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 문제 제기
Ⅱ. 본론
1. 씨름의 정의 및 기원
2. 한국과 일본 씨름의 역사
3. 스모와 씨름의 특징 비교
1) 시합 개최시기
2) 경기장
3) 경기방법 및 판정
4) 선수의 분류
5) 경기 용구
6) 의식
4. 현재상황 비교
Ⅲ. 결론 - 스모를 통해서 본 우리 씨름의 나아갈 길
Ⅱ. 본론
1. 씨름의 정의 및 기원
2. 한국과 일본 씨름의 역사
3. 스모와 씨름의 특징 비교
1) 시합 개최시기
2) 경기장
3) 경기방법 및 판정
4) 선수의 분류
5) 경기 용구
6) 의식
4. 현재상황 비교
Ⅲ. 결론 - 스모를 통해서 본 우리 씨름의 나아갈 길
본문내용
1. 씨름의 의미 및 기원
씨름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맹수, 적과의 싸움에서 효과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세계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와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유적지의 출토품이나 예술작품 등을 통해서 씨름 경기의 존재를 고찰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 이집트 왕조 중기(BC 2131∼BC 1786)의 것이다. 그밖에 인도에서는 BC 1500년 이전에 시작되었으며 고전적 서사시들인 리그 베다 등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BC 700년부터, 일본에서는 BC 1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국가에서도 씨름 경기가 있었으며, 그 뒤 에게 문화를 거쳐 고대그리스에 계승되어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고 BC 776년부터 고대 올림픽의 주요 종목이 되었다. 고대올림픽 대회에서는 3판2승제의 토플링 경기와, 레슬링과 복싱을 혼합한 것으로 한 사람이 항복함으로써 끝나는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또한 석가가 왕자 때 그 사촌인 제바달다(提婆達多)와 씨름겨루기를 했다는 기록이 불전에 나와 있다. 《예기(禮記) 》 <월령편(月令篇)>이나 장평자(張平子)의 《서경부(西京賦)》를 보면 중국에서도 한무제(漢武帝) 때에 씨름이 가장 성행하였고, 진(秦)나라 때에는 각저(角)라고 불렀다는 것이 고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이처럼 씨름은 레슬링, 스모, 씨름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각 지역마다 독자적으로 발전 해오긴 했지만, 크게 보아서 같은 범주로 넣을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맨손으로 맹수, 적과의 싸움에서 효과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생존방법이 씨름이었으며, 그 모습이 세월이 지나 현재 스포츠화 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 한국과 일본 씨름의 역사
▶ 씨름
1)상고시대
아득한 상고시대에는 씨름에 관한 자료들이나 문헌이 없다. 다만 씨름에 관한 명칭 중 치우희라는 것이 있는데 치우희는 상고시대 치우천왕의 이름을 딴것 같다. 씨름의 이름이 왜 치우희라는 천왕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는가는 알 수 없으나 이 치우 천왕에 관한 자료들이 중국측이나 우리측에 조금 있다. 중국의 "25사 ", 우리 쪽의 "한단고기 " 중 "삼성기" 상하편이다. 그가 천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신시역대기"에 의하면 치우는 14세 자오지한웅과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군신이자 무신이므로 군과 무가 씨름의 성격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2)삼한시대
이 시대의 씨름에 관한 자료로 볼 수 있는 기록으로는 두 종류가 있다. 중국 쪽 기록으로서 "후한서"와 우리 쪽 자료로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이다.후한서 를 보면 중국의 한나라 왕은, 부여의 왕이 자기 나라를 방문했을 때 환영 행사로서 북치고 피리불고 각저희를 하게 했다. 이 각저희가 씨름과 유사하다. 위 그림은 그 당시의 각저이며, 오늘날의 우리 씨름과 비슷하다.신 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거룩하고 신성한 장소인 신소도에서 행하는 제사 예식으로서 여러 가지 기예를 시범하는 종목으로 "씰흠"을 말하고 있다. 이 "씰흠"이 씨름이라고 추정된다.
씨름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맹수, 적과의 싸움에서 효과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세계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와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유적지의 출토품이나 예술작품 등을 통해서 씨름 경기의 존재를 고찰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 이집트 왕조 중기(BC 2131∼BC 1786)의 것이다. 그밖에 인도에서는 BC 1500년 이전에 시작되었으며 고전적 서사시들인 리그 베다 등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BC 700년부터, 일본에서는 BC 1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국가에서도 씨름 경기가 있었으며, 그 뒤 에게 문화를 거쳐 고대그리스에 계승되어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고 BC 776년부터 고대 올림픽의 주요 종목이 되었다. 고대올림픽 대회에서는 3판2승제의 토플링 경기와, 레슬링과 복싱을 혼합한 것으로 한 사람이 항복함으로써 끝나는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또한 석가가 왕자 때 그 사촌인 제바달다(提婆達多)와 씨름겨루기를 했다는 기록이 불전에 나와 있다. 《예기(禮記) 》 <월령편(月令篇)>이나 장평자(張平子)의 《서경부(西京賦)》를 보면 중국에서도 한무제(漢武帝) 때에 씨름이 가장 성행하였고, 진(秦)나라 때에는 각저(角)라고 불렀다는 것이 고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이처럼 씨름은 레슬링, 스모, 씨름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각 지역마다 독자적으로 발전 해오긴 했지만, 크게 보아서 같은 범주로 넣을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맨손으로 맹수, 적과의 싸움에서 효과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생존방법이 씨름이었으며, 그 모습이 세월이 지나 현재 스포츠화 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 한국과 일본 씨름의 역사
▶ 씨름
1)상고시대
아득한 상고시대에는 씨름에 관한 자료들이나 문헌이 없다. 다만 씨름에 관한 명칭 중 치우희라는 것이 있는데 치우희는 상고시대 치우천왕의 이름을 딴것 같다. 씨름의 이름이 왜 치우희라는 천왕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는가는 알 수 없으나 이 치우 천왕에 관한 자료들이 중국측이나 우리측에 조금 있다. 중국의 "25사 ", 우리 쪽의 "한단고기 " 중 "삼성기" 상하편이다. 그가 천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신시역대기"에 의하면 치우는 14세 자오지한웅과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군신이자 무신이므로 군과 무가 씨름의 성격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2)삼한시대
이 시대의 씨름에 관한 자료로 볼 수 있는 기록으로는 두 종류가 있다. 중국 쪽 기록으로서 "후한서"와 우리 쪽 자료로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이다.후한서 를 보면 중국의 한나라 왕은, 부여의 왕이 자기 나라를 방문했을 때 환영 행사로서 북치고 피리불고 각저희를 하게 했다. 이 각저희가 씨름과 유사하다. 위 그림은 그 당시의 각저이며, 오늘날의 우리 씨름과 비슷하다.신 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거룩하고 신성한 장소인 신소도에서 행하는 제사 예식으로서 여러 가지 기예를 시범하는 종목으로 "씰흠"을 말하고 있다. 이 "씰흠"이 씨름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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