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시작하는 글
Ⅱ. 본론
Ⅲ. 맺는 말
Ⅱ. 본론
Ⅲ. 맺는 말
본문내용
까 하고 생각이 된다.
수많은 역사소설이나 TV 드라마, 영화 등이 이 책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쓰여졌다. 그러나 『한중록』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쓴 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한중록』의 트릭에 걸리고 말았다. 『한중록』의 주제는 간단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신병자인 사도세자와 정신병자에 가까운 그 부친 영조 사이의 충돌의 결과라는 것이다. 두 정신병자가 부딪친 결과 한 정신병자가 죽었다는 것인데, 여기에 중요한 한 세력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면 『한중록』은 역사의 사실로 승화된다. 바로 혜경궁 홍씨의 친정아버지 홍봉한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친정과 그가 이끌었던 당파였던 노론이라는 세력이다.
Ⅲ. 맺는 말
이와 같은 많은 의문들을 남긴 『영원한 제국』이란 책은 29살의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야기에 집착하던 지난 시절과 다르게 시대적 상황을 먼저 보게 되고, 필요한 사항이나 의문점을 바로바로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지식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새로운 생각들과 가설들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영ㆍ정조시대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로 인해 90년대 중반 사도세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부각되었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나에게 있어서도 또 다른 시각으로 사도세자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떤 아버지가 있어 정신병으로 아파하는 아들을 치료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죽일 생각부터 했을까? 하물며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것을 후회하여 사도(思悼)라 시호를 지었을진데…
결국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대립, 그리고 아내와 친어머니까지 정적이 되어야만 했던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있었을 뿐이라 생각한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 때 조카의 종용을 받아 1795년(정조 19)에 순 한글로 초(草)를 잡고 1805년(순조 5년)에 보태어 쓴 한중록은 남편 사도 세자의 참살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생애를 사소설체로 적은 것이다. 이를 보건데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건으로 절대왕정을 꿈꾸었던 정조대왕의 숙청대상은 노론, 그중에서도 정조대왕의 외가인 혜경궁 홍씨의 집안이 될 것을 의식한 글이 아니었을까?
≪출처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푸른역사 中≫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다음날 좌의정 홍봉한은 영조에게 이런 주청을 한다.
"한림 윤숙은 '어제' 신들을 꾸짖었고 또 울부짖으며 거조를 잃었으니, 인심을 진정시키고자 한다며 엄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란 사도세작 뒤주에 갇히더 날을 말한다. 좌의정 홍봉한이 누구인가?" 바로 '한중록'의 저자인 헤경궁 홍씨의 친정 아버지이자 사도세자의 장인이다. 그런 홍봉한이 '왜 사위를 구하지 않는냐'고 울부짖었다는 이유로 윤숙을 처벌하라는 이율배반적인 주청을 하고 나선 것이다. 홍봉한의 이 주청 하나에 그간 품어왔던 모든 의혹이 한꺼번에 풀린듯했다. 혜경궁 홍씨가 왜 그토록 구구절절 아버지 홍봉한을 변명해야 했는지, 왜 영조를 성격이상자로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기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홍봉한의 이 말 한마디에 감추어져 있었다. 또한 마지막 순간에 부왕 영조를 '아버지'라 부르며 '살려달라'고 빌었던 비운의 세자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이유도 이 말 한마디에 응축되어 있었다.
이 글귀를 읽으며 조선시대에 당쟁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말 무서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아버지 영조와 아들 정조처럼 아니 오히려 더욱 뛰어난 성군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많은 역사소설이나 TV 드라마, 영화 등이 이 책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쓰여졌다. 그러나 『한중록』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쓴 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한중록』의 트릭에 걸리고 말았다. 『한중록』의 주제는 간단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신병자인 사도세자와 정신병자에 가까운 그 부친 영조 사이의 충돌의 결과라는 것이다. 두 정신병자가 부딪친 결과 한 정신병자가 죽었다는 것인데, 여기에 중요한 한 세력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면 『한중록』은 역사의 사실로 승화된다. 바로 혜경궁 홍씨의 친정아버지 홍봉한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친정과 그가 이끌었던 당파였던 노론이라는 세력이다.
Ⅲ. 맺는 말
이와 같은 많은 의문들을 남긴 『영원한 제국』이란 책은 29살의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야기에 집착하던 지난 시절과 다르게 시대적 상황을 먼저 보게 되고, 필요한 사항이나 의문점을 바로바로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지식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새로운 생각들과 가설들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영ㆍ정조시대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로 인해 90년대 중반 사도세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부각되었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나에게 있어서도 또 다른 시각으로 사도세자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떤 아버지가 있어 정신병으로 아파하는 아들을 치료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죽일 생각부터 했을까? 하물며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것을 후회하여 사도(思悼)라 시호를 지었을진데…
결국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대립, 그리고 아내와 친어머니까지 정적이 되어야만 했던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있었을 뿐이라 생각한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 때 조카의 종용을 받아 1795년(정조 19)에 순 한글로 초(草)를 잡고 1805년(순조 5년)에 보태어 쓴 한중록은 남편 사도 세자의 참살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자신의 한 많은 생애를 사소설체로 적은 것이다. 이를 보건데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건으로 절대왕정을 꿈꾸었던 정조대왕의 숙청대상은 노론, 그중에서도 정조대왕의 외가인 혜경궁 홍씨의 집안이 될 것을 의식한 글이 아니었을까?
≪출처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푸른역사 中≫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다음날 좌의정 홍봉한은 영조에게 이런 주청을 한다.
"한림 윤숙은 '어제' 신들을 꾸짖었고 또 울부짖으며 거조를 잃었으니, 인심을 진정시키고자 한다며 엄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란 사도세작 뒤주에 갇히더 날을 말한다. 좌의정 홍봉한이 누구인가?" 바로 '한중록'의 저자인 헤경궁 홍씨의 친정 아버지이자 사도세자의 장인이다. 그런 홍봉한이 '왜 사위를 구하지 않는냐'고 울부짖었다는 이유로 윤숙을 처벌하라는 이율배반적인 주청을 하고 나선 것이다. 홍봉한의 이 주청 하나에 그간 품어왔던 모든 의혹이 한꺼번에 풀린듯했다. 혜경궁 홍씨가 왜 그토록 구구절절 아버지 홍봉한을 변명해야 했는지, 왜 영조를 성격이상자로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기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홍봉한의 이 말 한마디에 감추어져 있었다. 또한 마지막 순간에 부왕 영조를 '아버지'라 부르며 '살려달라'고 빌었던 비운의 세자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이유도 이 말 한마디에 응축되어 있었다.
이 글귀를 읽으며 조선시대에 당쟁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말 무서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아버지 영조와 아들 정조처럼 아니 오히려 더욱 뛰어난 성군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