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신여성의 의의
2. 신여성의 스타일
3. 신여성의 연애 그리고 결혼과 이혼
4. 신여성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
2. 신여성의 스타일
3. 신여성의 연애 그리고 결혼과 이혼
4. 신여성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
본문내용
알뜰한 그는 살림살이도 아주 알뜰하게 하여 식모나 행랑어멈도 두지 않고 자가의 손으로 조석과 빨래를 다 하며 그 동안에 낳은 아드님도 잘 자라서 벌써 네 살이나 되고 처녀시대에 잘 앓던 몸도 아주 건강하다 하며 가정이 깨가 쏟아지도록 재미있게 생활을 한다고 한다.” (<색상자>, 《신여성》 1931년 10월호)
창간에서부터 종간에 이르기까지 ‘직업부인’과 관련된 이슈에 관심을 놓지 않았던 《신여성》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직업부인들의 일터를 방문해 그녀들의 사회적 성과를 일반에 공개하는 기사를 찾을 길은 없다.
4) 예정된 실패, 동정의 시선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모델들은 실재가 아닌 이상이다. 주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재능과 능력만으로 가사 노동과 사회적 노동을 조화롭게 일구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직업여성들을 부추기는 것은 결코 그녀들의 삶에 위로도 용기도 되지 못한다. 그녀들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고 이 실패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반응은 대체로 ‘동정’으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산산이 찢어져 죽은 네 모양! / 낡은 헝겊 같이 헤져 있는 네 시체! / 한 조각씩 갈라진 네 팔 다리 머리 젖가슴! / 오오 그리고 / 아스팔트 위에 중글중글한 x줄기! … 생명을 맡겨 놓은 우리들의 노동 / 너의 實例를 그대로 보여준 / 오오! 너는 첫째의 희생자이었다 … 오늘은 너의 장의날 / 네 사내도 다른 동무와 같이 이 장례식에 참례하였다 / 타락간부들이 준비한 이 즐비한 장례식!” (백철, “이제 五分―버스 여종업원 자매에게, 《신여성》 1932년 10월호)
“女人 哀歌(에레지-)”라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는 《신여성》 1932년 11월호에는 백화점 점원이나 카페 여급과 같은 직업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깊은 고통과 시름에 가득 차 있는지 묘사돼 있다. 백화점 금전 출납계 여직원 인애에게 도둑질을 해오라고 하지만 이를 거부하자 동생을 색마 대부호에게 넘긴 오빠 이야기, 몸을 판돈으로 사랑하는 남성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하는 카페 여급의 이야기, 그리움에 사무쳐 결국 오빠를 찾아 만주로 떠나는 버스 걸의 이야기 등은 그야말로 직업여성 수난사라 이름붙일 만한 종류의 글들이다. 《신여성》 1933년 6월호에 실린 정오성의 “여직공 안아지의 애화―그가 공장에 쓰러져 죽기까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매국 연초공장에서 27년간 근속하던 46세의 부녀가장 안아지의 작업장내에서의 돌연사를 다룬 이 글은 여성노동자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듯하지만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단순한 애사로 취급한다는 점에서는 앞의 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잔뜩 이상화시킨 후 그것에 도달하지 못한 여성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어루만지는 것. 여성의 취업을 고무·독려하는 장문의 논설류가 휩쓸고 지난 후 《신여성》에는 이처럼 가정과 일터에서 동시에 버림받은 가련한 여인상이 휴지조각처럼 널려있었다.
*출처 : (1)http://newwoman.culturecontent.com/
(2)http://www.ildaro.com/
(3)서울대학교 여성학 논문
창간에서부터 종간에 이르기까지 ‘직업부인’과 관련된 이슈에 관심을 놓지 않았던 《신여성》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직업부인들의 일터를 방문해 그녀들의 사회적 성과를 일반에 공개하는 기사를 찾을 길은 없다.
4) 예정된 실패, 동정의 시선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모델들은 실재가 아닌 이상이다. 주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재능과 능력만으로 가사 노동과 사회적 노동을 조화롭게 일구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직업여성들을 부추기는 것은 결코 그녀들의 삶에 위로도 용기도 되지 못한다. 그녀들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고 이 실패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반응은 대체로 ‘동정’으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산산이 찢어져 죽은 네 모양! / 낡은 헝겊 같이 헤져 있는 네 시체! / 한 조각씩 갈라진 네 팔 다리 머리 젖가슴! / 오오 그리고 / 아스팔트 위에 중글중글한 x줄기! … 생명을 맡겨 놓은 우리들의 노동 / 너의 實例를 그대로 보여준 / 오오! 너는 첫째의 희생자이었다 … 오늘은 너의 장의날 / 네 사내도 다른 동무와 같이 이 장례식에 참례하였다 / 타락간부들이 준비한 이 즐비한 장례식!” (백철, “이제 五分―버스 여종업원 자매에게, 《신여성》 1932년 10월호)
“女人 哀歌(에레지-)”라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는 《신여성》 1932년 11월호에는 백화점 점원이나 카페 여급과 같은 직업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깊은 고통과 시름에 가득 차 있는지 묘사돼 있다. 백화점 금전 출납계 여직원 인애에게 도둑질을 해오라고 하지만 이를 거부하자 동생을 색마 대부호에게 넘긴 오빠 이야기, 몸을 판돈으로 사랑하는 남성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하는 카페 여급의 이야기, 그리움에 사무쳐 결국 오빠를 찾아 만주로 떠나는 버스 걸의 이야기 등은 그야말로 직업여성 수난사라 이름붙일 만한 종류의 글들이다. 《신여성》 1933년 6월호에 실린 정오성의 “여직공 안아지의 애화―그가 공장에 쓰러져 죽기까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매국 연초공장에서 27년간 근속하던 46세의 부녀가장 안아지의 작업장내에서의 돌연사를 다룬 이 글은 여성노동자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듯하지만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단순한 애사로 취급한다는 점에서는 앞의 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잔뜩 이상화시킨 후 그것에 도달하지 못한 여성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어루만지는 것. 여성의 취업을 고무·독려하는 장문의 논설류가 휩쓸고 지난 후 《신여성》에는 이처럼 가정과 일터에서 동시에 버림받은 가련한 여인상이 휴지조각처럼 널려있었다.
*출처 : (1)http://newwoman.culturecontent.com/
(2)http://www.ildaro.com/
(3)서울대학교 여성학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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