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신석기문화에 대한 개관
-신석기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천
-신석기문화의 지역별 특성
* 황하유역
* 양자강유역
* 내몽고 및 만주유역
-신석기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천
-신석기문화의 지역별 특성
* 황하유역
* 양자강유역
* 내몽고 및 만주유역
본문내용
용구와 생산공구도 일부 포함되었지만, 특히 복천산묘의 경우 일견 생산공구로 보이는 9건의 석부 역시 그 일부는 이미 예제용의 월과 형태가 유사할 뿐 아니라 모두 정교하고 높은 광택을 발하고 있어 단순한 실용공구라기 보다는 권력과 신분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양저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각종 옥기이다. 양저문화의 전반기에는 양저, 후반기에는 사돈의 수장이 옥종의 제작·분배의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수장이 종속하는 여러 지역의 수장들에게 옥종을 분배한 것으로 이해된다. 옥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종(琮)과 벽(璧)이다. 종, 벽, 월(鉞)이 각각 '신권(神權)', '재권(財權)', '군권(軍權)'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옥기는 제사와 신앙에 관련되는 법기(法器)이므로 제사장의 직능을 표시하는 것이고 또 그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양저문화의 사회구조와 그 성격을 단적으로 묘사하는 유구는 막각산(莫角山)유적이라는 거대한 인공기단이다. 이 대규모 기단을 둘러싸듯이 요산, 회관산, 반산 등의 중요 유적이 분포한다. 양저문화에서의 옥기는 청동기시대의 청동기의 역할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기원전 3,000년경 전반에서 후반에 걸쳐 장강중유역의 석가하 문화, 하류의 양저문화, 황하 중하류의 용산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정립하여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3,000년 말에는 석가하문화가 어쩐 이유에서인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하류의 양저문화도 홍수의 영향으로 쇠퇴한다.
3. 내몽고 및 만주 유역
1) 홍산문화
내몽고 동남부에서 요령성 서부, 하북성 북부에 걸쳐서 기원전3000년경에 홍산문화가 존재 하였다. 마제석기를 주로 하여 세석기 세석기 : 중석기∼신석기 초기에 성행한 소형의 석기. 간석기 라고도 함.
를 사용했는데, 토기에는 ‘之’자 문양과 채색문양이 있다. 내몽고의 취락들은 반파촌과 강채촌이 모두 호구로 둘러싸인 것과는 달리 돌담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것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홍산문화기의 석성보와 함께 용산문화 만기의 성(후술)의 출현을 예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돌을 쌓은 묘에는 옥기가 부장되어있고, 임부등의 여성 토우가 제사유구로부터 출토되고 있다. 특히 요녕 우하량유지의 ‘여신묘’는 취락에서 멀리 떨어진 산정에 위치한 점에서 어느 단일한 취락의 신묘는 아닌 것 같으며 특히 요녕성 객좌현 동산취에서 홍산문화기의 나체영부의 도소상이 출토된 석체건축군유지는 그 규모나 위치 신등성이의 대지 주변에 취락의 흔적은 없다.
로 보아 어느 한 부락의 전용이라기 보다는 역시 부락연맹의 제의중심으로 본다. 옥기문화는 남쪽의 은문화에 이어지며, 토우가 나온 돌로 만든 제사유구는 이 문화의 종교를 생각해 보는 데 매우흥미 깊은 것이다. 이 문화를 이어 받아 연산의 산지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것이 중국 북방 청동기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하가점 하층문화로 비교적 큰 집락의 주위에는 벽이나 도랑을 조성하여 방어했고 토기형태는 은문화와의 접촉이 보이며 청동기에는 소형의 장식품이 있는데 아직 용기류는 없다.
양저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각종 옥기이다. 양저문화의 전반기에는 양저, 후반기에는 사돈의 수장이 옥종의 제작·분배의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수장이 종속하는 여러 지역의 수장들에게 옥종을 분배한 것으로 이해된다. 옥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종(琮)과 벽(璧)이다. 종, 벽, 월(鉞)이 각각 '신권(神權)', '재권(財權)', '군권(軍權)'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옥기는 제사와 신앙에 관련되는 법기(法器)이므로 제사장의 직능을 표시하는 것이고 또 그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양저문화의 사회구조와 그 성격을 단적으로 묘사하는 유구는 막각산(莫角山)유적이라는 거대한 인공기단이다. 이 대규모 기단을 둘러싸듯이 요산, 회관산, 반산 등의 중요 유적이 분포한다. 양저문화에서의 옥기는 청동기시대의 청동기의 역할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기원전 3,000년경 전반에서 후반에 걸쳐 장강중유역의 석가하 문화, 하류의 양저문화, 황하 중하류의 용산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정립하여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3,000년 말에는 석가하문화가 어쩐 이유에서인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하류의 양저문화도 홍수의 영향으로 쇠퇴한다.
3. 내몽고 및 만주 유역
1) 홍산문화
내몽고 동남부에서 요령성 서부, 하북성 북부에 걸쳐서 기원전3000년경에 홍산문화가 존재 하였다. 마제석기를 주로 하여 세석기 세석기 : 중석기∼신석기 초기에 성행한 소형의 석기. 간석기 라고도 함.
를 사용했는데, 토기에는 ‘之’자 문양과 채색문양이 있다. 내몽고의 취락들은 반파촌과 강채촌이 모두 호구로 둘러싸인 것과는 달리 돌담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것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홍산문화기의 석성보와 함께 용산문화 만기의 성(후술)의 출현을 예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돌을 쌓은 묘에는 옥기가 부장되어있고, 임부등의 여성 토우가 제사유구로부터 출토되고 있다. 특히 요녕 우하량유지의 ‘여신묘’는 취락에서 멀리 떨어진 산정에 위치한 점에서 어느 단일한 취락의 신묘는 아닌 것 같으며 특히 요녕성 객좌현 동산취에서 홍산문화기의 나체영부의 도소상이 출토된 석체건축군유지는 그 규모나 위치 신등성이의 대지 주변에 취락의 흔적은 없다.
로 보아 어느 한 부락의 전용이라기 보다는 역시 부락연맹의 제의중심으로 본다. 옥기문화는 남쪽의 은문화에 이어지며, 토우가 나온 돌로 만든 제사유구는 이 문화의 종교를 생각해 보는 데 매우흥미 깊은 것이다. 이 문화를 이어 받아 연산의 산지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것이 중국 북방 청동기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하가점 하층문화로 비교적 큰 집락의 주위에는 벽이나 도랑을 조성하여 방어했고 토기형태는 은문화와의 접촉이 보이며 청동기에는 소형의 장식품이 있는데 아직 용기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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