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상상의 공동체 내용 요약
1장. 서장
2장. 문화적 기원
3장. 민족의식의 기원
4장. 크리올의 선구자들
5장. 구언어, 신모형
6장. 관주도 민족주의
7장. 마지막 물결
8장. 애국심과 민족주의
9장. 역사의 천사
10장 센서스, 지도, 박물관
11장 기억과 망각
Ⅱ. ‘상상의 공동체’가 현대 우리나라 민족주의에 주는 시사점
1장. 서장
2장. 문화적 기원
3장. 민족의식의 기원
4장. 크리올의 선구자들
5장. 구언어, 신모형
6장. 관주도 민족주의
7장. 마지막 물결
8장. 애국심과 민족주의
9장. 역사의 천사
10장 센서스, 지도, 박물관
11장 기억과 망각
Ⅱ. ‘상상의 공동체’가 현대 우리나라 민족주의에 주는 시사점
본문내용
에 의해 기존의 지배층(주로 친일을 한 사람들)이 그대로 우리 사회의 지배층 지위를 유지함으로써 그들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되었다. 또한 단일 혈통 민족공동체에 대한 원초적인 충성심은 종종 민족의 집단적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적 성장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당연히 희생되어도 되는 것, 오히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이 바로 애국심이라는 논리로 많은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가 희생되었다. 예를 들어 5.16과 함께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민족중흥’이라는 말로 민족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하고 경제 성장을 통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는 데서 정권의 정통성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통한 ‘민족중흥’의 혜택이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지각하고 있는 사실이다. 다수의 산업전자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때 소수의 재벌과 부유층만이 경제적 성장의 혜택을 누렸던 것이다. 부의 편중 현상에 대해 “소유자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한국 사람이 소유하고 있으면 결국 한국의 것이고 우리 국민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니 좋지 않으냐”는 식의 지배계층의 집단주의적 담론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앤더슨이 11장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 과거의 역사와 사회 계층 간의 불평등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 채 즉, 망각하고 그 위에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민족주의’라는 개념만을 기억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이러한 역사적 기원과 형성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가 지배계층의 지위 유지와 정권의 정당성 부여라는 측면에서 악용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게 되다보니 현재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로 인해 여러 사회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 중하나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착취와 멸시이다.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 민족 국가를 상상하다 보니 외국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돈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경우가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용주들이 임금을 제 때 주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고는 무시 한 체 단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착취하는 행동은 단일 혈통의 신성성 혹은 상징성을 고집하는 민족주의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요즘 뜨거운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나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독도 문제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의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논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국가 간의 첨해한 이해갈등이 깔려있다. 먼저 동북공정의 경우 중국은 고구려발해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그 근거를 찾기 위해 천문학적인 단위의 지원과 시간을 투자해 이를 증명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노력에는 많은 소수민족국가의 통합체인 중국이 그 역사적 정체성을 찾고 지역 내 소수민족을 잘 통합함으로써 급격한 변화를 격고 있는 중국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의 경우 이 두 문제에 대한 사건이 방송과 같은 매체를 통해 양국에 전해졌을 때 두 나라 국민들은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인터넷 상에서 뜨겁게 공방전을 펼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이들이 이 문제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갖고 이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 이러한 상황의 이유 또한 민족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각각의 공동체는 두 공동체 사이의 의견충돌이나 이해관계가 얽혔을 경우 서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옹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한국이라는 일본이라는 공동체가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이어지는 나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운명을 같이 하는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세계인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월드컵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이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은 단순히 선수들이나 축구 관계자들의 성장된 능력이나 기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라는 단적인 예를 통해서 거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둠으로써 우리 민족의 저력을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우리나라의 온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능력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나=축구대표팀=민족’이라는 일련의 도식이 아무런 무리 없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시처럼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는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 곧곧에서 표현되고 있다. 민족주의가 근대 사회의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 자리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식민지의 경험과 미군정기, 그리고 그 잔재들이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서 군부 정권의 권력 정당화 작업으로 맞물리는 일련의 역사적 과정이 그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각 시기마다 민족주의라고 정의하는 개념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월드컵 열기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민족주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이 당연시되고 정당화되고 있는 상황을 의심해 보아야 하며 민족주의적인 행동이란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지금 우리에게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이러한 역사적 기원과 형성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가 지배계층의 지위 유지와 정권의 정당성 부여라는 측면에서 악용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에 이르게 되다보니 현재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로 인해 여러 사회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 중하나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착취와 멸시이다.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 민족 국가를 상상하다 보니 외국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돈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경우가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용주들이 임금을 제 때 주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고는 무시 한 체 단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착취하는 행동은 단일 혈통의 신성성 혹은 상징성을 고집하는 민족주의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요즘 뜨거운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나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독도 문제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의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논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국가 간의 첨해한 이해갈등이 깔려있다. 먼저 동북공정의 경우 중국은 고구려발해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그 근거를 찾기 위해 천문학적인 단위의 지원과 시간을 투자해 이를 증명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노력에는 많은 소수민족국가의 통합체인 중국이 그 역사적 정체성을 찾고 지역 내 소수민족을 잘 통합함으로써 급격한 변화를 격고 있는 중국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의 경우 이 두 문제에 대한 사건이 방송과 같은 매체를 통해 양국에 전해졌을 때 두 나라 국민들은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인터넷 상에서 뜨겁게 공방전을 펼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이들이 이 문제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갖고 이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 이러한 상황의 이유 또한 민족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각각의 공동체는 두 공동체 사이의 의견충돌이나 이해관계가 얽혔을 경우 서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옹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한국이라는 일본이라는 공동체가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이어지는 나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운명을 같이 하는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세계인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월드컵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이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은 단순히 선수들이나 축구 관계자들의 성장된 능력이나 기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라는 단적인 예를 통해서 거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둠으로써 우리 민족의 저력을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우리나라의 온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능력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나=축구대표팀=민족’이라는 일련의 도식이 아무런 무리 없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시처럼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는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 곧곧에서 표현되고 있다. 민족주의가 근대 사회의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 자리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식민지의 경험과 미군정기, 그리고 그 잔재들이 청산되지 못한 상황에서 군부 정권의 권력 정당화 작업으로 맞물리는 일련의 역사적 과정이 그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각 시기마다 민족주의라고 정의하는 개념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월드컵 열기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민족주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이 당연시되고 정당화되고 있는 상황을 의심해 보아야 하며 민족주의적인 행동이란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지금 우리에게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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