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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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미지의 문화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Ⅰ. 이미지들의 증언(서장)
1) 보이는 것들을 보지 않는다?
2) 원천과 흔적
3) 이미지의 다양성

Ⅱ. 권력의 이미지(4장)

나오며

본문내용

775 ~ 1856)은 찰스 제임스 폭스에게 로마 시민들이 입던 겉옷 토거를 입혀 놓았다.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웨스트 매컷 역시 정치가를 바지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그는 폭스를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그가 ‘지나치게 풍채가 좋아 서 있으면 위엄있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기념물의 정치적 메시지는 그가 쥐고 있는 두루마리에서 드러나는데, 그것은 대헌장으로 구체화된 자유를 상징하고 있다.
3) 전복적 이미지들
성상 파괴는 단순히 종교적 현상만은 아니었다. 정치적 성상 파괴 혹은 정치적 ‘반달리즘’ 역시 존재한다. 반달이즘이란 말은 대수도원장 앙리 그레구아르(Henri Gregoire, 1750 ~ 1831)가 만들어낸 것으로 그는 프랑스 혁명의 극단적인 측면들에 대해서는 반대했지만 성상 파괴주의자들의 기본적인 논점, 즉 이미지는 가치를 선전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이런 기념물을 제거하는 것에 찬성했다.
상당수의 다른 혁명들도 이전 체제와 연결되어 있는 기념물들을 파괴해 버렸다. 1871년 파리코뮌 중에는 루이 14세의 조상 대신 세워졌던 나폴레옹의 조상을 비롯해 방돔 광장에 있던 다른 조형물들이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지휘 아래 파괴됐다. 러시아는 차르의 조상들이, 1956년 헝가리 혁명 때는 부다페스트에 있던 스탈린 기념물이, 중국에서는 1988년 몇몇 대학의 교정에서 마오쩌둥의 조상이 철거되기도 했다.
반대로 이미지 그 자체가 전복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때로는 공개적인 기념물도 전복적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로마 캄포 데이 피오리(Campo Dei Fiori)를 찾는 관광객들은 광장 중앙에 있는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의 조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이 대표적인 이단자의 조상 건립은 당시 이탈리아 수상이 이신론자이자 프리메이슨이었던 것을 기회 삼아 교황의 맹렬한 비난을 무릅쓰고 강행됐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조상의 반교황주의의 기념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좀 더 최근 들어서는 기존 기념물의 표현 방식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요헨 게르츠(Jochen Gerz)와 에스터 게르츠(Esther Gerz)가 설계한 함부르크의 반파시즘 기념물(1986)을 들 수 있다. 이 기념물의 기둥은 영구적인 다른 기념물들과 달리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잠겨들게, 그러니까 1990년이 되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제작됐다. 이 기념물에서는 ‘말 탄 영웅들’의 시대가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1730년대 정치 판화가 등장한 것은 이 무렵 야당이 공식적으로 창설됐던 것과 관련이 있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에는 또 다른 형태의 이미지 전쟁이었던 1789년의 혁명과 연결되어 있는데, 1789년 이래의 근대 정치사에서 시각적 프로파간다는 대단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지의 정치적 이용을 대중을 조종하려는 시도로만 축소하는 것은 곤란하다. 신문의 등장과 텔레비전 발명 사이의 기간에 풍자화나 시사만화들은 권력을 비신화하고 보통 사람들의 국정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정치적 토론을 활성화하는데 엄청난 공헌을 했다. 따라서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 1756 ~ 1815) 같은 시사 만화가의 작품들은 역사가들에게 아래에서 본 18세기 영국 정치에 관해 참으로 귀중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자만화들이 처음 나왔을 때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것은 이 작품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의 정치적 태도 또는 의식을 재구성하는데 이런 이미지들을 활용할 때는 얼마간의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할 수 있다.
나오며
기사 조쿠르(Chevalier de Jaucourt)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전서』의 기고가 중 한 명이다. 조쿠르는 디드로의 친구로, 이 백과사전의 2권째를 작업할 때 합류해서 마지막권을 제작할 때까지 상당히 많은 항목을 집필했다.
가 『백과전서』의 ‘회화’ 항목에 썼던 것처럼 “역사를 통틀어 통치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항상 회화와 조상들을 이용해 왔다.” 그리고 국가가 이런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또 어떤 식으로 이미지들을 이용했느냐는 점과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달랐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참 고 문 헌
피터 버크, 『이미지의 문화사』, 박광식 옮김, 심산,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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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6.10.06
  • 저작시기2006.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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