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산 고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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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구, 경산 고대 관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머리말
1.연구 목적과 연구 방법
1) 연구 목적 및 방법 2) 연구사 검토

II사료로 본 대구, 경산 고대 관계
1.문헌자료에서의 대구와 경산관계
1) 문헌자료에서의 대구 2) 문헌자료에서의 경산
3) 문헌자료를 통한 두 도시의 규모와 관계
2. 대구, 경산 지석묘를 통해 본 두 도시의 고대 관계
3. 고분, 성곽 출토 유물을 통한 두 도시의 고대 관계


III 현대 두 도시의 발전 방향

IIII결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압독국이라는 경로를 통하지 않은 세력이었기 때문에 남았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측도 해본다.
어쨌든 고대사회에 있어서만큼은 경산의 과거인 압독국의 달구벌국보다는 우세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구벌국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사로국의 병합 이후이며 그것은 사로국의 영향권 내에서 달구벌국의 입지가 상당히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주목받기 시작한 달구벌국의 경우에는 지방 세력의 통폐합이 이뤄졌을 것이고 이에 중앙집권화 된 경주와 지방세력 간의 긴밀한 협조가 이뤄져 교통의 요지로 인한 과거의 더딘 문화가 수준급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초창기 주목 받았던 압독국은 대구지역의 성장으로 상대적으로 위축 되었고 무엇보다도 대구의 교통 요충지로서 수로, 육로가 동시에 활용됨에 따라 급격히 성장하게 되어 천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대구의 성장은 곧 고대 사회의 이 같은 사로국의 영향력을 시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여 고려와 조선을 거쳐 거대 광역시로 성장하였을 것이고 바로 옆에 위치한 경산은 대구의 역할의 부각으로 상대적인 침체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고대에 이 두 집단간의 모습은 폭력수단으로서 병합이라는 방식을 쓰지 않고 압독국의 문화가 달구벌국의 문화로 유입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현대에 이르러 대구의 주목과 발전으로 홀로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하는 방식은 탈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지역의 지리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점, 그리고 인구 이동이 수시로 대구와 경산 이뤄지고 동일 문화권을 이룬다는 점에서 볼 때 두 도시의 독자적 생존은 어느 한 도시의 급격한 침체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사회에서의 압독국의 역할은 바로 대구가 하여야 할 것이고 그것으로만 현재 문제를 타계하는 일련의 방법으로 보인다.
수도 천도의 성장으로 상대적 위축한 경산이 결코 대구에 있어서는 무시 못 할 정도의 문화적 교류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주목받고 한쪽이 퇴락하는 그 길을 다시금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
대구와 경산의 동일 한 지역적 특징과 문화적 동일성으로 두 도시간의 융합을 추진해야겠으며 그것은 현재 교통의 방식과 문화적 교류, 생산수단의 유통이라는 조건으로 충족될 수 있겠다.
교통의 문제의 경우 현재 대구, 경산간의 도로 발달 상황은 양호하나 인구이동을 원활하기 위해서는 경산, 대구간의 지하철 연결을 해야 할 것이며 특히나 금호강 지류를 통한 또 하나의 지하철 개통이 필요로 하겠다. 그리고 물류를 원활한 이동 위해 낙동강 상류지역과 경주를 통한 울산지역권 도로망 연결을 통해 내륙지역과 해양으로 진출입을 수월케 하여 경제적의 난국을 충분히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도시의 관계를 주거와 산업 권역으로 나누어 그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살기 좋았던 지역은 고대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일 것이고 그것은 현재에도 이를 증명한다는 듯이 고대인이 살았던 지역으로 택지개발이 한창이다. 그렇다면 주거환경이 다시 변화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지역에 대규모 산업단지의 조성을 통해 하나의 벨트라인을 형성한다면 보다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한다. 즉 도심지 중심에는 행정중심지 역할을, 중심지를 중심으로 거주환경 구축을, 거주환경을 중심으로 산업지역을 구축하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문화권의 형성인데 대구 경산의 문화는 주로 금호강 지류 일대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이를 활용하는 데에는 미진하다. 따라서 이들 지역으로의 대규모 문화 시설 단지 조성과 팔공산을 중심으로 금호강과 신천을 통한 문화 라인을 구축한다면 두 도시의 성장과 동시 문화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Ⅳ. 결론
대구, 경산의 향후 생존을 위한 방법을 찾고자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 기록을 통해 논의를 해보았다. 실험적 논문의 성향을 띠고 주제에 맞추려는 근거를 찾는 노력으로 논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경산, 대구간의 두 도시의 발전 방향이 현실 사회에서 너무나 해괴망측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역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한마디 말을 하고자 하기위해 이 논문의 주제로 잡게 되었다.
때론 논리적 비약이 심할 수도 있겠으며, 또한 근거 없는 터무니없는 소리도 있을 테지 만 필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는 나름대로의 충실했다고는 말하고 싶다.
역사적 근거 토대위에 두 도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면 소귀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대구, 경산 두 도시의 성장이 역사적으로 결코 분리된 적이 없고 상호 연관관계 속에서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것 논문 작성하는 기간 동안 충분히 알 수 있었고, 현재에 그러한 움직이 일어나는 것도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역사적인 관계에 의거한 것이라고 한다면 필자는 그 움직임에 작은 근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두 도시는 교통과 생산과 유통, 문화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서 유기적인 화합을 통해야지만 성장 가능할 수 있고,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고대사회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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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6년 1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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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31
  • 저작시기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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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0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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