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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5개 월간 옥고를 치렀다. 1616년에 유일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뒤 다시 학행으로 천거되어 봉화현감이 되었다. 수령으로 있으면서 전묘와 부세를 바로 잡았다. 이듬해 형조정랑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원옥을 해결하여 판서 이서의 경탄을 샀다. 1627년에 청도군수가 되었다가, 1628년에 수포장인에 대한 보고에 허위가 있다하여 파직당하였다. 1634년 지평으로 있을 때 장령 강학년이 다시 서인정권의 정책을 크게 비판하여 심한 논란이 일어났는데, 이때 그를 두둔하여 대간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고관대작을 역임하지는 않았지만 세신의 후예답게 깨끗하고 성실하게 생애를 보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수암집 >이 전한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뒤 다시 학행으로 천거되어 봉화현감이 되었다. 수령으로 있으면서 전묘와 부세를 바로 잡았다. 이듬해 형조정랑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원옥을 해결하여 판서 이서의 경탄을 샀다. 1627년에 청도군수가 되었다가, 1628년에 수포장인에 대한 보고에 허위가 있다하여 파직당하였다. 1634년 지평으로 있을 때 장령 강학년이 다시 서인정권의 정책을 크게 비판하여 심한 논란이 일어났는데, 이때 그를 두둔하여 대간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고관대작을 역임하지는 않았지만 세신의 후예답게 깨끗하고 성실하게 생애를 보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수암집 >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