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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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도자기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연구목적
Ⅰ. 서론
1. 도자기의 정의
2. 도자기의 유래
3. 도자기의 구분

Ⅱ. 본론
1. 선사시대의 도자기
2. 삼국시대 도자기
3. 통일신라시대의 도자기
4. 고려시대의 도자기
5. 조선시대의 도자기

Ⅲ. 결론
1. 체험관 및 과학관 답사내용
2. 도자기 만들기 체험
3. 도자기를 통해 알아본 당시의 시대상

본문내용

라 다음과 같이 세분된다.
ⅰ. 소문철채청자
기면에 아무런 장식 분양도 없이 철사물감만 칠하고 청자유들 씌운 것 이 있는가 하면, 외부 기면에만 철시물감을 바르고 청자유를 칠한 뒤에 내부기면에는 철사물감을 칠하지 않고 청자유만 씌워서 만든 것도 있다.
ⅱ. 음각철재청자
기면에 문양을 먼저 음각하고 철사물감을 바른 뒤에 청자유를 시유하여 소성한 것, 철사물감을 먼저 칠한 다음에음각을 하고 시유하였기 때문에 흰 음각무늬가 돋보이는 것 등이 있다.
ⅲ. 퇴화철채청자
기면에 철채들 칠한 위에 백토로 무늬를 그리고 청자유약을 칠하여 구워 만든 것으로서, 백토의 흰 무늬가 도드라지게 노출된 청자이다.
⑧청자기와〔育磁凡〕
우리나라 청자와에는 납유계(銀相系)의 청기와와 청자계(音磁系)의 청기와가 있다. 납유계의 청기와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1257~83) 때 승 육연(價 六然)이 광주산(廣州慶) 의안토(義安土)와 확단(黃牛 船꽤으로 청색 유리질 기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납유에 의한 청색계 도기질 기와로 추정된다.
납유계 청토기는 일찍이 페르시아에서 생산된 것이 중국 당나라에 도입되어 당삼채隨르彩)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다시 통일신라에 도입되어 신라삼채를 생산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납유도기의 시초라고 하겠다.
"1157년(의종 11년) 의종(殺宗)은 왕궁 인접지에 있는 민가 5O여 호를 헐어 그 자리에 태평정을 짓고 옆에는 이름 있는 꽃과 이상한 과일 나무를 심어 기이하고 아름다운 진기한 물건들을 좌우로 진열하였으며,
정자 남쪽에는 못을 파고 그 북쪽에는 양이정廣倍郭을 지어 청기와로 이었고, 그 남쪽에는 양화정(養和亨)을 짓고 종려잎으로 지붕을 이었다"는 기사를 세가의종(世家殺宗) 11년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청자계 기와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다만 1927년 고려 왕궁터인 만월대에서 청자기와 파편이 발견되었으나 그 정체는 밝혀내지 못하였나. 1964~6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하여 강진군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 다량의 청자 파편과 함께 청자기와가 출토되었다. 청기와의 길이는 203cm 이며, 암막새는 양각당초문이고 수막새는 보상화문에 주문대(珠文帶)를 두른 것으로서 기와라기보다 아름다운 미술품이었다.
기와의 역사가 4천 년이 되지만 토기와가 시종일관 주종을 이루었다. 토기질 기와로 납유계 연질도기 기와는 출현되었으나 자기기와, 더구나 미려한 청자기와가 우리나라에서만 생산되었다는 것은 전세계에 자랑거리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4) 고려백자
보통 백자라함은 백토로 만든 소지에 투명한 백색유약을 칠해서 구워 만든 백색계 자기로, 흰 소지가 투명유약을 통하여 내 비치는 백색 자기이다 그러나 때로는 순백색이 아니고 이러저러한 연한 잡색을 띤 백색계의 자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원료토에 이물질이 함유되었거나, 유약의 성분이 다르거나, 소성에서 산소(공기)의 공급량이 다른 데서 발생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 백자의 색에는 눈처럼 흰설백색(雪白色), 우웃빛 같은 유백색(細色), 달갈색 같이 누르스름한 난백색 푸르스름한 청백색, 연한 회색을 띤 회백색이 있다.
① 설백자(雪립磁)
눈처럼 깨끗한 흰색의 백자로서 순백梅말한다 이 백자는 불순물이 없는 백토와 유약으로 만들어 적당한 공기량을 공급하여 산화염으로 소성한자기로서 백자의 모델이다.
②유백자(孔白磁)
유백자는 백토와 미량의 함철분 유약으로 만든 것을 약간과잉 상태의 공기를 공급하여 산화소성한데서 발생된 자기이다
③ 난백자빼自磁)
난백자는 유백자보다 백토나 함철량이 약간 더 많은 유약으로 만든 것을 유백자와 통일한 소성 방법으로 만든 자기로서 누르스름하게 발색되는 것은 철분이 산화된 때문이다.
④청백자(옥사기)
청백자를 옥사기라고토 한다. 백토나 유약은 난백자와 동일한 것을 사용하고, 소성말기에 공기 공급을 약간 부족하게 한 환원소성으로 하여 철분이 환원된 데서 발색된 것이다. 이보다 더 강한 환원소성을 하게 되면 청자로 된다.
⑤회백자
연한 회색을 띤 백자이다. 백토나 유약에 함철량이 난백자나 청백자에 비해 약간 많은 것으로 소성에서는 공기 공급량을 약간 부족하게 환원소성으로 번조한 자기이다.
이상과 같이 백자의 색은 백토와 유약의 순수성과 소성 분위기에 따라 변화되기 때문에 원하는 백지를 만들자면 이를 잘 조절하여야 된다.
우리나라 백자의 기원은 고려 초기 유백색 연질백자에서 출발되었다. 이 연질유백자는 특히 유약이 그물처럼 빙렬유(氷製抽)로 된 것이 많다. 이와같은 빙렬유는 유약과 소지와의 수축팽창계수가 맞지 않는데서 발생되는 현상이다. 이 연질백자는 전라북도부안가마터에서 많이 출토된다
연질백자는 경질백자로 발전되었으나 오랫동안 병행되면서 서서히 소멸되었다. 양질의 경질백자는 경기도 용인군 서리 가마에서 번조되었다. 고려백자 가마는 용인 가마처럼 백자 전용 가마도 있지만, 부안이나 강진처럼 청자 가마에서 번조된 백자가 대부분이다.
고려의 최종 백자는 '홍무 24년(洪武=十四年: 1391)' 명문백자로서, 이것은 조선 건국 1년 전에 번조된 것이다.
고려의 발전된 백자의 전통은 고스란히 조선조 백자에 계승되었다.
5) 고려자기의 가마재임
토기 시대의 가마재임은 고온소성이 아닐 뿐 아니라 유약칠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고려조에 청자들 생산하면서부터는 새로운 가마재임을 하게 되었다.
가마재임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이 요구된다.
① 기운이 소성체曉成體 사이를 고르게 통과할 수 있도록 불길[吹道〕을 연결하여 소성물이 균등하게 소성되도록 하여야 한다. 불길에는 허튼 불길과 곧은 불길이 있는데, 전자는 불기운이 소성체 사이를 구불구불 통과하게된다. 또 후자는 소성체가 각형(角形)으로된 것은 바둑판처럼 전후 좌우로 곧은 불길로 만드는 가마재임을 한다. 어느것이나 불길은 도증에 막히지 말아야 하며, 간격도 가급적 넓고 좁은 데가 없어야 소성이 균등하게 된다.
②가마재임은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하게 쌓아야 한다. 소성 과정에서 무너지게 되면 파손품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③가마재임은 빠르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여 생산성을 제고시기는 동시에 노력을 절감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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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0.12
  • 저작시기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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