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조선] 조공책봉제도와 그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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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 조선] 조공책봉제도와 그 실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조공책봉관계의 개념
(1) 조공책봉관계의 유래
(2) 조공책봉관계의 정의
(3) 조공책봉관계의 실제

3. 개화기의 조공책봉관계 - 근대 국제법과 전통관계의 혼재
(1) 아시아의 국제법에의 편입 - 만국공법의 인식과 도입
(2) 개화기에 있어서 조공책봉관계의 의미
(3) 조공책봉관계의 변질
(4) 조공관계의 파기

4. 종속국, 부용국, 속국, 속방
(1) 종속국의 정의
(2) 소결 - 종속국과 속국에 관한 다양한 관점에 대한 생각

5. 결론

본문내용

있는 나라.(=속방)’ 이다. 네이버 사전
역사학자들이 보는 속국의 의미를 보자.
전해종 교수님의 의견을 정리하면, 속국(혹은 번국 藩國)이라 함은, 종주국의 책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종주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종주국과 조공 및 회사(回賜, 조공의 반대급부)를 교환하며, 제3국의 침략이 있을 때에 서로 파병을 해주기로 한 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의무 외에도, 속국은 종주국의 연호(年號)를 사용할 의무도 부담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종주국과 속국은 여러 가지 많은 권리의무를 갖고 있었다. 한중관계사 연구, 전해종, 일조각, 1974 참고.
서론에서도 보았듯이 이 의견은 조공책봉관계를 정치적 의미로 파악한 견해이다. 이러한 정의는 종속국과 속국의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와는 다른 최근의 의견을 살펴보자면,
속국의 등장은 이미 秦대에 나타나지만 屬國都尉는 前漢 武帝期에 처음 설치되었다. --중략-- 후한대에는 속국이 종종 현으로 분화되는 경우가 있어 속국도위가 일률적으로 두어지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속국도위는 후한대 이후에는 설치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속국체제가 갖고 있는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속국은 중국에 비해 사회발전 단계가 낮은 지역민들이 집단적인 귀부의 형태로 중국에 예속됨으로써 성립된다. 후한이 존속하였던 서기 1~3세기 동안 중국의 주변지역에서도 성숙한 고대국가가 출현하게 됨으로써 이후 속국으로 편입되는 지역은 사실상 사라졌다. 고대 동아시아 책봉조공체제의 원형과 변용, 한중 외교관계와 조공책봉, 방향숙, 44~45면.
고 한다. 다소 속국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 정의를 된 것 같으나 속국이라는 용어를 전한시대의 속국도위체제 안에서 사용함으로서 개념자체에 대한 정의가 보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사 과정에서 종속국에 대한 여부가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에 단순한 개념의 정의가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적 의미에서 종속국은 속국, 속방과의 구별이 전혀 없다. 그리고 정의가 너무 추상적이다.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나라는 속국이다. 과연 여기서 지배는 어떤 방면의, 어느 정도의 범위의 지배를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국제법에서 문제되는 소위 ‘바나나 리퍼블릭’ banana republic. 바나나 공화국 《과일 수출로 유지되는 중남미의 소국》
이나 ‘투발루’ tuvalu. 남태평양 적도 부근의 소국인 투발루는 국가도메인인 .tv를 외국기업에 판 것이 국가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미소국가이다.
같은 경제적 예속국도 속국이란 말인가. 이들은 종래 국가로 취급되어 왔다.
그리고 전해종 교수님은 국제법적인 종주국 개념과는 관계없이 종주국-종속국 관계를 새로이 정의하는 결과처럼 보인다.
적어도 조공책봉관계에 관한 논쟁에서 속국의 정의는 세 번째 의견처럼 보다 역사적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속국이 구체적인 개념의 정의가 불분명하므로 여러 혼동에서 비롯한 논쟁이 일어난다고 생각된다.
5. 결론
중심적 논의로 한중관계에 있어 최근 동북공정으로 인해 조공책봉관계의 평가가 이슈가 되었으므로 조공책봉제도의 실제와 그것에 관한 종속국, 부용지국, 속국, 속방 등의 용어의 의미에 대한 혼란과 시각 차이를 조사해보고자 했다.
상술했듯이 전통적인 조공책봉관계는 근대적 식민지관계와는 다른 것이었다. 특히, 고대로부터 조선 전에 이르기까지의 관계의 성격은 권력역학관계에서의 실리적 외교 방편으로 해석되며, 조선 전기에 지배층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조공책봉제도는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서로 예의를 차리는 상호예대, 서로 예로서 대하는 관계였으며, 세종의 시대를 중심으로 외교에서 제한이 없었음을 주로 실록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후 청대에 와서는 성리학에 입각한 지배층으로서는 중국과의 문화적 일체감을 가질 수 없었으며, 청 초기에는 청과 명과의 대립으로 권력적인 억압을 수반하는 조공책봉관계로 바뀌었다. 명이 멸망한 후에는 다시 이전의 관계로 회복하였다. 개화기 때의 조공책봉관계에 대한 해석은 매우 편의적으로 이루어졌다. 즉, 전통적 조공책봉관계에 대해 청, 조선, 일본 간에 상이한 해석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조공책봉관계의 해석은 이른바 ‘속방자주논란’으로 전개되었다.
생각건대 개화기를 포함한 한국과 중국의 조공책봉관계는 종속관계가 아니었다. 조공책봉제도의 파기 전까지 한국의 내치와 외교는 원칙적으로 자주였기 때문이다.
조공책봉제도는 그 시대의 역사적 맥락에 입각하여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지금의 시각을 무리하게 대입시켜서는 안 된다. 근대적 국제관계 하에서의 ‘속국’ 개념을 그대로 조공책봉관계에서의 ‘속국’ 과 직결시켜 이해하는 것은 그 예이다. 고대 한중관계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노태돈, 한국고대사연구 32 9면
사대정책은 그 자체로서는 선도 악도 아니다. 생각건대, 속국에 관한 논의는 용어의 명확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데 기인한 것 같다는 생각도 다루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중국과 한국이 조공책봉관계에 있을 때, ‘한국은 조공국 이었다’는 논리만 펴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의 논의를 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생각된다. 덧붙여 조공책봉관계에 대한 풍부한 연구로 중국의 역사왜곡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이한우
세종대왕의 정치철학, 조남욱
이예의 사명 - “나는 조선의 통신사로 소이다.”, 이명훈
건국의 정치 - 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김영수
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이덕주
<참고논문>
고대 동아시아 책봉조공체제의 원형과 변용, 방향숙
고려와 송의 외교관계, 신채식
고려와 요, 금의 외교관계, 이석현
명, 청 교체와 한중관계, 민경준
조공질서의 붕괴와 청, 조(대한제국)관계의 변화,1895~1910, 이영옥
중화사상과 근대 동북아국제관계의 재편, 이정남
세종 대의 국방과 외교, 차문섭
조선과 청의 조공관계 연구, 최동희
한 일 양국의 만국공법 수용, 인식, 유재곤
19세기 후반 조선사회와 전통적 조공관계의 성격, 구선희
탈북자 문제와 한중관계, 이동률
고대 한중관계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노태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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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06
  • 저작시기2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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