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의 역사와 문화적의미를 통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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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생의 역사와 문화적의미를 통한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기원의 역사
2.1 정의와 기원
2.2 기생의 역사

3. 기생의 신분적 특성
3.1 지위
3.2 직업 특성

4. 문화적 존재로서 기생의 의미
4.1 문인으로서의 기생
4.2 문학의 모티브로서의 기생

5.기생의 기능
5.1 기본적인 기능
5.2 사회적인 기능

6. 기생과 게이샤
6.1 기생과 게이샤의 비교
6.2 기생과 게이샤의 현재와 미래

7. 결론

본문내용

게이샤의 비교
본장에서는 기생과 게이샤의 비교를 해보고자 한다.
〈표5〉
구분
명칭
정의
기원
신분
기능
관리기관
교육기관
자격 연령
기 생
●기녀
●기생
잔치 등에서 가무 등으로 흥을 돕는 일을 업으로 삼던 여자
●원화설
●양수척설
천민
●가무담당
●성적접대
●연주
국가관청
●교방
●퇴기의 집
●기생학교(근대)
30세 이전의 여성
게이샤
●게이샤
●게이고
●게이기
가무, 연주 등으로 연석에 흥을 돋는 일을 업으로 삼던 여자
●무녀설 일본민속학의 창시자 야나기다 쿠니오가 제창함. 신에게 지내는 제사의 밤에 무녀가 신성한 존재로서 자신의 성을 개방하여 이것이 유녀의 기원이라는 설.
●외래설 조선의 도래인(渡來人)인 삼한의 귀화인과 표박민족 백정(白丁)의 여자가 성적 접대를 하게 된 것이 유녀의 기원이라는 설.
평민
●가무
●연주
각 지방에 설치된 권번
오키야 (置屋) 게이샤가 소속하는 곳으로 은퇴한 게이샤가 운영했으며 게이샤들의 숙소, 교육기관과 현대의 프로덕션의 역할까지 겸한 게이샤전통의 기관이라고 할 수 있음.
80세까지도 활동
(전성기는 20대)
표5와 같이 기생과 게이샤는 거의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차이점 또한 엄연히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게이샤의 모체는 한국의 기생과 같은 기능을 했던 유녀 연회에서 가무를 담당하거나, 영리를 목적으로 성적 접대를 업으로 삼던 여자.

그 시초이며(11세기) 1688~1704년(에도시대)에 유녀의 예술적 기능을 게이샤가 가 가지게 되어 반대로 유녀의 성적기능은 강화되었다.
그래서 게이샤의 성적기능은 시초부터 가지지 않게 되었다.
또한 주목할 점은 자격연령인데 기생의 현역으로서의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게이샤의 그것은 거의 생전까지 활동한다는 점인데, 이는 현대 일본의 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게이샤 세계에서 늙은 게이샤라 해도 경험과 덕망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6.2 기생과 게이샤의 현재와 미래
기생은 조선 말기부터 꽃을 피운 속악의 발전에 힘입어 예능적인 기능 또한
가장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게 되지만 한일합방이라는 국망 이후에 일본식 공창제도가 도입되어 일본인이나 송병준 친일파, 민족반역자 함경남도 출신.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 통역으로 귀국하고 유신회를 조직하여 애국단체인 보안회에 대항, 그 뒤 일진회를 만들어 일본의 주구로 활동함. 1907년 이완용 내각에서 농상공부대신, 내부대신을 지내며 일진화합성명서 등을 제출하며 매국활동을 벌인 대표적인 친일파.
같은 거물친일파들이 뒤를 봐주는 권번(券番)조직들이 유곽의 주인이 된 뒤 고급문화의 주도자였던 기생은 성을 통한 하나의 돈벌이 기계로 전락하며 시작, 가창, 가무의 고급기생문화가 사라지고 여성의 몸이 자본의 확대 재생산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성매매 풍토의 변화야 말로 한국전통사와 근대사 사이의 단절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생의 오늘의 모습은 인권을 무시한 봉건적 폐습은 존속한 채 전통적 기생의 고급문화와 기생들은 완전히 말살되어지고, 인간의 몸과 마음을 도구화한 근대적 유곽의 모습만 존재하게 된 것으로 한국기생의 명맥은 완전히 끊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게이샤는 19세기 말부터 서양미술사에 우키요에(浮世繪) 에도시대말에 성행한 유녀 등을 다룬 풍속화.
를 중심으로 작게나마 영향을 끼치며 서양과는 다른 동양의 여성상을 보여주고 오페라 푸치니의 ‘나비부인’
에까지 게이샤가 등장되며 일본의 문화적 상징중 하나로서 그 모습을 자랑하게 된다.
더불어 일본에서도 시대를 거치며 게이샤에 대한 인식이 게이샤학원이 생길 정도로 바뀌어 지금도 게이샤를 소재로 한 연극이나 드라마 등이 발표되고 있으며 유명배우들이 게이샤 역 을 맡은 경우에는 더욱 화제가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현재의 모습은 게이샤가 되기 위한 혹독한 과정과 현대여성으로서 참을 수 없는 변하지 않는 게이샤의 삶의 모습은 지금 현재의 게이샤를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더욱이 게이샤의 평균 나이가 40대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대부분의 50대가 지난 노인들만이 일본게이샤의 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현대일본에서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과 여성들의 지위 상승은 미래에도 게이샤의 인구증가를 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한국사회에 기생이 부활할 수 없듯이 말이다.
Ⅵ. 결론
본고에서는 기생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역사, 신분적, 직업적, 기능적, 특성을 살펴보고, 기생의 한국 전통문화로서 존재가치를 주장하였다.
본론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기생은 천민에 속하는 여성이며 한편 전통 문화의 계승자이고, 문학, 예술의 재능이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양반을 상대로 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재능을 제공하는 자존심이 있는 여성들이었고 부당한 신분사회, 그리고 남성의 종속 하에 있어서, 능력을 가지고 저항하고, 식민지시대에는 그 누구보다도 앞서서 일제에 항의했다. 몸을 판다고 왜곡된 비난을 받았어도 마음을 판 양반들보다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사상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그동안 필자는 기생에 대한 연구를 한국문화에 대한 애착으로서 시작을 하였지만 너무 쉽게 접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기생의 대한 연구서적과 자료가 적은 것도 문제였지만, 필자의 한국어능력의 한계로 기생의 문학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를 더 깊이 있게 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앞으로 더욱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면 보다 깊은 연구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외래의 침략으로 인해 그 문화와 명맥이 완전히 단절되어 이제 와서 다시 기생문화와 제도를 부활시킬 수 는 없지만, 일본에서 게이샤가 인구는 줄었어도 현재에도 꾸준히 계승되어 일본의 전통문화로서 존중을 받듯이, 지금부터라도 감추지 말고 기생을 한국의 여성사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체의 자랑스러운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재발견하고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이능화.1992.『조선해어화사』.서울: 동문선.
조광국.2004.『한국문화와 기녀』.서울: 월인.
가와무라 마나토.2002『말하는 꽃 기생』.서울: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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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7.07.22
  • 저작시기2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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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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