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자본의 이윤획득과정과 인도의 문화이념과의 가치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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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상징자본의 의미

3. 상징자본의 잉여축적과정

4.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상징자본의 차이의 정당화

5. 인도의 종교윤리와 상징자본의 무제한적 축적의 가능성
1]초기불교 교리에서의 '業'(카르마)의 의미와
자기 합리성의 궁극적 의미
2]힌두교에서의 의미적 다양성과 상징자본의 demage의 극복형태

본문내용

유형이 기족교적인 구제이념과 여기에서 도출된 금욕적인 구제 방법을 통해 육성되었는가? ” 막스 베버의 문화사회학과 인간학, 박성환 1992, 문학과 지성사
이다. 즉, 퓨리탄의 윤리에 맞게끔 움직이는 자본가의 정신과 그것의 윤리적 강령에 의해 금용주의적인 자본축적이 가능하게끔 한 것을 연구한 것이다 막스 베버의 연구이며, 또한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가는 종교적 신념에 의거한 나름대로의 종교이념의 실천적인 자본가를 그리는 것이며, 이것은 분명 인간 주체에 대한 성찰적의미가 아닌 복종과 강요에 의한 인간모습인 것이다. 막스 베버가 의미한 “악마와 손을 잡더라도”의 의미와 행위가 가능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형태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근대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의 임무는 자신의 잉여(이윤)의 최대창출과, 금용적인 생활이 중요 근간을 이루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생산적 의미를 최고도로 발휘하게끔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잉여자본의 생성은 다시 생산자본으로 바뀌고, 더욱 많은 생산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걸은 인간형이 산업사회의 인간형이며, 이것이 근대 자본주의와 현대에 걸쳐 나타나는 일반적 유형의 자본가이다.
그러나 상징자본의 등장은 오히려 이러한 산업자본에 대한 관계가 퇴식되고, 소비에 근거를 둔 자본이 세계화를 이끌면서 자본의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자본의 잉여를 생산자본이 아니라, 그것의 순환을 통해(즉, 자본의 소비를 통해)자본을 획득하는 형태, 다시 말해서 메뉴팩처에 대한 투자가 아닌, 자본의 자본투자, 자본의 흐름에 대한 투자가 주체적인 잉여의 가치로서 등장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자본은 '소비'가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더욱 큰 잉여를 생산하며, 이것 자체가 가지는 demage의 의미방식에 따라 자본잉여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demage는 결국 소비자와 함께 움직이는 메카니즘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형식의 관계는 소비의 퇴색을 통해 드러나는 순환과정의 방해가 가장 큰 risk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순환에서 데미지의 통제방식에 의해 자본흐름 자체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잉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사회와 현대사회에 걸쳐 나타나는 산업자본가의 형태는 단지 순환의 결과만을 가지고 잉여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자본의 흐름과 과정에 대한 잉여의 가치는 실질적으로 다른 상징자본가들에 비해 상대적 잉여로서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 예를 들어, 현대사회에서 “제조업과 공업의 쇠퇴”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다. 즉, 이것은 기존의 종교적 이념형에 따른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몰락인 것이다.
그와 비교할 때 힌두교의 다양성에 의한 교리 이에 대해 조금 더 보충설명을 한다면, 힌두교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신들을 이렇게 통일하는 방법은 그러한 신들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도 규정한다.
힌두교에서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은 비교적 적다. 또 유대교나 기독교에서처럼 신과의 계약이라는 관념도 없다. 파괴의 신으로서 두려움을 주는 쉬바 신의 경우에도 지상에 자비를 베푸는 면이 있으며, 그 신에게 절대적인 신앙, 즉 박티(信愛)를 바치면 어떠한 사람도 쉽게 구제를 받는다고 생각해 왔다.( “신”의 존재적 성향조차 다름)
또한 이들의 신관념은 유대교,이슬람교와 같은 일신교와 근본적으로 디른 면을 가지고 있으나, 힌두교에서는 이로 인해 일반적인 이단(異端)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단이란 원래 정통적으로 확립된 교리에 대해 비판을 함으로써 생겨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통과 이단의 대립은 힌두교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중세의 차이타니야 파(派)와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개혁파의 까비르, 그리고 시크교를 개창한 나나크도 사회적으로 이단 취급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이 힌두교에 이단이 없는 것은 힌두교가 다른 종교·사상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관용의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힌두교와 대립관계에 있던 종교로는 자이나교·불교·이슬람교 그리고 근대에 이르면 기독교와 유럽의 근대사상, 근대과학 혹은 유물론이 있다. 힌두교는 이들 대립하는 모든 종교·사상에 대하여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는 자신의 울안에 틀어 박혀 이에 대항하지 않거나, 혹은 그들을 자기 안으로 흡수 동화시켰다. 예컨대 사회적인 신분제도에 저항했던 불교도 실제로는 힌두교의 한 파로 간주함으로써 붓다는 비슈누 신의 아홉번째 화신으로서 힌두교 의 신화 속에서 융화되어 있기도 한다.
이 내용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자료임. 출처 :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6&dir_id=60305&eid=A5jwpUuOWCDggZ+xNK3DYyMBoNH6A0qR처 :
는 어떠한 형태로서의 의미적 관계에서도 결국 이념화되는 형태의 자아와 더불어 현실세계의 변화무쌍에 대한 자신의 가치적 실현이 의미가 되기에 어떠한 현실적 관계에서의 demage에 대해서도 반응을 할 수 있는 주체적 자아로서의 행위를 이념형으로 한다는 점에서 상징자본에 대한 데미지의 통제방식을 신념화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자본을 획득함에 있어서 실제적인 삶의 지침이 되는 형태로서의 종교가 만연한 인도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현실에 대한 통제를 나름대로 조절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경제인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상징자본을 자신의 신념대로 이끌수 있는 자본가가 아닌가? 내면적 동기를 추구하며, 자신의 삶이 종교적 형태의 이념적 삶이 되며, 자신의 합리화 과정을 통해 자본의 demage를 통제할 수 있는 전제를 가진 자, 그것이야 말로 상징자본이 세계화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부응하는 인간의 자세일 것이다.
또한 그것이야 말로 주어진 세계에 순응하며 자신이 만들어가는 자신의 역사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역사적 인간일 것이다. 그래서 사상적 유연성과 함께 주관적 입장을 강화할 수 있는 신념의 직접성에 전제를 만들어 줌으로써 잠재적 가능성과 더불어 차이의 안정성(차이에 근거한 다양성 인정)을 만들어 주는 형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키워드

인도,   힌두교,   불교,   상징자본,   자본,   이윤,   카스트,   종교
  • 가격3,000
  • 페이지수24페이지
  • 등록일2006.08.28
  • 저작시기2006.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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