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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작전을 펴면서 한국에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거짓으로 알려졌다. 한국을 해방시킨 소련의 장군들은 소련의 주공 부대는 8월초에 웅기와 청진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강원도와 황해도를 통과하여 진군했고, 1945년 8월 26일에 평양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김일성과 그의 동료 유격대 간부들은 소련국제군 제88사단과 함께 1945년 9월 19일에 북한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개인적 배경과 일본 점령 말기의 한국과 만주의 사정을 감안할 때에 그의 항일 유격대 활동 경력은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렇다할 가정생활도 누리지 못하고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기초적인 후원도 받지 못한 젊은이로서, 그는 조국을 위해 투쟁하는 파괴적 공산단체에 가담하여 잘 해냈다. 비록 연군이 중국의 유격부대이기는 했으나 그는 중국과 한국의 공산주의의 목표를 위해 일본 사람들과 투쟁했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 가운데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자기의 부하들에게 한국 독립의 당위성과 공산주의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항일전신을 북돋아주었다. 남한에서는 가짜김일성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서, 김일성의 항일활동 경력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김일성의 거짓된 주장은 한국 공산주의와 한국 혁명정신의 전통을 그릇된 기초 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올바르지 못하다. 북한의 김일성 후계자들은 한국의 역사의 한 획인 만주 항일 운동에 있어서 김일성의 역할에 해가 되지 않도록 이의 재평가를 통해 북한의 김일성이 아닌 우리민족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운 김일성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일성의 개인적 배경과 일본 점령 말기의 한국과 만주의 사정을 감안할 때에 그의 항일 유격대 활동 경력은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렇다할 가정생활도 누리지 못하고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기초적인 후원도 받지 못한 젊은이로서, 그는 조국을 위해 투쟁하는 파괴적 공산단체에 가담하여 잘 해냈다. 비록 연군이 중국의 유격부대이기는 했으나 그는 중국과 한국의 공산주의의 목표를 위해 일본 사람들과 투쟁했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 가운데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자기의 부하들에게 한국 독립의 당위성과 공산주의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항일전신을 북돋아주었다. 남한에서는 가짜김일성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서, 김일성의 항일활동 경력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김일성의 거짓된 주장은 한국 공산주의와 한국 혁명정신의 전통을 그릇된 기초 위에 세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올바르지 못하다. 북한의 김일성 후계자들은 한국의 역사의 한 획인 만주 항일 운동에 있어서 김일성의 역할에 해가 되지 않도록 이의 재평가를 통해 북한의 김일성이 아닌 우리민족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운 김일성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