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 별 소동파 시문학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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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소동파 연구를 위한 예비 고찰
1)소동파의 생애
2)북송 시대의 시대적 상황
2. 거주지별 소동파의 작품
1)초기 벼슬 시절
2)지방관 시절
3)황주 유배지 시절
4)2차 중앙관 시절
5)혜주, 해남도 유배시절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번 개벽한 다음부터 다음 번 개벽할 때까지의 긴 시간을 ‘겁(劫)’이라고 한다. “가지가지 생각 영겁을 이룬다”는 것은 인간세상의 변화가 신속함을 말한다. 도교에서는 세계를 티끌(塵)이라고 하는데, “티끌 하나 하나에도 각기 저마다의 세계가 있다” 는 것은 곳곳마다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 두 구는 장자의 전고를 사용하여 만물의 생존은 모기의 호흡과 다름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 것을 보면 이 시기 소동파는 티끌세상을 벗어나 인간세상을 멀리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결코 진정으로 허무를 믿거나 불법에 귀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내면적으로는 현실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상의 발전을 이어가며 이 시기 소동파의 시 창작은 황주 유배시기와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모순된 인생감개가 창작의 주된 내용으로 되었다. 그러나 황주 시기에 비하면 부드럽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觀棋>
五老峰前, 白鶴遺址.
長松蔭庭, 風日淸美.
我時獨游, 不逢一士.
誰歟棋者, 戶外屢二.
不聞人聲, 時聞落子.
紋坐對, 誰究此味.
空鉤近釣, 豈在鯉.
小兒近道, 剝啄信指.
勝固欣然, 敗亦可喜.
優哉游哉, 聊復爾耳.
오로봉 앞, 백학관의 옛 터.
긴 소나무가 그늘 드리운 뜰에, 바람과 해가 맑고도 아름답네.
내 때로 홀로 노닐었으나, 한명의 선비도 만나지 못했네.
누구인가? 바둑 두는 이는, 문 밖에 신 신 두 켤레가 있네.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따금 바둑알 놓는 소리만 들리네.
무늬있는 바둑판을 마주하고 앉으니, 누가 이 맛을 헤아릴까.
빈 낚시바늘로 낚시하는 뜻이, 어찌 방어와 잉어를 잡는데 있으랴.
어린 아들이 바둑을 둘 줄 아는 것은, 딱 딱 손 가는 대로 바둑알 놓기 때문이라.
이기면 진실로 기쁘지만, 져도 즐거운 일이라네.
한가롭고도 즐거우니, 잠시 다시 두어 보게나.
4언체로 된 위 시는 소재와 표현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 시기 그의 감정은 현실에 만족하고 처한 환경에 따라 안주하며 자적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또한 이 시기 시에서는 영남과 해남의 생활과 풍광에 대한 찬미와 묘사의 내용을 하는 시를 쓴다.
<食枝二首>
羅浮山下四時春, 盧橘楊梅次第新.
日啖枝三百顆, 不辭長作嶺南人.
나부산 아래는 사계절이 항상 봄 같아,
금귤, 양매 차례 차례로 새로운 과일 열린다.
날마다 여지를 삼백 개나 먹으니,
오래도록 영남사람 된다해도 사양 않으리.
위의 시에서 동파는 혜주를 고향의 감정을 품고서 모든 것을 본다. 애정을 가지고 혜주의 풍물의 미를 보며, 풍취가 넘치는 생활 가운데서 시정을 발견하여, 이것을 포착하고 나타내는데 뛰어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소동파의 시는 예술적으로 날로 원숙해감과 동시에, 담박하고 고아한 풍격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만년 시풍은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도연명과 유종언을 숭배하여 모범으로 삼고 있다. 그는 화도시(和陶時)로 도연명의 시에 화답하면서 그의 예술적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和陶雜詩十一首>
斜日照孤隙, 始知空有塵.
微風動衆竅, 誰信我忘身.
一笑問兒子, 與汝定何親.
從我來海南, 幽絶無四隣.
耿耿如缺月, 獨與長庚晨.
此道固應爾, 不當怨尤人.
비스듬히 기운 해 외로운 문틈을 비추니, 비로소 공중에 티끌이 있음을 알았네.
가벼운 바람이 모든 구멍에서 부니, 누가 내가 내 몸을 잊었음을 믿으랴.
한 번 웃으며 아이에게 묻나니, 누가 너희와 더불어 친할 수 있으랴.
나를 따라 해남에 오니, 깊숙이 단절되어 사방에 이웃도 없는데.
근심하는 마음 이지러진 달과 같아, 다만 장경성과 새벽을 함께 한다네.
이 길은 진실로 이러해야만 한다니, 남을 원망하거나 탓해선 안되리.
그는 위와 같은 화도시를 남기며 도연명에 핍진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는 화운(和韻)의 제약에 관계없이 숙련된 기교로 좋은 시를 지었으나 화운한 시가 120여가지가 되는 것은 그가 재주를 드러내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묘기를 보이려고 자승자박에 빠졌던 것을 보연주다고 본다.
소동파는 말년에 유배지에서 그의 생을 보냈으나 이 시기의 그의 작품은 소동파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Ⅲ. 결론
소동파는 정치의 면에서는 불우하여 곤란으로 가득 찬 일생을 보냈으나, 문학의 면에서는 풍부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작가이다. 그는 시 2,000여 수, 사 300여 수, 그 위에 산문 작품도 방대한 양에 이른다. 그것은 동시대의 작가에 뛰어나서 북송문학의 고봉(高峰)을 이루고 있다. 특히 그의 시는 제재도 광범위 하고 내용도 풍부하며 동시대 작가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의 시는 크게 정치시, 서정시, 풍경을 묘사한 시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시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으나, 정치 사회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태도와 견해의 표명은 중요한 내용의 하나라고 하겠다.
소동파는 사회의 모순과 정치의 폐단을 과감히 폭로하여 백성의 고난스러운 생활을 시에 반영시켰다. 이러한 자세는 그의 평생을 같이 했다. 또한 그의 시는 계급모순만이 아닌, 민족모순도 반영되어 있어 광범위 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정치시에는 일정한 사상적 깊이가 있으며 백성의 고난에 대해 방관자적 자세가 아닌 애증이 교차하는 감정, 특히 내면적인 자책과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다.
서정시에는 재능과 이상을 지니고 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하나의 봉건지식인의 정신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자유를 노래하고 산수를 동경하며 세속을 벗어나고자 하며 자연인을 갈망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풍경을 묘사한 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동파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달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그의 인생사상과 미학등이 결합하여 단순한 재현의 시를 넘어서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다양한 시 세계를 펼치는 소동파는 자의든 타의든 유배지에서의 경험이 그의 문학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소동파는 정치적으로는 불행하였을지 모르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러한 상황이 소동파의 작가로써의 생명력에 큰 밑거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중국의 문호 소동파, 월인, 2001
蘇東坡評傳, 지식산업사, 1988
참고사이트
http://100.naver.com/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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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8.17
  • 저작시기2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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