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심찬 사업가인 그가 유대인 학살의 상황에서 180도 다르게 변화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인간적 감성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그것이 독일인이든 누구든지 학살을 막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쉰들러리스트나 피아니스트에서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위해 취했던 행동이 잘 나타나 있지 않았고 (쉰들러를 제외한) 오히려 이들을 같은 인간으로 조차 취급하려 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일반 독일인들 모두를 너무 극단적으로만 몰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기념관에서는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는‘열방의 의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해 주는데 2003년 등록된 사람은 1만9,706명에 달하고 독일인도 376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모든 독일인이 유대인을 박해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유대인의 탈출을 돕거나 협력한 독일인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한 유대인 회고록이 존재하고 있는데‘뉴욕타임스 매거진’이 미국 독자들에게 소개한 이 회고록의 주인공은 콘라트 라테라는 유대인 지휘자다. 그는 유대인이 깡그리 몰살되던 2차대전 동안 독일의 수도, 나치스의 본거지인 베를린에서 숨어 살았다. 역사학자들은 2차 대전 당시 5000명에서 1만명 정도의 유대인이 베를린 곳곳을 숨어 다니며 도피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유대인은 그중 2000명 남짓 된다. 2000명이라는 숫자는 17만 명이라는 베를린 거주 유대인의 숫자에 비교하면 미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라테는 회고록을 통해 이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자신을 도왔던 50여명의 독일인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여러 번 위기를 맞지만 그 때마다 독일인들이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해주거나 오히려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라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유대인이 살아남는 데 50명의 독일인이 도움을 주었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10만명 이상의 베를린 시민이 유대인을 숨기거나 먹여주고 일자리를 구해 주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광기와 유혈로 얼룩진 게르만족 우월주의가 전 유럽을 휩쓰는 와중에서도 적잖은 수의 독일인들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당시 유대인을 숨겨주는 일은 운이 나쁘면 사형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중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많은 독일인들이 유대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모두가 그렇지만은 않았었다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이면이 영화에서는 잘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약간의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다.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영화의 기법과 영화의 상업성에 가려져 그것이 역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섣부른 판단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참고문헌
프레데리크들루슈,{새 유럽의 역사},까치글방(까치),2000
http://100.naver.com/
(저에게는 영화가 곧 참고문헌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참고문헌이 얼마 없네요.^^)
참고문헌
프레데리크들루슈,{새 유럽의 역사},까치글방(까치),2000
http://100.naver.com/
(저에게는 영화가 곧 참고문헌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참고문헌이 얼마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