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기독교와 그리스도
II. 예수의 사상
1. 왕국시민의 특징 (마 5:1-16)
2. 왕국시민의 율례(律例) (마 5:17-48)
3. 왕국 시민의 행위
4. 왕국시민들에 대한 경고 (마 7:13-29)
Ⅲ. 기독교의 교리
1. 하나님의 존재
2.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
3. 하나님의 본성
4. 하나님의 속성
5. 하나님의 일
Ⅳ. 기독교의 발전과 전개
1. 고대기독교
2. 중세기독교
3. 분열 이후의 동방 기독교의 역사
4. 분열이후의 서방 기독교의 역사
Ⅴ. 기독교의 경제관
1. 노동의 축복과 부담
2. 노동과 휴식의 관계
3. 물질적 소유
4. 현대 경제생활의 도전
Ⅵ. 종교현상과 그리스도 계시
Ⅶ. 기독교의 세계관
1. 창조(Creation)
2. 타락(Fall)
3. 구속(Redemption)
4. 극치(Consummation)
Ⅷ. 불교의 기원
Ⅸ. 불교의 의의
Ⅹ. 불교의 수용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Ⅺ. 불교의 죽음관과 장례의식
1. 윤회(輪廻)
2. 열반(涅槃)
3. 업(業)
Ⅻ. 불교의 역사의식
ⅩⅢ. 기독교와 불교의 인간관 비교
1. 기독교의 인간관
2. 불교의 인간관
II. 예수의 사상
1. 왕국시민의 특징 (마 5:1-16)
2. 왕국시민의 율례(律例) (마 5:17-48)
3. 왕국 시민의 행위
4. 왕국시민들에 대한 경고 (마 7:13-29)
Ⅲ. 기독교의 교리
1. 하나님의 존재
2.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
3. 하나님의 본성
4. 하나님의 속성
5. 하나님의 일
Ⅳ. 기독교의 발전과 전개
1. 고대기독교
2. 중세기독교
3. 분열 이후의 동방 기독교의 역사
4. 분열이후의 서방 기독교의 역사
Ⅴ. 기독교의 경제관
1. 노동의 축복과 부담
2. 노동과 휴식의 관계
3. 물질적 소유
4. 현대 경제생활의 도전
Ⅵ. 종교현상과 그리스도 계시
Ⅶ. 기독교의 세계관
1. 창조(Creation)
2. 타락(Fall)
3. 구속(Redemption)
4. 극치(Consummation)
Ⅷ. 불교의 기원
Ⅸ. 불교의 의의
Ⅹ. 불교의 수용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Ⅺ. 불교의 죽음관과 장례의식
1. 윤회(輪廻)
2. 열반(涅槃)
3. 업(業)
Ⅻ. 불교의 역사의식
ⅩⅢ. 기독교와 불교의 인간관 비교
1. 기독교의 인간관
2. 불교의 인간관
본문내용
성경의 인간관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지적하고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온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인간은 무엇인가 는 질문을 계속 제기 하였다. 인간의 독특성 중에서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자기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과 자기자신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수많은 성경 맥락에서 제기 될 수 있는것 이지만, 그 맥락들은 대략 두 가지 것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유신론과 무신론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복잡한 현상을 이루 있기 때문에 그 정의 들은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떤 이들은 정의는 다른 이들의 것보다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에, 모두가 부분적으로 흐르고 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의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실존적인 관계들의 문제가 서로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본선에 관한 논의는 어느 것이든지 수많은 사상의 조류들을 최근의 것까지 포함하여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구약, 신약의 시대와 고대, 교부들의 시대, 중세와 문예부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해석도 많이 달라졌다.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이며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때까지의 삶이다. 그 삶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맞물려 있다. 마지막 까지 그 뜻과 진리를 향하여 거듭난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구원에 기초된 개인적이나, 전도에 기초하여 대중적인 삶 역시 중시 하였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의 확신이 밑바탕이다.
요즘과 같이 복잡하고 편리한 시대, 그러나 언제 보다 타락했고, 어지러운 이 세상에 과연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또한 이러한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불교의 인간관
첫째 인간은 영혼이 없다. 아나타 (Anatta), 곧 영혼이 없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여러 다른 종교와 달리 특이한 점이다. 그러나 이 용어의 참 뜻을 바로 이해하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부처가 부정한 영혼 곧 아타 (Atta)란 어떠한 영혼인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팔리어로 아트만이라고도 하는 산스크리트말의 아타는 부처가 살고 있었던 시대에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인도교의 철학의 이원론을 따라서 육체를 부정하고 영적인 요소만을 인정하는 사상, 둘째는 같은 영혼이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뜻을 가진 까닭에 부처는 아타 를 부인한 것이다. 부처는 영혼의 단독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윤회설을 믿기는 하였지만 당시 브라만 교도들이 믿는대로의 윤회설을 믿지는 않았다. 자기가 보는바 윤회설을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등불을 켜서 그 불을 또 다른 등불에 옮기고 또 옮기고 한다고 하자. 그 때 맨 마지막에 여겨진 불꽃은 틀림없이 처음의 그 불꽃과 동일한 불꽃은 아니다. 그와 같이 같은 영혼이 영원히 존속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존재로서의 개체의 영혼은 그것으로 그치고 다만 한 등불이 다른 등잔에게 불씨의 역할을 하여주는 것과 같이 다른 또 하나의 존재의 원인이 되어 주며 원인-결과의 유대를 가질 뿐이다. 이와 같이 윤회설로서 카르마(Karma)의 교리를 주장하였다. 카르마의 윤회설이란 첫째 모든 사물이나 생명체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의 생명은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됨으로써 서로의 관련을 가지게 한다. 둘째로는 그 같은 원인-결과의 생성과정 가운데 서도 사람의 의지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사람의 자유로운 의지는 자기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 째로 생성과정을 이어나가는 것은 원인-결과의 무형적 물체가 유전됨으로써 윤회를 이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부처는 이 같은 윤회설을 카르마 의 교리에 대하여 예를 들어 풀이 했다. ① 내 마음 속에 있는 생각조차에도 우연하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② 분명히 어떤 원인이 되는 과거를 가지고 생겨난 것이다. ③ 그러나 원인을 따라 생성한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변경하고 가공하여 문명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인한다. ④ 한 가지의 관념으로부터 또 다른 한 가지의 관념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은 어떤 물체나 영체가 몸으로 전달됨으로써 윤회과정이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비 물질적인 정신적인 전달에는 생성의 연결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결국 윤회과정에 있어서 부처는 물체설을 부인한다. 물체설을 부인하는 까닭은 삼라만상의 생성윤회과정에 있어서 물체는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렇다. 육체나 물질은 마음과 정신에 비하여 일시적이며 근본적인 존재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만물이 다 이처럼 소멸될 존재라는 사상 때문에 불교 문학은 허무주의와 감이 보인다. 부처는 존재의 세 가지 특징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심각한 특징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두 가지는 괴로움, 그리고 영혼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생은 덧없다. 인생을 구성한 요소들을 그는 스칸다 (skandas)라고 불렀다. 스칸다들은 모두가 덧없이 유한한 것들뿐이다. 그것들은 거품과도 감이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것은 그림자요, 아침 이슬이요, 믈거품이다.
인생은 죽은 다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윤회의 회전을 따라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다시 태어날 것을 바라지만 부처는 그와 같은 내세관을 부정한다. 내세의 존재에 관한 문제를 인간의 지각이란 언어로는 결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이라 한다. 불교애서의 인간은 사건의 원인일 뿐이다.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고, 또 반복하고, 인간이 생활하고 생각하는 의미는 지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부처가 되려 끊임없이 고행하고 수행한다. 이것이 과연 한번뿐인 인생 또는 다시 올 인생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인간의 본성은 복잡한 현상을 이루 있기 때문에 그 정의 들은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떤 이들은 정의는 다른 이들의 것보다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에, 모두가 부분적으로 흐르고 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의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실존적인 관계들의 문제가 서로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본선에 관한 논의는 어느 것이든지 수많은 사상의 조류들을 최근의 것까지 포함하여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구약, 신약의 시대와 고대, 교부들의 시대, 중세와 문예부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해석도 많이 달라졌다.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이며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때까지의 삶이다. 그 삶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맞물려 있다. 마지막 까지 그 뜻과 진리를 향하여 거듭난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구원에 기초된 개인적이나, 전도에 기초하여 대중적인 삶 역시 중시 하였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의 확신이 밑바탕이다.
요즘과 같이 복잡하고 편리한 시대, 그러나 언제 보다 타락했고, 어지러운 이 세상에 과연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또한 이러한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불교의 인간관
첫째 인간은 영혼이 없다. 아나타 (Anatta), 곧 영혼이 없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여러 다른 종교와 달리 특이한 점이다. 그러나 이 용어의 참 뜻을 바로 이해하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부처가 부정한 영혼 곧 아타 (Atta)란 어떠한 영혼인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팔리어로 아트만이라고도 하는 산스크리트말의 아타는 부처가 살고 있었던 시대에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인도교의 철학의 이원론을 따라서 육체를 부정하고 영적인 요소만을 인정하는 사상, 둘째는 같은 영혼이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뜻을 가진 까닭에 부처는 아타 를 부인한 것이다. 부처는 영혼의 단독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윤회설을 믿기는 하였지만 당시 브라만 교도들이 믿는대로의 윤회설을 믿지는 않았다. 자기가 보는바 윤회설을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등불을 켜서 그 불을 또 다른 등불에 옮기고 또 옮기고 한다고 하자. 그 때 맨 마지막에 여겨진 불꽃은 틀림없이 처음의 그 불꽃과 동일한 불꽃은 아니다. 그와 같이 같은 영혼이 영원히 존속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존재로서의 개체의 영혼은 그것으로 그치고 다만 한 등불이 다른 등잔에게 불씨의 역할을 하여주는 것과 같이 다른 또 하나의 존재의 원인이 되어 주며 원인-결과의 유대를 가질 뿐이다. 이와 같이 윤회설로서 카르마(Karma)의 교리를 주장하였다. 카르마의 윤회설이란 첫째 모든 사물이나 생명체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의 생명은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됨으로써 서로의 관련을 가지게 한다. 둘째로는 그 같은 원인-결과의 생성과정 가운데 서도 사람의 의지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사람의 자유로운 의지는 자기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 째로 생성과정을 이어나가는 것은 원인-결과의 무형적 물체가 유전됨으로써 윤회를 이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부처는 이 같은 윤회설을 카르마 의 교리에 대하여 예를 들어 풀이 했다. ① 내 마음 속에 있는 생각조차에도 우연하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② 분명히 어떤 원인이 되는 과거를 가지고 생겨난 것이다. ③ 그러나 원인을 따라 생성한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변경하고 가공하여 문명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인한다. ④ 한 가지의 관념으로부터 또 다른 한 가지의 관념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은 어떤 물체나 영체가 몸으로 전달됨으로써 윤회과정이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비 물질적인 정신적인 전달에는 생성의 연결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결국 윤회과정에 있어서 부처는 물체설을 부인한다. 물체설을 부인하는 까닭은 삼라만상의 생성윤회과정에 있어서 물체는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렇다. 육체나 물질은 마음과 정신에 비하여 일시적이며 근본적인 존재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만물이 다 이처럼 소멸될 존재라는 사상 때문에 불교 문학은 허무주의와 감이 보인다. 부처는 존재의 세 가지 특징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심각한 특징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두 가지는 괴로움, 그리고 영혼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생은 덧없다. 인생을 구성한 요소들을 그는 스칸다 (skandas)라고 불렀다. 스칸다들은 모두가 덧없이 유한한 것들뿐이다. 그것들은 거품과도 감이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것은 그림자요, 아침 이슬이요, 믈거품이다.
인생은 죽은 다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윤회의 회전을 따라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다시 태어날 것을 바라지만 부처는 그와 같은 내세관을 부정한다. 내세의 존재에 관한 문제를 인간의 지각이란 언어로는 결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이라 한다. 불교애서의 인간은 사건의 원인일 뿐이다.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고, 또 반복하고, 인간이 생활하고 생각하는 의미는 지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부처가 되려 끊임없이 고행하고 수행한다. 이것이 과연 한번뿐인 인생 또는 다시 올 인생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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