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1.피카소의 일생
2.피카소의 작품경향 흐름
①초기시대
②청색시대
③장밋빛시대
④입체주의 전조
⑤큐비즘
⑥다양한 스타일
⑦대가들과의 대결
3.큐비즘(Cubism)
①입체파의 탄생
②분석적 입체파
③종합적 입체파
4.피카소의 작품세계 ♧사진포함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새를 잡는 고양이>
<근위병과 나부>
<납골당>
<꿈>
<늙은 기타리스트>
<다리미질 하는 여자>
<참고 문헌>
1.피카소의 일생
2.피카소의 작품경향 흐름
①초기시대
②청색시대
③장밋빛시대
④입체주의 전조
⑤큐비즘
⑥다양한 스타일
⑦대가들과의 대결
3.큐비즘(Cubism)
①입체파의 탄생
②분석적 입체파
③종합적 입체파
4.피카소의 작품세계 ♧사진포함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새를 잡는 고양이>
<근위병과 나부>
<납골당>
<꿈>
<늙은 기타리스트>
<다리미질 하는 여자>
<참고 문헌>
본문내용
지, 말인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엘뤼아르가 친구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에서 본 것은 치욕과 죄, 능욕당한 인간, 동포를 멸망시킨 인간의 검은 호흡이었다. 엘뤼아르가 자신의 시 <게르니카의 승리>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도 전인류적인 차원에서 폭력과 죽음, 전쟁과 암흑에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참여적 리얼리즘의 표현이라 하겠다.
그의 시 <게르니카의 승리>에서는 '포화에 견디는 얼굴' '뒤집혀진 죽은 심장' '저마다 자신의 피를 보여주는 여인들과 아이들' 등의 참혹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이 시적 여과 없이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피카소가 <게르니카>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처절한 인간 파괴의 영상에 대한 시적 변용으로서 동일한 전쟁에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한 신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폭력과 전쟁, 죽음과 암흑에 대항하여 격렬하게 투쟁했던 엘뤼아르와 피카소의 굳건한 예술적 동지애와 우정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엘뤼아르는 한 폭의 그림 앞에 설 자격이 있는 시인이었고, 피카소 역시 한 편의 시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화가였다.
♠1937, 유화, 782.3x350.5m. 마드리드 프라도 국립미술관
<새를 잡는 고양이>
“나는 전쟁을 그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카메라처럼 한 가지 주제만을 좇는 화가가 아닌 까닭에,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 속에 전쟁이 존재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필경 후세 역사가들은 내 그림이 전쟁의 영향 아래서 변화한 것이라고 지적할 것이나, 이 또한 내 알 바가 아니다.” 제 2 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에 피카소는 이와 같은 피카소다운 말을 남겼다. 피카소는 1930년 말, 브뤼겔이나 고야의 <전쟁의 참화>를 거쳐, 이어지는 유럽의 정신적 위기에 대한 경고라도 하듯이, 전쟁의 암시적 주제를 많이 택한 것이다. 피카소에 있어서 역사는 이러한 무수한 희생에 의하여 성립되는 시간의 경과일 뿐이다.
<근위병과 나부>
만년의 피카소가 관심을 집중한 에로스의 찬미를 그린 작품의 하나이다. 나부의 얼굴은 이전처럼 정면과 측면이 겹친 복합적 이미지이나 정면의 모습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나는 다만 이것은 유방이다. 이것은 다리이다. 이것은 손이다. 이것은 배이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 나는 이것으로 족하다.」고 한 피카소 자신의 에로티즘 선언을 기억한다면 이 그림의 근위병과 나부의 묘사는 결코 단순한 성적 절망이나 충동의 표현이 아닌 피카소의 휴머니즘과 현실에의 밀착의 결실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71년, 종이에 파스텔, 51.5×65cm, 개인소장
<납골당>
<게르니카> 이후 가장 주목할 작품이다. 1946년 2월 파리 근대 미술관에서 개최된 '예술과 혁명'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에서 전사한 스페인 무명 전사를 추도하는 전시회이다. 납골당의 내부는 회색과 보라, 푸른색의 3색으로 요약하여 이 정적한 톤은 <게르니카>의 경우와 같이 색채의 잔소리를 극도로 억제하고 정신적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묶여진 팔, 어린 아기의 목, 겹겹이 쌓인 시체더미 위에 지금 새벽이 찾아오고 있다. 그들의 죽음 위에 찾아드는 아침은 자유의 커다란 아침이다.
♠1944∼1945년, 유화, 200×250cm, 뉴욕 현대미술관
<꿈>
1932년 피카소의 생활과 예술은 마리·테레즈 왈테르라는 미모의 여인을 만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물론 이 여인과의 접촉은 1935년 아내 올가와의 이별을 가져 왔고, 36년에는 도라 마르라는 또 다른 여인의 출현을 낳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35년에는 마야라는 딸까지 낳은 이 아름다운 마리·테레즈와의 짧지만 달콤한 생활은 피카소의 전 생애와 예술에 걸쳐 가장 로맨틱하고 꿈에 젖은 아름다운 인간상의 추구를 기록한 시기이다.
피카소는 이 여인을 모델로 한 감미로운 여성상들을 쉴 사이 없이 그려나갔다. 그 중에서도《꿈》은 문자 그대로 꿈속에 산 피카소 자신의 모습이다. 고요히 잠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정면과 측면이 겹친 2 중상으로서 나른한 리듬을 일으키며 앉은 포름의 감이로움에 조화를 이루어 현실과 꿈의 양면성을 암시해 준다.
♠1923년, 유화, 130×97cm, 뉴욕, 개인소장
<늙은 기타리스트>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은 우수 어린 청색이 지배하고 있어 흔히 청색 시대라 불린다. 1901년부터 1905년의 시기이다. 그러나 그 시기의 청색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은 아직 없다. 1902년 가을을 파리에서 보낸 피카소는 고향인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가 1904년 봄까지 머물렀다. 그의 청색 작품은 그때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주제로는 불구자나 거지를 다룬 것이 많은데, 거리에 나앉은 불쌍한 늙은 키타리스트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느낌에 있어서 매우 스페인적인데, 그러한 요소는 피카소가 바르셀로나에서 노넬(1872∼1911)이라는 급진적인 사회 고발의 화가와 접촉한 데서 온 것이다. 노넬은 양식화된 사실 수법으로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스페인 농민의 참상을 거듭 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의 비참한 노인상은 분명히 노넬의 영향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피카소는 엘 그레코의 세계에서도 영감을 받고 있었다.
♠1903년, 목판에 유채, 122.3×82.5cm, 시카고 미술관
<다리미질 하는 여자>
「청색 시대」의 3년을 거치면서 피카소의 구성력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주제는 같은 비극적 인간상의 탐구이지만 이 그림의 구조는 중세기 성당의 당당한 건축적 구조 공간을 암시한다. 드가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그러나 엘 그레코의 감화(感化)가 뚜렷한 인물 묘사와 성격 파악에서 피카소는 대상의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서 숭고한 정신 세계의 상징으로 이끌어 올린다. 왼쪽 어깨의 강조는 여성의 작업과 고뇌를 디디고 서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다.
♠1904년, 유화, 116.3×73.3cm.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참고 문헌>
서명
저자
출판사
피카소의 사랑과 예술
베르나다크, 마리-로르
책세상
(파블로)피카소
야페, 한스
中央日報社
피카소
베르나다크, 마리-로르
시공사
엘뤼아르가 친구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에서 본 것은 치욕과 죄, 능욕당한 인간, 동포를 멸망시킨 인간의 검은 호흡이었다. 엘뤼아르가 자신의 시 <게르니카의 승리>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도 전인류적인 차원에서 폭력과 죽음, 전쟁과 암흑에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참여적 리얼리즘의 표현이라 하겠다.
그의 시 <게르니카의 승리>에서는 '포화에 견디는 얼굴' '뒤집혀진 죽은 심장' '저마다 자신의 피를 보여주는 여인들과 아이들' 등의 참혹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이 시적 여과 없이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피카소가 <게르니카>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처절한 인간 파괴의 영상에 대한 시적 변용으로서 동일한 전쟁에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동일한 신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폭력과 전쟁, 죽음과 암흑에 대항하여 격렬하게 투쟁했던 엘뤼아르와 피카소의 굳건한 예술적 동지애와 우정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엘뤼아르는 한 폭의 그림 앞에 설 자격이 있는 시인이었고, 피카소 역시 한 편의 시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화가였다.
♠1937, 유화, 782.3x350.5m. 마드리드 프라도 국립미술관
<새를 잡는 고양이>
“나는 전쟁을 그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카메라처럼 한 가지 주제만을 좇는 화가가 아닌 까닭에,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 속에 전쟁이 존재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필경 후세 역사가들은 내 그림이 전쟁의 영향 아래서 변화한 것이라고 지적할 것이나, 이 또한 내 알 바가 아니다.” 제 2 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에 피카소는 이와 같은 피카소다운 말을 남겼다. 피카소는 1930년 말, 브뤼겔이나 고야의 <전쟁의 참화>를 거쳐, 이어지는 유럽의 정신적 위기에 대한 경고라도 하듯이, 전쟁의 암시적 주제를 많이 택한 것이다. 피카소에 있어서 역사는 이러한 무수한 희생에 의하여 성립되는 시간의 경과일 뿐이다.
<근위병과 나부>
만년의 피카소가 관심을 집중한 에로스의 찬미를 그린 작품의 하나이다. 나부의 얼굴은 이전처럼 정면과 측면이 겹친 복합적 이미지이나 정면의 모습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나는 다만 이것은 유방이다. 이것은 다리이다. 이것은 손이다. 이것은 배이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 나는 이것으로 족하다.」고 한 피카소 자신의 에로티즘 선언을 기억한다면 이 그림의 근위병과 나부의 묘사는 결코 단순한 성적 절망이나 충동의 표현이 아닌 피카소의 휴머니즘과 현실에의 밀착의 결실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71년, 종이에 파스텔, 51.5×65cm, 개인소장
<납골당>
<게르니카> 이후 가장 주목할 작품이다. 1946년 2월 파리 근대 미술관에서 개최된 '예술과 혁명'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에서 전사한 스페인 무명 전사를 추도하는 전시회이다. 납골당의 내부는 회색과 보라, 푸른색의 3색으로 요약하여 이 정적한 톤은 <게르니카>의 경우와 같이 색채의 잔소리를 극도로 억제하고 정신적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묶여진 팔, 어린 아기의 목, 겹겹이 쌓인 시체더미 위에 지금 새벽이 찾아오고 있다. 그들의 죽음 위에 찾아드는 아침은 자유의 커다란 아침이다.
♠1944∼1945년, 유화, 200×250cm, 뉴욕 현대미술관
<꿈>
1932년 피카소의 생활과 예술은 마리·테레즈 왈테르라는 미모의 여인을 만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물론 이 여인과의 접촉은 1935년 아내 올가와의 이별을 가져 왔고, 36년에는 도라 마르라는 또 다른 여인의 출현을 낳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35년에는 마야라는 딸까지 낳은 이 아름다운 마리·테레즈와의 짧지만 달콤한 생활은 피카소의 전 생애와 예술에 걸쳐 가장 로맨틱하고 꿈에 젖은 아름다운 인간상의 추구를 기록한 시기이다.
피카소는 이 여인을 모델로 한 감미로운 여성상들을 쉴 사이 없이 그려나갔다. 그 중에서도《꿈》은 문자 그대로 꿈속에 산 피카소 자신의 모습이다. 고요히 잠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정면과 측면이 겹친 2 중상으로서 나른한 리듬을 일으키며 앉은 포름의 감이로움에 조화를 이루어 현실과 꿈의 양면성을 암시해 준다.
♠1923년, 유화, 130×97cm, 뉴욕, 개인소장
<늙은 기타리스트>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은 우수 어린 청색이 지배하고 있어 흔히 청색 시대라 불린다. 1901년부터 1905년의 시기이다. 그러나 그 시기의 청색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은 아직 없다. 1902년 가을을 파리에서 보낸 피카소는 고향인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가 1904년 봄까지 머물렀다. 그의 청색 작품은 그때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주제로는 불구자나 거지를 다룬 것이 많은데, 거리에 나앉은 불쌍한 늙은 키타리스트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느낌에 있어서 매우 스페인적인데, 그러한 요소는 피카소가 바르셀로나에서 노넬(1872∼1911)이라는 급진적인 사회 고발의 화가와 접촉한 데서 온 것이다. 노넬은 양식화된 사실 수법으로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스페인 농민의 참상을 거듭 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의 비참한 노인상은 분명히 노넬의 영향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피카소는 엘 그레코의 세계에서도 영감을 받고 있었다.
♠1903년, 목판에 유채, 122.3×82.5cm, 시카고 미술관
<다리미질 하는 여자>
「청색 시대」의 3년을 거치면서 피카소의 구성력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주제는 같은 비극적 인간상의 탐구이지만 이 그림의 구조는 중세기 성당의 당당한 건축적 구조 공간을 암시한다. 드가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그러나 엘 그레코의 감화(感化)가 뚜렷한 인물 묘사와 성격 파악에서 피카소는 대상의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서 숭고한 정신 세계의 상징으로 이끌어 올린다. 왼쪽 어깨의 강조는 여성의 작업과 고뇌를 디디고 서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다.
♠1904년, 유화, 116.3×73.3cm.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참고 문헌>
서명
저자
출판사
피카소의 사랑과 예술
베르나다크, 마리-로르
책세상
(파블로)피카소
야페, 한스
中央日報社
피카소
베르나다크, 마리-로르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