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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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카라바조에 대해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시 대 적 배 경

2.작 가 의 생 애

3.작가의 작품경향

4.미술사적으로 끼친영향

5.참고 문헌

본문내용

마시고 있다( 3)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자선 행위), 카라바조와 동시대인들은 물을 뜨는 주발과 당나귀 턱뼈로 적들을 때려눕힌 뒤 사막에서 갈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하느님께서 우묵하게 꺼진 데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시어 그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 삼손과 연계시켰다. 그들의 오른쪽에는 하얀 저고리와 진홍색 모자 차림의 한 남자가 시체를 떠맨 또 다른 남자에게 촛불을 쳐들고 있다( 4)죽은 자를 거두어 묻어주는 자선 행위), 마지막으로 젊은 여인이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면서 창살 뒤에 갇힌 늙은 남자에게 젖을 빨리고 있다( 5)감옥의 죄수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선 행위), 아마도 이 여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대 로마의 키모와 페로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통해 다시 태어난 옛날 이야기 속 인물들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들의 얼굴과 육신이 닮아 있다. 카라바조의 무대는 인위적이거나 비유적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교회가 빈민들을 정화시키기 위해 준비한 무대나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정형화된 무대와도 거리가 멀다. 극장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자비가 베플어지는 장소인 카라바조의 무대에는 이 얘기의 진실 여부를 판가름하는 관찰자가 포함된다. 따라서 카라바조는 국외자로서의 관찰자를 배격한다. 즉 그는 관찰자에게 배우의 역할을 맡긴다. 그는 관찰자로 하여금 관객의 입장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지켜보게 하기보다 사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으로 직접 들어가게 만든다. 그 결과 관찰자는 비참한 형제 자매들에게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통해 카라바조는 관찰자를 행동하게 만든다. 무대 전체는 카라바조의 후기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강렬한 노란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카라바조보다 몇년 앞서 태어난 화가 프란체스코 알바니(Francesco Albani, 1578~1660, 이탈리아 화가)는 이 색을 가리켜 '땅의 살빛'이라고 일컬었다. 이 빛의 출처는 과연 어디일까? 현관에 서 있는 남자가 들고 있는 횃불에서 나오는 빛도 아니고, 여인숙 주인의 뒤편에 있는 방에서 나오는 빛도 아니다. X-레이로 촬영한 결과 이 성스런 빛은 나중에 덧칠한 것으로 밝혀졌다. 피오몬테의 귀족들이 그림이 완성된 후 카라바조에게 마리아를 추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무리 그들이 앞서나갔다고 하더라도 그림에서 너무 세속적인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 성스런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면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그림 속 인물 하나하나를 감싸안는 이 빛은 사방에서 나온다. 왼쪽에서 보면 빛이 천사들의 날개와 어깨 위로, 오른쪽에서 보면 천사들의 가슴 위로 쏟아져 내린다. 빛은 성모와 아기 예수의 얼굴에 이어 여인숙 주인과 목마른 노인, 순례자, 자비로운 신사, 횃불을 들고 있는 남자, 젊은 여인과 죄수의 얼굴을 비춘다. 또한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등과 매장을 위해 옮겨지는 시체의 발도 빛에 노출되어 있다. 이처럼 빛은 사방에서 나온다. 마치 장면 전체가 우리가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빛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이 그림에서 빛은 관찰자 자신의 빛이다. 빛이 없다면 일곱 가지 자비스런 행동은 그림자와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4. 미술사적으로 끼친영향
17세기 초 유럽 회화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우선 장르가 다양해 졌고 이전의 그림은 주로 종교화나 신화화, 초상화 였던 데 반해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가 새롭게 가세하면서 그림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특히 풍속화가 주요 장르로 자리잡게 되면서 화가들은 그간의 종교나 신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소재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되었고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 카라바조가 있었다. 카라바조는 풍속화를 보급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에도 차별을 두어 종교화나 신화화 같은 역사화를 으뜸으로 쳤고, 그다음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을 그린 초상화를 쳤다. 이세 장르이외의 그림들은 업신여기는 이상한 풍조가 있었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선택함으로써 이후 풍속화붐을 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 정물화를 처음 그린것도 카라바조다. 정물화 역시 고급 그림에 속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체 중심의 그림에서 장식적 혹은 부수적 역할에 그쳤었는데. 카라바조는 작품마다 정물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을 뿐만 아니라 정물화를 독립된 회화장르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정물화는 당시 네덜란드 지방에서 이미 유행한 장르지만 카라바지오의 정물화는 네덜란드의 정물화와 달리 단순히 장식적인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물을 통해 인물 이상의 존엄성과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물을 통해 표현된 “진실”은 전통적 규범이나 이상적 형태를 대체한 것으로, 종교화 에서도 “진실”은 카라바조 작품의 가장 큰 가치기준이 된다. 17세기 회화에서 많이 쓰인 강렬한 명암법<테네브리즘> 역시 카라바조로부터 시작되었고 전세게 유명 미술관의 17세기 전시관에 가보면 유난히 명암 대비법에 의한 그림이 많다고 한다. 밝은 부분을 극단적으로 밝게 처리 하고 나머지부분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노리는 이 명암법은 카라바조로부터 시작되어 이후 전 유럽에 확산 되었다. 또한 17세기 자주 등장하는 잔인한 장면이나 죽음의 처참한 순간을 다룬 그림 역시 카라바조로부터 시작 되어 일반화된 현상인 것을 보면 카라바조 없는 17세기는 생각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같은 17세기 회화의 커다란 변화, 혹은 특징이 카라바조라는 단 한 사람의 의해 고안되었거나 시도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카라바조와 동시대인으로서 우리에게 훨씬 친숙한 램브란트나 루벤스 혹은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카라바조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보면 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5.참고문헌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201”생각의 나무=>리처드 스템프,정지인,신소희
“바로크와 로코코”시공사=>재르맹 바쟁, 김미정,2000
“카라바조”재원=>윤익영 2003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웅진닷컴 =>조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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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7.05.14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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