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영부인 육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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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어를 무척 잘하고 불어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외국어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청와대 시절 개인교습 여부와 학습법에 대해 물었다. 대답에 나선 박근혜 대표는 “이런 질문은 상상도 못했다”고 놀라움을 표시하고 “우리말만 가지고 한계가 있다는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다.”며 그 비결을 소개했다. 이어 “영어와 프랑스어는 학교에서 좀 배웠다”면서 “영어만이 아닌 제2, 3의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Ⅲ.아내
1)어려운 살림도 검소하게 꾸려 나가는 아내
육여사는 대구 시내의 현 관광호텔 자리에 있었던 조그만 한옥을 전세 내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신혼살림은 퍽 어려웠고 육여사는 친정이 부자였지만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절약과 저금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갔다. 봉급에서 한푼 두푼 떼어 저금을 했고 당시 군인 가족들에게 나오던 쌀 배급을 아껴 모아 적금을 넣기도 했다. 그 돈으로 작은 구멍가게를 내어 살림에 보태었고 세퍼트를 사육하기도 했다.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육여사는 결혼 6년이 넘은 56년 봄 서울 신당동에 20평짜리 조그만 양옥집을 장만하였다.
2)자상한 아내 , 자상한 남편
육여사는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란 적은 월급이라도 불평 없이 살림을 꾸려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고 누구에게나 말했다. 신혼 초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아무 불만 없이 무난하게 꾸려나갔던 체험으로 얻은 결론이었다. 부엌살림은 일반 가정과 차이 없는 혼식과 분식이었고 육류보다는 채식을 하는 등 철저하게 내조 생활을 해 왔다.
평생 부부싸움 없는 내외간이었지만 육여사가 박대통령에게 불만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박대통령이 옷에 대하여 너무도 무관심해서였다. 넓은 넥타이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 육여사는 넓고 산뜻한 넥타이를 권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육여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대통령의 육여사에 대한 애정은 은은했고 박대통령은 육여사에게 결혼 이후 한번도 생일선물을 잊은 적이 없었다. 박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을 동안 닷새가 멀다고 편지를띄웠다. 육여사는 3일 만에 한 번씩 일기 쓰는 식의 답장을 보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깊은 밤 혼자서 일기를 써나가듯 긴 편지를 쓰다보면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다 잊어버린 채 가정주부가 갖는 소박한 행복감에 가득히 젖어들곤 하였다.
교육을 마치고 귀국한 박대통령은 육여사의 편지를 받은 순서대로 스크랩을 하여 육여사로 하여금 감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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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7.06.09
  • 저작시기2006.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3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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