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기생과 게이샤
2. 한국의 기생(妓生)
1) 기생이란
2) 기생의 역사
3) 기생의 생활
a. 화장
b. 피임법
c. 기녀복
d. 꾸밈- 머리모양과 쓰개, 장신구
4) 기생학교
a. 교방(敎坊)
b. 기생양성소
5) 해방 후 기생
6) 현대의 기생
7) 사진으로 보는 기생
3. 일본의 게이샤
1) 게이샤란
2) 게이샤의 역사
a.요시와라유곽(吉原)
3) 게이샤의 생활
a. 미인의 조건
b. 성병
3) 게이샤의 이모저모
4) 현재의 게이샤
- 게이샤는 전통예능가 이자 직능인의 하나
2. 한국의 기생(妓生)
1) 기생이란
2) 기생의 역사
3) 기생의 생활
a. 화장
b. 피임법
c. 기녀복
d. 꾸밈- 머리모양과 쓰개, 장신구
4) 기생학교
a. 교방(敎坊)
b. 기생양성소
5) 해방 후 기생
6) 현대의 기생
7) 사진으로 보는 기생
3. 일본의 게이샤
1) 게이샤란
2) 게이샤의 역사
a.요시와라유곽(吉原)
3) 게이샤의 생활
a. 미인의 조건
b. 성병
3) 게이샤의 이모저모
4) 현재의 게이샤
- 게이샤는 전통예능가 이자 직능인의 하나
본문내용
것은 당연하다는 당시의 풍조는 매독감염속도를 가속화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3) 게이샤의 이모저모
남자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직업인 게이샤. 이들의 화려한 기모노와 그로테스크한 화장은 한때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는 달리 대부분의 게이샤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다. 게이샤의 목표는 언제나 완벽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교토의 게이샤 촌은 예전에는 부근에 성곽과 묘지가 있어서 출입을 통제했지만 이제는 누구든 쉽게 이곳에 들어 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안내를 받지 않고서는 게이샤가 있는 레스토랑이나 찻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1751년 교토의 어느 유곽에서 처음 선을 보인 게이샤는 수백 년에 걸쳐 섹스뿐 아니라 정신적인 접대로 남자들을 사로잡았다. 원래 게이샤의 원조는 남성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 직업은 완전히 여성만의 아성이 되었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게이샤와 매춘녀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접대를 하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게이샤는 고객과 잠을 자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만약 같이 잔다고 해도 절대 돈을 받지 않는다. 게이샤의 고객은 일본 재계와 정계의 내놓으라 하는 실력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게이샤는 일본 남자들의 출세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제기적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성들은 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 이들은 대개 가난한 부모를 만나 남에게 팔리거나, 남편에게 버림받거나, 게이샤나 창녀의 딸로 태어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거나 스스로 살아있는 문화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것은 게이샤의 긍지이기도 하다. 게이샤는 철저하게 한남자의 기호품이고자 노력한다.
게이샤는 아름답지만 슬프게도 이름이 없다. 게이샤가 되면 개인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은 모조리 지워진다. 게이샤에서 게이란 일본어로 `예술로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한다. 일본 미학에서 예술이란 포장이다. 즉 일상생활의 모습을 감추고 철저히 의식화하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게이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소녀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일단 이 길로 들어서겠다고 마음먹었을 경우 옛날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주 낭만적인 상상을 하거나 일본전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입문하는 것이다. 골짜기처럼 굽이치는 아름다운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게이샤는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린 게이샤가 이런 머리를 몇 년하고 나면 정수리가 벗겨지게 된다. 게이샤는 신체적 고통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몇 시간씩 꼼짝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통스러워도 절대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 된다. 꿇어앉는 자세는 전통을 잘 지키는 일본 여성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게이샤는 잠을 잘 때에도 공들여 장식한 머리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하여 밀알을 잔뜩 채우고 천으로 겉을 감싼 높은 목침을 베고 자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4) 현재의 게이샤
이제 일본 남자들은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능력을 과시할 때 게이샤를 찾기 보다는 골프 클럽에 참가하거나 경주용 차를 모는 것을 더 즐긴다. 과거 명성을 떨쳤던 게이샤 촌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빛이 바래고 있다. 오락실, 영화관, 상점, 러브호텔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텔레비젼에서 매주 공공연히 공연되는 포르노와 현란한 바와 나이트클럽이 게이샤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약 8만명의 여성이 게이샤에 종사했지만, 이제는 약 1만명 정도의 게이샤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게이샤도 대개 온천에서 일하며 매춘과 술 접대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더 이상 게이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 않으며, 정통적인 게이샤를 존경하는 것 외에 그들의 선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의 수련과정은 지극히 짧고 형식적이며, 예술보다 돈을 더 추구한다. 700년에 걸친 게이샤의 전통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 게이샤의 예술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또한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제 다도(茶道)때 그릇의 올바른 위치나 반달 모양의 둥근 눈썹 등에 대해 세심한 정성을 쏟고, 더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전 생애를 바쳤던 정통 게이샤를 구식이라고 여긴다. 물론 아직도 나이 많은 소수의 남자들만은 전통적인 게이샤를 올바르게 평가할 줄 안다.
오늘날 게이샤의 평균연령은 40세 이상이다.
사진에서처럼 여든이 넘은 게이샤가 마츠리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오늘날 게이샤는 살아있는 유적과 같다. 거리에서 게이샤를 보는 것은 매우 드문일이다. 실제 대다수의 일본인은 한번도 게이샤를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세기전에 800,000명에 달하던 게이샤는 오늘날 700명에 불과하다.
분장중인 게이샤 게이샤의 상징인 하얀얼굴을 만들기 위해 과거에는 납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썼다. 이 때문에 많은 게이샤들이 어린나이에 사망했다.
정식으로 차려입은 게이샤.
목에 보이는 붉은 깃은 일본적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것 으로, 게이샤들은 일부러 이 깃이 아주 조금만 보이도록 여며입는다.
- 게이샤는 전통예능가 이자 직능인의 하나
네덜란드의 문화역사학자이 호이징어는 자신의 저서 '호모 르뎅스(노는 사람)'에서 '문화란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역설하였으며, 일본에서 '논다'라는 말은 곧 가무음곡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가무음곡의 중심은 바로 유녀와 게이샤였다. 일본의 유녀/게이샤는 단순한 술 접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전통예능가이며 소리나 춤이 중요한 직능인의 하나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예능인, 노(能: 일본고전가무극), 가부키(歌舞伎: 일본의 민중연극), 분라쿠(文樂: 전통인형극)등에 유녀와 게이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일본의 전통예능은 유녀/게이샤와 함께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으며, 메이지시대 이후의 문학작품 속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3) 게이샤의 이모저모
남자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직업인 게이샤. 이들의 화려한 기모노와 그로테스크한 화장은 한때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는 달리 대부분의 게이샤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다. 게이샤의 목표는 언제나 완벽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교토의 게이샤 촌은 예전에는 부근에 성곽과 묘지가 있어서 출입을 통제했지만 이제는 누구든 쉽게 이곳에 들어 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안내를 받지 않고서는 게이샤가 있는 레스토랑이나 찻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1751년 교토의 어느 유곽에서 처음 선을 보인 게이샤는 수백 년에 걸쳐 섹스뿐 아니라 정신적인 접대로 남자들을 사로잡았다. 원래 게이샤의 원조는 남성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 직업은 완전히 여성만의 아성이 되었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게이샤와 매춘녀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접대를 하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게이샤는 고객과 잠을 자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만약 같이 잔다고 해도 절대 돈을 받지 않는다. 게이샤의 고객은 일본 재계와 정계의 내놓으라 하는 실력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게이샤는 일본 남자들의 출세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제기적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성들은 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 이들은 대개 가난한 부모를 만나 남에게 팔리거나, 남편에게 버림받거나, 게이샤나 창녀의 딸로 태어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거나 스스로 살아있는 문화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것은 게이샤의 긍지이기도 하다. 게이샤는 철저하게 한남자의 기호품이고자 노력한다.
게이샤는 아름답지만 슬프게도 이름이 없다. 게이샤가 되면 개인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은 모조리 지워진다. 게이샤에서 게이란 일본어로 `예술로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한다. 일본 미학에서 예술이란 포장이다. 즉 일상생활의 모습을 감추고 철저히 의식화하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게이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소녀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일단 이 길로 들어서겠다고 마음먹었을 경우 옛날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주 낭만적인 상상을 하거나 일본전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입문하는 것이다. 골짜기처럼 굽이치는 아름다운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게이샤는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린 게이샤가 이런 머리를 몇 년하고 나면 정수리가 벗겨지게 된다. 게이샤는 신체적 고통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몇 시간씩 꼼짝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통스러워도 절대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 된다. 꿇어앉는 자세는 전통을 잘 지키는 일본 여성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게이샤는 잠을 잘 때에도 공들여 장식한 머리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하여 밀알을 잔뜩 채우고 천으로 겉을 감싼 높은 목침을 베고 자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4) 현재의 게이샤
이제 일본 남자들은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능력을 과시할 때 게이샤를 찾기 보다는 골프 클럽에 참가하거나 경주용 차를 모는 것을 더 즐긴다. 과거 명성을 떨쳤던 게이샤 촌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빛이 바래고 있다. 오락실, 영화관, 상점, 러브호텔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텔레비젼에서 매주 공공연히 공연되는 포르노와 현란한 바와 나이트클럽이 게이샤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약 8만명의 여성이 게이샤에 종사했지만, 이제는 약 1만명 정도의 게이샤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게이샤도 대개 온천에서 일하며 매춘과 술 접대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더 이상 게이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 않으며, 정통적인 게이샤를 존경하는 것 외에 그들의 선배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의 수련과정은 지극히 짧고 형식적이며, 예술보다 돈을 더 추구한다. 700년에 걸친 게이샤의 전통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 게이샤의 예술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또한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제 다도(茶道)때 그릇의 올바른 위치나 반달 모양의 둥근 눈썹 등에 대해 세심한 정성을 쏟고, 더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전 생애를 바쳤던 정통 게이샤를 구식이라고 여긴다. 물론 아직도 나이 많은 소수의 남자들만은 전통적인 게이샤를 올바르게 평가할 줄 안다.
오늘날 게이샤의 평균연령은 40세 이상이다.
사진에서처럼 여든이 넘은 게이샤가 마츠리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오늘날 게이샤는 살아있는 유적과 같다. 거리에서 게이샤를 보는 것은 매우 드문일이다. 실제 대다수의 일본인은 한번도 게이샤를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세기전에 800,000명에 달하던 게이샤는 오늘날 700명에 불과하다.
분장중인 게이샤 게이샤의 상징인 하얀얼굴을 만들기 위해 과거에는 납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썼다. 이 때문에 많은 게이샤들이 어린나이에 사망했다.
정식으로 차려입은 게이샤.
목에 보이는 붉은 깃은 일본적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것 으로, 게이샤들은 일부러 이 깃이 아주 조금만 보이도록 여며입는다.
- 게이샤는 전통예능가 이자 직능인의 하나
네덜란드의 문화역사학자이 호이징어는 자신의 저서 '호모 르뎅스(노는 사람)'에서 '문화란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역설하였으며, 일본에서 '논다'라는 말은 곧 가무음곡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가무음곡의 중심은 바로 유녀와 게이샤였다. 일본의 유녀/게이샤는 단순한 술 접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전통예능가이며 소리나 춤이 중요한 직능인의 하나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예능인, 노(能: 일본고전가무극), 가부키(歌舞伎: 일본의 민중연극), 분라쿠(文樂: 전통인형극)등에 유녀와 게이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일본의 전통예능은 유녀/게이샤와 함께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으며, 메이지시대 이후의 문학작품 속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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