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즘과 문화로서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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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디즘과 문화로서 나아갈 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사디즘의 정의

Ⅲ. 사드의 작품으로 본 서양의 사디즘

Ⅳ. 영화, 문학을 통하여 본 일본의 사디즘

Ⅴ. 영화, 인터넷으로 본 한국의 사디즘

Ⅵ. 현실과 대중문화로서의 사디즘

Ⅶ. 결 론

♢. 후 기

본문내용

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전체적인 폭력은 사디즘이라 볼 수 없다. 그래서 위에서 논의 할 때도 폭력적 요소는 거의 배제 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욕구 불만에 대하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항상 욕구 불만에 빠져 있다. 표출의 자유를 사회라는 단단한 벽이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성행위라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따른 전통성과 그것이 갖고 있는 권위에 의해 나쁜 것, 안 좋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육체적 교감의 발로인 섹스는 천대시 되고 음극화 되어지고 있는 것 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그런 것 같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항시 욕구 불만에 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늘진 곳으로 숨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섹스 산업이라는 것은 음지에서 깊은 뿌리를 두고 고도의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 욕구불만으로 인해 성범죄나 살인 기타 사건사고들이 무수히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음으로 들어간 욕구의 분출은 그렇게 밖에 해소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을 숨기며 잘들 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화냄과 짜증은 그것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개인적인 성향으로 흐르는 것 자체도 이것으로 해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욕구에 대한 해소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음지에서, 가려진 곳에서 해소 하는 방법도 있을 테지만 그것보다는 오픈 된 장소로 끄집어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면 조금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을까. 암튼 욕구 불만으로 인간의 범죄는 이루어진다 생각한다. 그러기에 올바른 분출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 영화 ‘퀼스’에선 글을 쓰며 자신의 욕구를 방출하는 사디 후작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빼앗겼을 때 그는 죽음을 갖게 된다. 그렇듯 사디 후작은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그의 글로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 것이었다. 직접 경험이 아닌 상상으로 욕구를 이겨내는 것이다. 그 말고도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억압된 욕구를 그것으로 풀고 있다. 이렇듯 사디 후작의 사디즘이란 실천에 의한 육체의 자해가 아니라 상상에 의한 자해인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정상적인 정신을 끌어내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쾌락추구.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디즘에 의한 이상 성행위 자체는 그 쾌락의 새로운 부분을 찾는 인류의 고행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집착
쾌락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모든 것에 무감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인 성기의 접촉만으로는 쾌락을 추구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좀 더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것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SM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아니 그것이 정신병의 한 종류일지도 모르겠지만 극히 정상적인 사람들도 그것을 보며 흥분을 하고 충동을 느끼니 어느 정도는 인간이 가진 정신의 일부분으로 보는 것이 좋을듯하다. 암튼 쾌락의 집착은 그런 병적일 수 있는 행위로 옮아 갈 수 있다. 그러기에 쾌락의 집착이 아닌 사랑의 요소로 그것을 행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사랑이 선행되고 섹스의 쾌락이 이뤄져야 좀 더 양질의 쾌락을 얻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1.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에 자신을 파멸하며 이상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기애의 탈출. 변태적 쾌락. 자기 이고 싶지 않은 자기 탈출의 마지막 발로. SM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일생을 갇혀만 살아왔기에 벗어나고 싶어 하는 자유적 쾌락의 지적인 단면. 인간은 그러기에 항시 욕구 불만에 싸여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가슴 안에 갇혀 사는 우매한 짐승. 전통적 권위나 사회적 틀 안에 갇혀 헛된 상상에 매여 산다. 그 욕망은 그렇기에 폭력과 대리 만족으로 풀어내려 하는 것이다. 너무도 자유로운 세상 같지만 이 세상은 닫혀 있는 세상이다. 그 잠시의 희열은 순간적인 것에 불과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하고 흥분하고 있다.
2. 진정한 삶의 평화를 찾는 길은, 인류의 영원한 공존을 위한 길은 자연스런 쾌락의 표출이다. 자유로부터의 탈출. 그것의 인식마저 갖지 않은 세계로의 탈출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자유로부터의 자유는 인간에겐 너무도 크나큰 인고이다.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이란 과연 몇이나 된단 말인가. 그래서 인간은 새로운 발로를 찾아 여러 가지 욕망의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그것의 한 단면이 일탈적 성행위, 자학적 성행위, 극한의 고통 속 쾌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욕구 불만의 해결책을 위한 틀 안의 일탈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도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우리는 그런 일탈적 행위를 단순히 변태적 행위로만 보려한다. 우리 사회의 눈으로만 보면 분명 그것은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치부해 버리고 고통스러운 일생을 참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듯 하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고 균형적인 사람이라도 그 사람안의 욕망이란 언제 폭발 할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해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언젠가 더 큰 일격을 가해 인간의 파멸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충격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결국 해소의 방편을 찾아야 된다는 말인데 그것을 인간은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으로 해결 하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행위가 아닌 영상물이나 문학 기타 여러 사회적 전반의 장르 안에서 그것을 해소 하고 분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고 멀리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어떻게든 인간 삶의 안식을 가져다주는 요소로 발전 시켜 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전통적 권위에 억압된 우리 사회에서는 극히 힘든 부분이겠지만 이제는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인식과 사고를 한 단계 발전시켜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홍수 속에서 과연 그것을 얼마만큼 받아들여내느냐는 인간의 존립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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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17
  • 저작시기2007.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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