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의 벽화와 금강경의 역사-문화재 훼손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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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돈황의 벽화와 금강경의 역사-문화재 훼손사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개의 글

2. 돈황의 경우

3. 운강석굴, 용문석굴, 돈황석굴

4. 돈황석굴의 벽화

5. 돈황석굴불상

6. 돈황 석굴의 문화재 유출

7. 금강경

8. 돈황의 2차 문화재 유출

본문내용

펠리오라는 젊은 학자를 중심으로 1906년 8월 중국령 투르키탄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이 27살, 그는 13개 언어에 능통했고 중국어 교수까지 역임하고 있었다. 왕도사를 만나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동굴 속에 숨겨져 있는 필사본은 많이 빼갔을 거라고 추정되었지만 1만 5천~2만 부는 있었다. 그는 문서를 나누기를 시작했고 그 좁은 공간에서 3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여러 가지 언어에 통달했기에 가져갈 책들을 잘 골라냈고 5백태일(약 90파운드)이라는 금액에 합의했다.
그 발명품에는 돈황 벽화도 있었다.
히브리어 면죄부 단편- 돈황 천불동에서 수집. 히브리어로 씌어진 기도문으로, 구약의 이사야서와 시편이 이용되었다. 이러한 문서의 존재 때문에 당시 유대인이 돈황 주변에까지 왔을 가능성이 제기 되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티베트어 ‘연대기’- 한자로 씌어진 경권의 이면을 이용해 티베트의 역사를 기록했다. 돈환은 781-848년에 걸쳐 티베트인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대진경교삼위몽동찬-시리아 어를 번역한 것. 네스토리우파 기독교에서 전례를 드릴 때 사용하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소그드어 ‘선악인과경’- 고대 소그드인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살면서 동서 무역의 중계를 담당했던 민족이다. 이 경전은 그들이 사용했던 문자로 씌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호탄어 ‘금광명경’ - 여러 종의 티베트어 역이 있는데 본 품은 호탄어로 된 귀중한 번역본이다.
키워드 : 돈황, 운강석굴, 용문석굴, 돈황석굴, 금강명경, 돈황석굴의 벽화, 돈황석굴불상, 금강경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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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19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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