누면 곰삭은 수초라, 동네 개들도 냄새를 맡고 먹지를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사람이나 개가 함께 굶어 죽었는데 이웃하는 집들이 다 그러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남쪽에서 실어 온 곡식 배들이 강을 덮어 올라 왔다. 만약 한척의 곡식만 흘려준다면 한 마을의 인명을 살릴 수 있을 텐데."라는 설명을 주석으로 붙여 당시 민생의 어려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자세히 묘사해 주고 있다. 첫 부분 조세미는 국고에 넘쳐 썩어가는 반면, 연이은 흉년으로 인해 죽어간다고 묘사해 민생의 참담함을 그렸고, 이웃 고을의 실제적 예를 제시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더욱 자세히 나타내었다. 회령 땅 화가 정감문을 데려다가 사람과 개가 굶어 죽어가는 현장을 그려서 임금께 바치고 싶고, 중국 하내의 대부였던 급암이 임금의 교서를 고쳐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을 나누어 구제하였던 고사를 생각하고 작자의 마음에서 지극한 애민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미약하나마 사장가들의 문학과 도학가들의 문학을 살펴보았다. 이 둘은 사회적인 성격이나 사상적인 기반에서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문학을 하는 기풍 그 자체에도 상당히 대립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사장가들이 왕조사업을 일구어내고 기득권을 지니게 되어 점점 보수적이 되면서 그들의 문학양태도 장식적인 기능을 중요시하고, 작자 자신의 내면적인 요구에 호응하는 문학도 격식에 맞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도학가들은 자기성찰과 도학을 통한 경세재민을 중요시하였다. 즉, 사장가들과 도학가 모두 도를 중시했지만, 사장가들은 글 속에 담기는 도보다 외면적인 형식을 중요시 하였고, 도학가들은 문장을 말로 보아 그 속에 담기는 내용을 더욱 신경 썼던 것이다. 물론, 도학가와 사장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설명하기에 무리한 점도 있다. 그러나 기득권에 따른 안정을 누리는 쪽이 문학 표현의 장식적인 기능을 존중하고, 기득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세력이 문학 내용의 도덕적인 기능을 강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장가들과 도학가들은 기실 표면적으로 문학세계에서 추구한 바가 다르고 완전한 대립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이 대립하게 된 이유가 문학에서 추구하는 노선이 달라서가 아니라 결국은 그들이 얽혀 있던 정치적 대립으로 봄이 더욱 옳을 듯 하다.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6.07.04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795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