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 삶과 그의 미술에 관한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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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파블로 피카소 삶과 그의 미술에 관한 레포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그의 삶과 미술에 영향을 준 것

2. 미술 경향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되어 있다. 뚱뚱한 단장, 또는 젊은 아를캥의 부인 같은데 유랑 곡마단의 사람을 맡은 여인임에 틀림없다. 이 일단은 가족으로 묶여져 있기에 ’유랑민 공동체‘를 형성한다.
d. 실험의 시대 <아비뇽의 아가씨들>
<아비뇽의 아가씨들>이야말로 미술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다. 세잔, 이베리아 조각,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품.
여기에 나타난 여인은 두 유형으로 나뉜다. 왼쪽의 세여인은 가장자리에 주름이 잡힌 커다란 눈을 가지고 가운데에 위치한 여인은 귀가 8자처럼 그려져 있고 얼굴은 정면인데 코는 옆으로 뉘여있다. 피카소의 설명은 이렇다“옆으로 그린 코요? 그건 의도적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반드시 코라고 밖에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요.” 오른쪽의 각진 형태를 한 두 여인은 줄무늬 섞인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더욱이 그녀들의 얼굴은 대칭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위쪽 여인은 커다랗고 검은 눈은 정면을 향해 있지만, 다른 눈은 3/4각도로 옆을 보고 있다. 또한 아래쪽 여인은 등을 돌리고 앉은 자세에서도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e.입체주의
20세기 미술계의 주요한 입체주의 미술 운동은 1908-1914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용어는 마티스가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적인 풍경화를 보고 "이것은 작은 입방체일 뿐이다. "라고 말한데서 연유했다. 그러나 파카소, 브라크, 그리스, 레제 등 4명의 입체주의 화가들은 사물을 수많은 조각들로 분할하긴 했지만, 그 모양이 이름처럼 진짜 입방체를 띄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입체주의자들은 레제의 말처럼 "미술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이다."라는 신념으로 기존의 미술을 자유롭게 하였다.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은 입체주의의 엄격성을 견지했음에도 모델의 얼굴 특징을 족집게로 집어낸 듯 부각 시켰다. 볼라르의 말에 의하면 자기 친구들은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지만 네 살박이 친구 아들은 이 초상화를 보자 마자 “볼라르 아저씨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수한 눈의 직관력이 단박 초상화의 실체를 집어낸 것이다. 이 작품은 실제로 볼라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에 그의 개가 주인인줄 알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f. 다양한 스타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피카소는 극도로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했는데 어떤 날은 실물같이 정교하게 사생하다가도 다름 날이면 또 거칠게 왜곡되고 변형된 인물들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다름 사람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방면에 관심사와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작품들을 '초기' , '중기" , '말기'로 다루기 무척 어렵다.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개발하는 데 지칠 줄 모르는 개척가였던 피타소의 정력은 "나는 무언가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 자시의 말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친구 제 거트루드 스타인은 "수많은 화가들 중 피카소만이 보는 바대로만 사물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이 본 진실을 그리기 위해 골몰한 유일한 화가이다. "라고 말했다
1925년 마음대로 휘어진몸, 요란한 색채, 축약된 움직임을 보이는 세 인물이 그려져있다. 한 여자는 고개를 젖히고 가슴 한쪽을 공중에 드러낸 채 다리 하나를 들고 있다. 또한 여인은 십자가에 박힌 듯 두 팔을 들고 있다. 측면성으로 그려진 남자는 못 모양을 한 손으로 여인의 손을 잡고 있다.
<게르니카>는 파시즘의 공포 앞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의 외침이자 저항의 상징이다. 1937년 5월 1일부터 6월 말까지 피카소는 45점의 크로키를 제작했다. 황소, 불을 든 여인, 말 등 그림의 주된 요소는 첫 소묘에 이미 다 나타나 있다. 피카소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한 것은 전쟁, 맹목적인 폭력, 어린 아이들의 죽음, 어머니들의 고통 등 모든 인류에 고통된 비극이다. 피카소는 투우 장면, 말, 암흑과 야만성의 상징인 황소 등 자신의 섹O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비극을 말하고자 했다. 전체 색조는 초상, 장례의 그것이다. 피카소는 의도적으로 물감을 흰색과 검정색으로 한정했다. 형태는 마치 포스터에서 보는 것처럼 납작하고 단순화되어 강한 극적 효과를 나타낸다.
g.모방
피카소는 이제 말년에 고전 회화를 재정리하면서 자기 스타일로 대가들의 작품을 하나씩하나씩 재해석해 나간다. 이전의 대가들을 모방하려는 무의식은 19세기나 20세기에 모든 예술가들의 머리 속에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마네나 세잔 같은 화가들 스트라빈스키 같은 음악가들 그리고 장 콕도 같은 시인들도 다 그랬다. 옛 거장들의 작품을 풍자하고 모방하는 궁극적 목표는 어느 장르건 마찬가지 고전적 규율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모방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다.음
들라쿠루아의 작품을 모방한 이 작품에서 피카소는 구성과 인물은 그대로 고수했으나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지난 시대 대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은 19세기와 20세기 작가들을 일생의 어느 한 시기 동안 사로잡던 주제였다. 마네와 세잔 같은 화가들 프로코 파에프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음악가들, 콕토같은 시인들이 그러했다. 이러한 탐구의 최종목표는 항상 공통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즉, 그들은 고전적인 교훈에 비추어 스스로를 평가하고 그것을 더욱 잘 이해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넘어서자는 것이었다. 피카소도 그의 생애 마지막에 과거와의 호기심을 보였다. 그는 들라크루아의 <알제리의 여인들>을 주제로한 14개의 변형 작품. 벨라스케의 <라스 메니나스>를 주제로 한 44개의 작품, 마네의 <풀밭의 식사>를 주제로한 27개의 작품을 제작했다
Ⅲ.참고 문헌
마리-로르 베르나다크, 폴 뒤 부셰지음/최경란 역, 『피카소-성스러운 어릿광대』, 시공사, 1995
다니엘 킬 엮음/조정옥 역, 『예술에 관한 피카소의 명상』, 사계절, 1999
존버거 지음/김윤수 역,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미진사, 1993
김원일, 『발견자 피카소』,동방미디어, 2002
윤미연 역, 『피카소』, 청해ABC북, 2001
파리 피카소 미술관 : http://www.musee-picass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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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6페이지
  • 등록일2007.04.02
  • 저작시기2005.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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