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장 언어의 구술성
2장 일차적인 구술성에 대한 최근의 발견
3장 구술성의 정신역학
4장 쓰기는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
2장 일차적인 구술성에 대한 최근의 발견
3장 구술성의 정신역학
4장 쓰기는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
본문내용
느끼지 않는 우리의 태도는, 모든 감각 나아가서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을 시각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해 버리는 경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한 경향은 아마도 구술문화 속에도 있었겠지만, 필사문자의 문화가 되고 나서 확연히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나아가서 활자문자에 이르러서 점점 현저해졌다. 소리는 시간속의 사건이며, ‘시간은 걸어 나아간다’. 시간은 거침없이 계속걸으며 거기에는 어떠한 정지도 분할도 없다.
4장 쓰기는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
자율적인 담론의 새로운 세계
원시적인 혹은 일차적인 구술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쓰기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를 한층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즉 그러한 세계가 실제로는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문자에 익숙한 인간이란 실제로 어떠한 것인가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문자에 익숙한 사람들이란 선천적인 능력보다는 쓰는 기술에 의해서 직 간접적으로 구조화된 힘에 힘입어 그 사고과정을 형성시킨 인간을 말한다. 문자에 익숙한 정신은 쓰기가 없었다면 실제로 무엇을 쓸 때 뿐만 아니라 말하기 위해서 보통 생각을 간추릴 때조차도 지금처럼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각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쓰기에는 어떠한 발명보다도 더욱 강하게 인간의 의식을 변형시켜 왔다.
플라톤, 쓰기 그리고 컴퓨터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에게 당신이 말한 바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 부탁에 따라 당신은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에 아무리 그러한 부탁을 하더라도 최초로 의문을 던졌던 것과 마찬가지 말이, 그것도 종종 어리석은 말이 단 지 되풀이될 뿐이다. 이와 같은 비난은 인쇄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하다. 쓰기에 관한 플라톤의 의심에 대해 당혹해 하는 사람들은, 인쇄가 처음으로 세상에 타나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의 의심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고는 한층 더 당혹해 할 것이다. 실제로 라틴어의 고전 인쇄를 촉진히켰던 히에로니모 스쿠아는 1477년 ‘이미 책이 너무 많아져서 사람들은 학문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플라톤의 약점은 자신의 반론을 효과적으로 하기위해서 그것을 책으로 썼다는 점이다. 동시에 인쇄에 반대하는 입장 역시, 그 제창자들이 자신들의 반론을 한층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것을 인쇄했다는 점에서 약점을 지니고 있다.
쓰기는 하나의 기술이다.
자연스럽게 구술하는 말하기와는 대조적으로 쓰기는 완전히 인공적이다. ‘자연스럽게’ 쓰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구술적인 말하기는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없는 한, 어떠한 문화 속의 어떠한 인간도 말하기는 배운다는 의미에서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에 의해서 의식적인 생활이 실행되지만 그러한 생활은 무의식의 깊이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사회 생활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의식적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다. 문법규칙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할 수 없는 데도 그 사용 방식이나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것조차 우리가 알고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 문법 규칙은 무의식속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4장 쓰기는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
자율적인 담론의 새로운 세계
원시적인 혹은 일차적인 구술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쓰기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를 한층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즉 그러한 세계가 실제로는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문자에 익숙한 인간이란 실제로 어떠한 것인가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문자에 익숙한 사람들이란 선천적인 능력보다는 쓰는 기술에 의해서 직 간접적으로 구조화된 힘에 힘입어 그 사고과정을 형성시킨 인간을 말한다. 문자에 익숙한 정신은 쓰기가 없었다면 실제로 무엇을 쓸 때 뿐만 아니라 말하기 위해서 보통 생각을 간추릴 때조차도 지금처럼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각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쓰기에는 어떠한 발명보다도 더욱 강하게 인간의 의식을 변형시켜 왔다.
플라톤, 쓰기 그리고 컴퓨터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에게 당신이 말한 바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 부탁에 따라 당신은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에 아무리 그러한 부탁을 하더라도 최초로 의문을 던졌던 것과 마찬가지 말이, 그것도 종종 어리석은 말이 단 지 되풀이될 뿐이다. 이와 같은 비난은 인쇄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하다. 쓰기에 관한 플라톤의 의심에 대해 당혹해 하는 사람들은, 인쇄가 처음으로 세상에 타나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의 의심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고는 한층 더 당혹해 할 것이다. 실제로 라틴어의 고전 인쇄를 촉진히켰던 히에로니모 스쿠아는 1477년 ‘이미 책이 너무 많아져서 사람들은 학문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플라톤의 약점은 자신의 반론을 효과적으로 하기위해서 그것을 책으로 썼다는 점이다. 동시에 인쇄에 반대하는 입장 역시, 그 제창자들이 자신들의 반론을 한층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것을 인쇄했다는 점에서 약점을 지니고 있다.
쓰기는 하나의 기술이다.
자연스럽게 구술하는 말하기와는 대조적으로 쓰기는 완전히 인공적이다. ‘자연스럽게’ 쓰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구술적인 말하기는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없는 한, 어떠한 문화 속의 어떠한 인간도 말하기는 배운다는 의미에서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에 의해서 의식적인 생활이 실행되지만 그러한 생활은 무의식의 깊이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 물론 사회 생활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의식적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다. 문법규칙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할 수 없는 데도 그 사용 방식이나 새로운 규칙을 세우는 것조차 우리가 알고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 문법 규칙은 무의식속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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