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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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축적과정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관련됩니다. 산업화에 있어서 국가는 단지 시장을 유인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규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국가는 수출증대를 위해 기업들에게 특혜융자, 세금감면과 같은 조치를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국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생산자본의 유입, 즉 직접투자를 수출자유지역에 한정시킴으로써 실질적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국내자본의 보호와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선진자본으로의 종속에 따른 결과인 '국내시장의 국제화'가 초래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직접투자는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의 기반을 조성하였지만 수출의 주체는 국내자본이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수출증대에 따른 이윤이 국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경제를 신장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표 5> 한국에 대한 외국의 직접투자 현황, 1966-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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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72 1973-75 1976-78 1979-82 19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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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90.5 87.7 53.5 137.2
(1.6) (1.7) (0.8)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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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aggard(1990). 단위: 백만달러 ( )는 총자본중 점유율: %
이와같이 국가는 자본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커밍스는 오도넬이 남미의 국가를 관료적 권위주의(BA)체제로 지칭한 바와 같이 한국의 국가를 관료적 권위주의 산업화체제(BAIR)로 규정하였습니다. BA체제가 민중정권의 위기에서 등장했다면 BAIR은 일본식민지시기의 중앙집권적 국가기구를 그대로 인수받았으며 시민사회에 대한 광범위한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BA체제는 동원이 활성화되어 있던 민중부문을 억압해야 했지만 BAIR은 민중부문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동집약적인 산업화의 추진은 국가의 통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본원적 테일러화에서 국가의 노동통제는 표면화되어 있었지만 포드주의의 수립 이후에도 이러한 통제는 지속되었습니다. 억압과 동의의 양면전략을 구사하는 중심부 포드주의와는 달리 주변부 포드주의는 안정적인 노동력의 공급을 위해 동의보다는 억압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포드주의의 불완전성을 함의합니다. 즉, 미숙련 조립에서 벗어나 숙련생산을 주축으로 하는 주변부 포드주의가 수립되었지만 저임금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본원적 테일러화에 기초한 생산은 여전히 존속되었던 것입니다. 본원적 테일러화와 주변부 포드주의의 이러한 중첩은 포드주의의 수립 초기에 두드러졌으나 80년대에 들어와 포드주의가 정착되면서 점차 약화되었다.
V. 결론
한국의 자본축적은 축적전략의 산물도 아니고 세계경제의 구조적 결정에만 기인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본축적은 중심부 포드주의의 축적위기에 따라 국제분업의 재편과 선진자본의 국제화 과정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즉, 한국의 자본축적은 세계경제의 구조변동과 축적전략간 상호작용의 산물인 것입니다.
한국은 수출대체기와 집약적 축적기를 통해서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까지 10대 재벌의 매출액 합계는 GNP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중앙집권적인 리더십, 산업정책의 도구로서 국영금융부문의 이용, 행정부와 대기업간의 밀착은 산업화에 대한 집중적 통제를 초래했습니다.
급속한 자본축적을 성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변부 포드주의 체제는 포드주의 자체의 문제점과 주변부의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몇가지 문제점에 직면하였습니다. 첫째,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부터의 탈피는 중화학공업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요청하였으며 생산재의 수입비용을 증대시켰습니다. 한국은 생산재의 대외의존이 보다 심화되었는데 이것은 수출지향에 중점을 둔 데 따른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생산재산업이 거의 육성되지 못했으며 중화학공업이 수직적 국제분업체제에 편입되어 노동집약적인 조립.가공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화학공업부문에 대한 집중투자와 생산재의 수입은 수출증대의 기반을 조성하여 지속적인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둘째, 주변부 포드주의의 저급한 기술수준이 선진자본주의의 신기술과 심각한 경쟁에 처해짐에 따라 수출상품의 경쟁력이 약화되었습니다. 한국은 집약적 축적을 통해서 기술수준의 향상을 추구해 왔지만 아직까지 첨단기술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핵심부문을 장악하고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하청생산을 담당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같은 기술의존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첨단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요청됩니다.
셋째, 실질임금의 지속적인 상승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변부에 대한 경쟁력을 유지해야 되기때문에 임금상승은 여전히 억제되었습니다. 이와같이 낮은 임금수준은 구매력을 약화시켜 내수시장의 위축을 가져옴으로써 장기적으로 자본축적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부 포드주의는 중심부 포드주의와 마찬가지로 대량소비를 위해 내수시장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집약적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임금을 현실화시키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자본축적에 따른 신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성장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을 초래하여 체제를 동요시켰습니다. 즉, 주변부 포드주의의 수립은 민주화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고 신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역량을 증대시켜 정치적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통제를 지양하고 형평성 있는 분배를 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축적과정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관련됩니다. 산업화에 있어서 국가는 단지 시장을 유인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규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국가는 수출증대를 위해 기업들에게 특혜융자, 세금감면과 같은 조치를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국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생산자본의 유입, 즉 직접투자를 수출자유지역에 한정시킴으로써 실질적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국내자본의 보호와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선진자본으로의 종속에 따른 결과인 '국내시장의 국제화'가 초래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직접투자는 한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의 기반을 조성하였지만 수출의 주체는 국내자본이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수출증대에 따른 이윤이 국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경제를 신장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표 5> 한국에 대한 외국의 직접투자 현황, 1966-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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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72 1973-75 1976-78 1979-82 19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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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90.5 87.7 53.5 137.2
(1.6) (1.7) (0.8)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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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aggard(1990). 단위: 백만달러 ( )는 총자본중 점유율: %
이와같이 국가는 자본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커밍스는 오도넬이 남미의 국가를 관료적 권위주의(BA)체제로 지칭한 바와 같이 한국의 국가를 관료적 권위주의 산업화체제(BAIR)로 규정하였습니다. BA체제가 민중정권의 위기에서 등장했다면 BAIR은 일본식민지시기의 중앙집권적 국가기구를 그대로 인수받았으며 시민사회에 대한 광범위한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BA체제는 동원이 활성화되어 있던 민중부문을 억압해야 했지만 BAIR은 민중부문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동집약적인 산업화의 추진은 국가의 통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본원적 테일러화에서 국가의 노동통제는 표면화되어 있었지만 포드주의의 수립 이후에도 이러한 통제는 지속되었습니다. 억압과 동의의 양면전략을 구사하는 중심부 포드주의와는 달리 주변부 포드주의는 안정적인 노동력의 공급을 위해 동의보다는 억압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포드주의의 불완전성을 함의합니다. 즉, 미숙련 조립에서 벗어나 숙련생산을 주축으로 하는 주변부 포드주의가 수립되었지만 저임금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본원적 테일러화에 기초한 생산은 여전히 존속되었던 것입니다. 본원적 테일러화와 주변부 포드주의의 이러한 중첩은 포드주의의 수립 초기에 두드러졌으나 80년대에 들어와 포드주의가 정착되면서 점차 약화되었다.
V. 결론
한국의 자본축적은 축적전략의 산물도 아니고 세계경제의 구조적 결정에만 기인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본축적은 중심부 포드주의의 축적위기에 따라 국제분업의 재편과 선진자본의 국제화 과정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즉, 한국의 자본축적은 세계경제의 구조변동과 축적전략간 상호작용의 산물인 것입니다.
한국은 수출대체기와 집약적 축적기를 통해서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까지 10대 재벌의 매출액 합계는 GNP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중앙집권적인 리더십, 산업정책의 도구로서 국영금융부문의 이용, 행정부와 대기업간의 밀착은 산업화에 대한 집중적 통제를 초래했습니다.
급속한 자본축적을 성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변부 포드주의 체제는 포드주의 자체의 문제점과 주변부의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몇가지 문제점에 직면하였습니다. 첫째,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부터의 탈피는 중화학공업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요청하였으며 생산재의 수입비용을 증대시켰습니다. 한국은 생산재의 대외의존이 보다 심화되었는데 이것은 수출지향에 중점을 둔 데 따른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생산재산업이 거의 육성되지 못했으며 중화학공업이 수직적 국제분업체제에 편입되어 노동집약적인 조립.가공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화학공업부문에 대한 집중투자와 생산재의 수입은 수출증대의 기반을 조성하여 지속적인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둘째, 주변부 포드주의의 저급한 기술수준이 선진자본주의의 신기술과 심각한 경쟁에 처해짐에 따라 수출상품의 경쟁력이 약화되었습니다. 한국은 집약적 축적을 통해서 기술수준의 향상을 추구해 왔지만 아직까지 첨단기술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핵심부문을 장악하고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하청생산을 담당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같은 기술의존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첨단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요청됩니다.
셋째, 실질임금의 지속적인 상승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변부에 대한 경쟁력을 유지해야 되기때문에 임금상승은 여전히 억제되었습니다. 이와같이 낮은 임금수준은 구매력을 약화시켜 내수시장의 위축을 가져옴으로써 장기적으로 자본축적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부 포드주의는 중심부 포드주의와 마찬가지로 대량소비를 위해 내수시장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집약적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임금을 현실화시키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자본축적에 따른 신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성장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을 초래하여 체제를 동요시켰습니다. 즉, 주변부 포드주의의 수립은 민주화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고 신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역량을 증대시켜 정치적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통제를 지양하고 형평성 있는 분배를 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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